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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Jul 07. 2019

읽고 쓰는 동료가 늘고 있다.

이렇게까지 열의를 다하는 사람은 본 게 처음이라서


"글쓰기를 언제,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감하다.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받으면 대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지편집위원회(이하 교지)에서 활동하면서 그때는 나에게 할당된 몇 편의 글을 썼을 뿐이다. 교지에 들어가게 된 건 '글'과 관련된 활동보다는 그저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은 목적이 더 컸다. 후배 때는 쓴 글을 선배에게 확인받고 취재를 갈 때면 보조로 졸졸 따라다녔기에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선배가 되자 후배의 글을 가이드하는 것은 물론. 데리고 다니며 기사에 들어갈 인터뷰까지 직접 진행해야 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어떤 소극장이었다. 인터뷰를 하겠다며 무턱대고 찾아간 소극장에서 우리를 무례하게 느꼈을 법한데 직원은 쫓아내지 않고 친절하게 받아줬다. 그는 대표님을 모시고 오겠다며 홀연히 사라졌고, 10분 뒤에 소극장을 운영하는 대표가 나타났다. 보자마자 나는 쫄았다. 벌써 10년이 흘러 그때 모습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강렬한 느낌은 잊을 수 없다. 수첩에 미리 적어놓은 질문지가 있었지만 막상 인터뷰를 진행하려고 하니 질문이 형편없어 보였다. 그래도 옆에 후배들이 있다는 이유로 긴장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인터뷰를 이어갔다. 두 눈은 수첩과 담배를 피우며 인터뷰를 응하는 대표를 번갈아보며 집중하는 척했지만, 두 귀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영 신청서가 날아왔다. 그 곳에서 해야 할 건 많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서 보내준 수첩과 다이어리에 하루 일과, 느낀 감정이 들어간 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도 있었지만, 혹시나 누군가 내 수첩을 확인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런 내용은 되도록 쓰지 않았다. 일이병 때는 새벽 근무에 나가서도 당직사령이 근무지에 나타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면, 상병이 되자 그 일은 부사수에게 맡기고 주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책 『쇼코의 미소』의  단편 소설 <한지와 영주>에서 영주는 한지와 원인모를 이유로 관계가 틀어지고 나서  '내가 만약 그때 ~했더라면 한지랑 괜찮지 않았을까?'라고 과거에 본인이 한 행동에 대해서 후회한다. 마치 모든 잘못이 자신에게 있는 것처럼. 근무를 서는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겸손한 시간이었다. 영주는 한지만 생각했다면 나는 과거에 나와 얽힌 많은 사람을 돌아봤다. 지금 돌이켜보면 쓸데없는 생각이었지만 그땐 그 자체로 의미 있었다. 어쩌면 깊은 심심함을 당하는 군대라는 특성상 가능했던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전역을 하고 블로그를 시작했다. 처음엔 네이버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티스토리로 옮겼다. 그렇게 지금의 브런치까지 이어졌다. 누군가 내게 글 쓰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자신이 없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침에 눈을 뜨면 헬스장에 가있듯이, 글감이 떠오르면 어느 순간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쓰는 법을 물어본다면 '꾸준함'을 강조한다. 글 쓰는 자체로 화제가 될 정도로 유명하거나, 누구나 재밌게 읽을 정도로 잘 쓰지 않는 한, 쓰면서 발생하는 외로움을 견뎌야 할 순간들이 많다.


몇 시간 들여 정성껏 쓴 글이 아무 반응이 없다. 내적 동기로 시작했지만 분주한 일상에 그마저도 금방 잃는다. 써야 할 이유가 점점 사라진다. 각오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차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중단할 거면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 든다.


신발 끈이 풀렸다는 이유로 달리기를 멈추고 레이스를 이탈한다. 관중석에 앉아 한때 동료라고 생각했던 선수들을 쳐다본다. 언제 끝날지 모를 긴 레이스가 시작되자 잠시 졸기도 하고 스마트폰으로 딴짓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한 눈 파는 사이에 선수들은 벌써 저 멀리에서 뛰고 있다. 문득 부러운 감정이 올라온다. 신발 끈이 풀리지만 않았다면 나도 저곳에 있을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다시 선수로 달릴까 고민하지만 이미 앞서 나가 있는 동료들을 잡기란 불가능하다. 나는 응원을 받는 선수도 아닌 그렇다고 열렬히 응원할 줄 아는 관객도 아닌 이방인이 되어버렸다.


