책 『마음의 미래』를 읽고
"엄마 친구 아들은 말이야. 해외 한 번 안 가고도 영어 잘한다더라"
왕성하던 식욕도 엄친아 이야기만 들으면 수저를 식탁에 내려놓게 만든다.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모를 엄마 친구 아들과 비교를 당할 때면 내가 자신 없거나 아픈 부분만 비수로 콕콕 찌른다. 시중의 수많은 양서에서는 상처 같은 약점을 보완하는 대신 강점에 더 집중하라고 조언하지만, 약점이 사회에서 용인될 수 있는 커트라인, 즉 과락은 피해야 통할 수 있는 말이다.
결심은 쉽다. 그러나 그 결심으로 어떤 일을 섣불리 시작할 때 겪는 대부분의 시간은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다. 고통은 열정으로 감내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 열정이 계속 끓고 있는지 가스레인지 앞에서만 서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도 마음만 먹어서 되는 일은 없다는 걸 잘 알기에 결심의 무게는 날이 갈수록 무거워진다.
외국인을 만나면 길거리에서 피하기 바쁜 나와 달리 어떤 사람들은 긴장한 기색도 없이 '아메리칸 스타일'로 그들의 리액션을 받아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그 광경을 보며 '저렇게 되고 싶다'는 부러움도 잠시, 그렇게 되기까지 험난한 과정이 기다릴 것을 알기에 고개를 두어 번 옆으로 흔들고 다시 발걸음을 뗀다.
1999년에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키아누 리브스)는 각종 무예 기술 데이터를 받아 순식간에 이소룡 못지않은 고수가 된다. 헬기를 몰아본 적 없는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도 원격으로 헬기 조종술을 다운로드 받아 베테랑 조종사처럼 헬기를 몰게 된다. 그 당시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할 때는 그런 장면들이 일말의 의심도 없이 영화 속에서 가능한 허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본 미래학자 미치오 카쿠가 쓴 책 『마음의 미래』 를 읽어보니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머지않은 미래에 실현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영화 <매트릭스>에서 펼쳐지는 외부 데이터를 뇌에 주입하는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앞으로 수십 년 후에는 유전자 치료법과 약물요법 그리고 자기장을 이용한 각종 장치를 적절히 조합하여 인간의 지능을 높일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 책 『마음의 미래』 258p
테슬라 CEO 엘론 머스크는 지난 2017년 뇌 연구 스타트업 뉴럴링크(Neuralink)를 설립했다. 뉴럴링크는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뉴럴 레이스(Neural Lace)’를 개발하고 있다. 초소형 인공지능 칩(Al Chip)을 인간의 뇌 겉 부분인 대뇌 피질에 이식한 뒤, 이 칩을 이용해 인간의 생각을 업로드, 다운로드할 수 있다는 게 뉴럴링크 측의 설명이다. 특정한 정보를 저장해 인간의 두뇌 속에 주입하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를 두뇌 속에서 제거할 수도 있다.
김래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교수는 “뇌에 데이터를 입력하는 세상이 온다면 힘들게 공부를 해서 지식을 충전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올 것”이라며 “영어나 수학, 코딩을 배우고 싶다면 학원이 아닌 마트에 가서 전문가의 지식이 들어간 지식 데이터를 구입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마트에 가서 전문가의 지식이 들어간 데이터를 구입해서 뇌에 다운로드하면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도 장점이 된다. 엄마가 입이 닳도록 칭찬하던 엄친아가 내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그런 상상은 나만 그 데이터를 구입했을 때나 통하는 이야기다. 그 데이터가 터무니없이 비싸서 부자들의 전유물이 되거나, 가격이 저렴해 모든 사람이 구입하게 된다면? 안타까운 건 어느 쪽이 됐든 나는 평범한 사람으로 남는다. 특히 후자의 상황이 펼쳐질 경우 내가 가진 지능이 지금보다 뛰어날지 몰라도, 그 지능의 가치는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든 널려있으니까.
생각을 읽는 기술은 머지않은 미래에 구현될 것이다. 이때가 되면 누군가가 내 생각을 읽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이 그런 행위를 허용할지가 더 큰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누군가 비양심적인 사람이 당신의 생각이 담긴 파일을 허락 없이 훔쳐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기 생각이 아무에게나 공개되는 것을 반길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이런 상황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 책 『마음의 미래』127p
또한 지식 데이터가 거래된다면 비양심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한다. 책 『습관의 힘』 에서는 어느 소매 기업이 임신-예측 알고리즘을 구축해 예비 부모가 될 사람들의 쇼핑 습관이 유연성을 보일 때 그들에게 기저귀, 로션, 유아용 침대와 물수건 등의 광고지를 보내면 수백만 달러의 매출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소개한다.
그 임신-예측 알고리즘은 고객이 평소 쇼핑할 때 수집되는 개인정보를 샅샅이 분석해 평소와 다른 패턴을 보일 때 은근슬쩍 새로운 제안(광고, 쿠폰 등)을 하는 마케팅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고객의 습관을 통해 분석했지만, 지식 데이터를 거래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마트에 들어가면서 '오늘 마트에서 초밥 사야지'라고 떠올렸던 것이 내 생각이 아니라 마트에서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생각을 주입한 것일 수도 있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고객에게 아주 쉽게 과소비를 강요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까지 안 가더라도 우리는 그들의 치밀한 전략에 따라 마트에서 이미 과소비를 하고 있다.)
인간의 의식은 미래를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하는데, 정확한 결과를 얻으려면 어쩔 수 없이 비도덕적이거나 불법적인 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시뮬레이션을 나중에 몸소 실천하건 하지 않건 간에, 대체로 우리는 그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헬멧이나 외과수술 없이 휴대 가능한 기계 장치만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마음을 쉽게 읽기를 바랄 것이다.
― 책 『마음의 미래』124p
스마트폰에서 위치 정보 수집을 허용하지 않으면 지도 앱에서 내 위치를 확인할 수 없고, 날씨 앱에서 실시간 날씨를 쉽게 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찜찜하지만 편리한 생활을 위해 수집을 허용한다. 앞으로 지식 데이터를 뇌에 주입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우리는 '위치 정보 수집 허용'처럼 편리함의 유혹과 인간의 존엄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게 된다. 존엄성을 택해 모든 걸 직접 배우겠다고 하는 순간 많은 품이 든다. 반면 편리함을 택하면 배우고 싶은 게 있을 때마다 지식 데이터를 구매해 아주 쉽게 배운다. 지금 같아서는 그런 미래가 도래할지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택하겠지만, 내가 선택한 가치는 계속해서 시험받을 것이다. 그러면 견딜 수 있는가? 에 대한 질문에 내 대답은 'NO'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편리함을 택하는 쪽으로 갈 것이다. 그 순간부터 삶에서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때부터 우리는 나만의 것이 아닐 때 오는 상실감을 오롯이 견뎌내야 한다. 이미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부품'처럼 생각하면서 그 상실감을 견디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 『마음의 미래』를 읽으면서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분홍빛으로만 느껴지지 않아 책을 덮으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씁쓸해진다.
당신은 이 세상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와 인간성을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가?
책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씽큐베이션 #더불어배우다 #대교 #체인지그라운드 #마음의미래 #미치오카쿠
Photo by John Noonan on Unsplash
참고 자료
조선일보, [로그인 투 매트릭스]①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한다...사이보그가 현실로 (링크)
이투데이, 머스크, 새 스타트업 ‘뉴럴링크’ 설립…베르베르 소설 ‘뇌’ 현실화 도전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