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타다오와 르 코르뷔지에
지금은 사진 속 '르 코르뷔지에'처럼 늙어버린 안도 타다오의 젊은 시절의 눈빛은 매섭게 다가온다. 1941년 9월 13일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공부에 큰 뜻이 없어 고등학교 시절을 트럭 운전수와 아마추어 권투 선수 생활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그런 생활은 지금은 유명한 야쿠자가 된 그의 쌍둥이 형과 같은 길을 걷게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 당시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한계를 강하게 느꼈다.
그러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발견하게 된 르 코르뷔지에의 책은 그를 건축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책을 펼치는 순간 안도 타다오는 르 코르뷔지에 같은 건축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1965년, 스물 세 살이 된 그는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프랑스로 긴 여정을 떠났다. 자신을 건축의 세계로 끌어당긴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르 코르뷔지에는 안도 타다오가 프랑스에 도착하기 한 달 전 세상을 떠났다.
그를 만나지 못했지만 안도 타다오는 르 코르뷔지에가 남긴 유산을 보고 생각했다. 그가 세상에 남긴 건축물을 통해 그를 배워야겠다고.
"그곳에서 나를 습격한 것은 곳곳에서 덮쳐오는 폭력적인 빛, 그리고 빛이었다. 사물에 반사되어 사람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그런 빛에 익숙해진 나에게 롱샹 성당의 빛은 내 사고를 어지럽힐 만큼 강렬했다. 다음날에 다시 방문했지만 역시 한 시간도 그곳에 머물 수 없었다. 마치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기라도 하겠다는 양, 때로는 은밀히 때로는 노골적으로 덤벼들었다. 사흘째 방문했을 때에도 빛은 변함없이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었고 거기에 성스러움까지 더했다. 이 모든 것이 르 코르뷔지에에 의해 계산된 빛이었다. 12세기부터 순례지였던 롱샹 언덕 꼭대기에 지형에 걸맞게 세워진 벽면 조형. 그 벽이 둘러싸고 있는 놀라운 빛의 공간."
- 롱샹 성당을 처음 본 안도 타다오
지금은 건축계의 거장이 된 안도 타다오는 "독학으로 건축을 하겠다고 결심한 23세의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을 깊이 이해하는 것 말고는 길이 없었다"라고 과거를 회상했다. 르 코르뷔지에 역시 전문적으로 건축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안도 타다오는 그에게 강하게 끌렸는지도 모른다.
롱샹 성당 내부에서 느껴지는 빛에서 큰 영감을 받은 안도 타다오는 1989년 오사카에서 '빛의 교회'를 지었다. 십자가 하나 없이 밖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십자가를 만들어냈다. 교회 치고 무척이나 작은 공간이지만 신자들과 오사카를 여행 중인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고 교회를 방문하고 있다. 오사카에 빛의 교회가 있다면 홋카이도는 물의 교회가 있다. 빛의 교회보다는 1년 전인 1988년도에 지어졌고, 지금은 예배보다는 일본 젊은 남녀들에게 결혼식 장소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건축의 최종 목적은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여 그들을 모이도록 장소를 창조하는 것이다.
― 안도 타다오
르 코르뷔지에는 1951년, 남프랑스의 언덕에 네 평짜리 오두막을 지었다. 그는 1965년 눈을 감을 때까지 이 오두막에서 15년을 살았다. 거장의 말년 치고는 너무나 작은 공간이었다. 더 크고,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세상에서 르 코르뷔지에(아파트, 필로티 창시자)는 왜 네 평짜리 오두막에서 생을 마감했을까?
"인간에게 필요한 공간은 4평이면 충분하다"
―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르 코르뷔지에는 1951년 사랑하는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작은 오두막을 지었다. 부부는 이 오두막을 '카프 마르탱에 있는 나의 궁전'이라고 불렀다. 오두막은 요즘 작은 원룸과 비슷한 크기였다. 그는 "인간에게 필요한 공간은 4평이면 충분하다"는 자신의 철학을 죽을 때까지 네 평짜리 궁전에 살면서 몸소 증명했다. 이 곳에서 그는 UN 본부 건물을 포함해 수많은 유명 건축물을 디자인했다.
기능과 효율성을 중시했던 르 코르뷔지에는 표준적인 신체비에 황금 비례 법칙을 적용해 모듈러 이론을 만들었다. 사람이 움직이는데 불편함이 없는 수치다. 그가 창안한 모듈러 이론은 건축물을 지을 때 적극 활용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나은 생활을 만들어 주기 위해 아파트를 만들게 되었고, 현재는 그의 바람대로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며 더 나은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모듈러 이론은 그가 살게 될 오두막을 지을 때도 적용됐다. 누가 봐도 작은 집이지만 그 안에서 충분히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그의 꿈이 담겨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벽이 닿고, 손을 위로 뻗으면 천장이 닿을 정도로 작은 공간이었지만, 실제로 이 곳을 방문한 여행객은 의외로 쾌적한 공간이라고 말한다.
네 평짜리 오두막을 통해 자연으로 돌아온 르 코르뷔지에는 날씨가 좋을 때면 책상과 의자를 가지고 나와 바다를 벗 삼아 작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1965년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간 르 코르뷔지에는 지금 네 평짜리 작은 궁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언덕에 아내와 함께 누워있다. 그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다.
집이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면, 주변의 산과 강은 집을 끌어안는 그릇이다. 그러니 집만 좋아서 될 게 아니라 집을 둘러싼 환경이 좋아야 한다.
― 책 『르 코르뷔지에 VS 안도 타다오』
르 코르뷔지에는 작은 네 평짜리 오두막에서 15년을 살았지만, 누구보다 큰 자연을 가졌다. 어쩌면 그가 원했던 건 큰 집이 아니라, 집을 둘러싼 환경이었는지도 모른다.
1974년 안도 타다오는 오사카의 스미요시 신사 근처에 있는 좁은 부지를 활용해 "스미요시 나가야"를 지었다. 유명 건축가였다면 이런 악조건인 건물의 건축 의뢰를 커리어에 흠집이 난다고 거절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무명 건축가였던 안도 타다오는 이것을 기회로 삼았다. 집은 편해야 한다는 상식을 깨고, 집의 가운데 부분을 천장이 없는 빈 공간으로 만들었다. 2층 침실에서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는 밖에 있는 계단을 통해 내려가야 하고,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가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중앙에 자연을 배치함으로써 통풍, 채광 등 자연의 혜택을 확보하는 결과를 낳았다. 유독 시도하기 쉽지 않은 건축을 하고 있는 안도 타다오가 영화 <안도 타다오>에서 했던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실패하면 죄송하다고 사과하지 뭐"
안도 타다오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1995년에 거머 쥐었다.
참고 자료
1. LeeYongGeun , 스미요시나가야(住吉の長屋)/안도다다오(安藤忠雄) (링크)
2. 위키트리, 죽기 전에 꼭 봐야할 건축 100에 꼽힌 '4평 오두막', 서울 상륙 (링크)
3. 나무 위키, 안도 다다오 (링크)
4. jrkimceo, 남프랑스 언덕, 네 평짜리 오두막을 보며(링크)
5. 나무 위키, 르 코르뷔지에 (링크)
6. 책 『심미안 수업』, 윤광준
7. 책 『르 코르뷔지에 VS 안도 타다오』, 최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