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순간의 힘』을 읽고
요즘은 극장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편하게 영화를 본다. 씻지 않아도 되고, 내 시간에 맞춰서 언제든 자유롭게 보면 되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화장실이 급해도 화면을 잠시 멈추고 금방 다녀와서 재생 버튼을 누른다. 하지만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는 법. 집에서 영화를 볼 때 러닝타임 2시간은 너무 길다. 그러다 보니 지루한 장면이 등장하면 빨리 감기 하는 게 버릇이 됐다.
오래 살수록 세상의 새로움은 사라지고 새로 인식하는 정보의 양도 줄어든다. 머릿속에 입력되는 내용에 점차 신선함이 사라지면서 전보다 많은 내용이 무감각화 필터를 통과하지 못하고 버려진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점점 익숙해지고 세상에서 내가 취하는 정보의 양이 감소한 결과, 시간은 점점 빨라진다.
— 스티브 테일러, 《제2의 시간》
빨리 감기 하는 버릇은 일상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오래 일한 사람일수록 매사에 흥미가 없다. 매일 비슷한 패턴으로 회사와 집을 오가며, 늘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만 일이 진행되다 보니 어떤 일에도 주의를 크게 기울이지 않는다. 지루함 투성인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달이 지나간다. (참고로 벌써 2019년의 절반에 다다랐다.)
책 『순간의 힘』 에서는 도르트 번첸과 데이비드 루빈의 연구에서 응답자들에게 갓난아기가 앞으로 자라면서 삶에서 겪게 될 가장 중요한 사건을 답하는 설문을 진행했다. 그들이 가장 많이 꼽은 사건은 빈도에 따라 다음과 같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10개 중 절반 정도가 30세 이하에서 일어난다. 연구에 따르면 노인들에게 지난 생애에서 가장 선명한 기억을 물었을 때에도 젊은 시절의 기억을 꼽는 경향이 있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회고 절정'이라고 부른다. 『어떻게 시간을 지배할 것인가』 를 쓴 작가 클라우디아 해먼드는 이렇게 말한다.
“회고 절정의 열쇠는 새로움이다. 우리가 젊은 시절을 더 잘 기억하는 이유는 처음 경험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첫 성관계, 첫 직장, 처음으로 부모와 떨어져 혼자 하는 여행, 처음으로 집에서 나와 사는 경험,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실질적으로 처음으로 혼자서 선택하는 것.”
우리 뇌는 모든 기억을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는다. 새롭거나, 강렬하거나, 충격적인 사건은 기억 속에 오랜 시간 생생하게 남는 반면, 여러 번 반복되는 일이나 일상적인 일은 기억에 거의 남지 않는다. 어린 시절, 한 달 남짓한 여름 방학 동안 재밌는 추억이 많았던 반면 매일 반복되는 일을 수행하는 어른이 된 다음부터 기억에 남는 추억이 없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세계적인 회계법인 KPMG의 CEO로 일하고 있던 유진 오켈리는 2005년 5월 마지막 주, 뇌종양 진단을 받고 앞으로 살 날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의사로부터 들었다. 골프공만 한 악성종양 3개가 그의 뇌에서 자라고 있었고, 치료법은 없었다. 그의 14세 막내딸 지나의 여름 방학이 끝나면 아이의 아버지는 이 세상에 없을 터였다. 그는 알고 지냈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마무리 짓기로 결심했고, 몇 주 뒤 CEO직에서 물러났다.
오켈리는 어느 날 저녁, 식탁에 앉아 동심원 5개를 그렸다. 그의 인간관계를 의미하는 지도였다. 그는 가장 바깥쪽에 있는 5단계부터 시작해 점차 안쪽 원으로 이동해 병세가 악화될수록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들, 특히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계획을 세웠다.
5단계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보내 그들이 공유하는 지난날의 추억이나 행복한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3~4단계에 해당하는 오랜 친구와 절친한 동료들은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만나 이제껏 나눠준 우정에 감사를 표했다. 마지막으로 여름 내내 호수 근처 별장에서 아내와 딸, 그리고 직계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눈을 감았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느낀 감정을 이렇게 썼다.
나는 2주일 동안 지난 5년간, 혹은 암에 걸리지 않고 예전처럼 살았더라면 앞으로 5년 동안 겪었을 것보다 훨씬 많은 완벽한 순간들과 완벽한 나날들을 경험했다. 당신의 달력을 한번 들여다보라. 완벽한 나날들이 보이는가? 아니면 깊숙한 곳에 숨어 있어 발굴해야 하는가? 당신에게 완벽한 30일을 만들어보라고 말한다면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하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릴까? 30일? 6개월? 10년? 아니면 평생이 걸려도 불가능할까? 나는 하루에 일주일을, 한 주에 한 달을, 한 달에 1년을 산 기분이다.
우리가 경험을 평가할 때 매 순간의 감정을 균등하게 계산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오켈리는 생애 마지막 한 달을 1년처럼 산 기분이 들었다고 말한다. 누구든 세계일주라는 큰 꿈을 가슴속에 품고 있지만 나를 포함해 주변에서 실행에 옮기기 사람을 만나기는 무척 어렵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도 많을뿐더러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세계일주는 앞으로도 갈 기회가 많다며 지금보다 형편이 좀 더 나아지면 가겠다는 '완벽한 순간'만을 기다린다. 어쩌면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은 우리 삶의 크고 깊은 함정이다. 오켈리는 아직 '살 날'이 남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축복받았다고 말했다. 그도 불치병에 걸린 후에야 그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바쁨은 소중한 것을 성가시게 한다. 늘 반복되고 일상적인 일은 바쁨 뒤에 숨어 우리를 괴롭힌다. 오켈리는 회계법인 대표직을 수행하며 1년을 한 달처럼 느끼며 무척 바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난 뒤에 그의 삶은 온통 결정적 순간뿐이었다. 한 달이 1년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내게 일어나는 우연을 내가 설계할 수 없지만, 타인에게 일어나는 우연은 내가 설계할 수 있다.
― 책 『굿라이프』
내게 일어나는 우연은 내가 설계할 수 없지만. 타인에게 일어나는 우연은 내가 설계할 수 있다. 책 『순간의 힘』에서 이야기하는 '결정적 순간'을 타인에게 선사할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인정과 칭찬은 비용이 들지 않을뿐더러 상대에게 일어나는 우연을 가장한 가장 큰 선물이다. 내게 결정적인 순간이 오지 않는다고 제자리에서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다른 사람에게 용기 내어 나아가서 우연이라 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을 선물하자. 그러면 타인의 결정적 순간에 기여한 결정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 나는 잊을 수 있어도 상대의 기억 속에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선의는 잠깐이었지만 결정적 순간은 타인의 머릿속에 오래 살아남아 기억된다.
삶이란 우리가 경험하는 매 순간으로 구성되고, 결정적 순간은 그중 가장 오래 살아남아 기억된다.
― 책 『순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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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사이언스 온,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빠르게 흐를까?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