글쓰기라는 레이스에서 나는 여전히 선수로 뛰고 있지만 어떤 날은 응원하는 법을 잊어버린 이방인이 되곤 한다. 그 사실을 인지하는 방법은 이렇게 글 쓰는 방법뿐이다. 쓰지 않았다면 이방인인지 조차 몰랐을 것이다.




타인의 성장을 지켜보는 건 내 성장만큼이나 즐거운 일이다. 물론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 사람의 성장은 여전히 부러움과 시기의 감정이 섞여있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사람들은 그런 감정 없이 무한한 응원을 보내주고 싶다. 내가 한 뼘 성장할 때 그들은 두 뼘, 세 뼘 성장한다. 그들이 성장할 때 내가 기여한 부분이 있다면 그 자체로 감사한 일이다. 나는 글쓰기 실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도움을 준 그들은 금방 잊었겠지만 도움을 받은 나는 글을 쓸 때마다 그들이 불현듯 생각난다. 앞으로 계속 글을 쓸 셈이니 그들을 잊을 일이 없을 것이다. 나의 글쓰기에는 그들이 늘 함께 한다.


지난 4월부터 씽큐베이션 1기에 참여하며 같은 그룹에 참가한 12명의 사람들과 12권의 책을 12주 동안 읽었다. 그리고 12개의 서평을 썼다. 첫날 자기소개를 하면서 어떤 분은 내 브런치에 쌓인 글을 보고 '저런 분도 독서모임에 참여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사실 나는 씽큐베이션이 간절하지 않았다. 선정되지 않았더라도 그저 내 페이스대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면 됐다. 오히려 선정되고 나서 '혹시 나 때문 간절했던 분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서평 제출률 100%"


우리 그룹을 맡은 김주현 팀장님은 첫날 자신의 목표를 이야기했다. 본인의 제출률이 아니었다. 모든 그룹원의 제출률이었다. 나처럼 이미 글 쓰는데 익숙한 브런치 작가도 있었지만, 이번 모임을 참여로 블로그를 개설하는 분들도 있었기에 속으로 불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했다. 독서모임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모임원들이 과제는커녕 책을 읽고만 와도 다행이다. 서평은 모임 이틀 전까지 카페 게시판에 제출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제출하는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목표는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다들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레이스에서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


하지만 결국 12주 동안 12명의 12개 서평이 모였다. 목요일 오전 10시에 진행되는 모임 특성상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출근하는 직장인이 대다수였다. 그들은 출퇴근길에 틈틈이 책을 읽고, 아이를 재우고 밤새 서평을 쓰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레이스에서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 첫 번째 모임에서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모두 브런치 작가 되어 보는 거 어때요?라는 제안을 던졌다. 내 이야기를 들었던 11명 중 누군가는 내 제안을 웃어넘기는 농담으로 들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해봐야겠다는 진담으로 들었을 것이다. 나는 일단 한 명만 브런치 작가가 된다면 수월할 것이라 생각했다. 시작하는 그 한 명이 중요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이 매주 들렸다.


첫 모임이 끝나고 약 일주일 뒤에 드디어 통계돌이 규승(brunch)님이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아마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도 '나도 한 번?'이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처음 2명이었던 브런치 작가는 마지막 모임에서 세어보니 어느새 전체의 2/3가 넘는 8명이 되어 있었다.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다고 해서 지금 당장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3개월간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신감을 얻었으니 앞으로 계속 쓸 수 있는 원동력은 되지 않았을까.


씽큐베이션 1기 《실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4월부터 6월까지 참여한 씽큐베이션 1기는 27일 모임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시간에 이제는 책을 읽고 서평 쓰는 게 습관이 된 그룹원들에게 앞으로 책 읽으면서 좋은 문장을 수집하라는 의미로 필사 노트를 준비했는데, 다른 그룹원들도 선물을 한 아름 들고 온 덕분에 무겁게 들고 와서 다시 무겁게 들고 갔다. 특히 도연님(brunch)은 모든 사람들이 쓴 서평을 다시 읽어보고 그중에 가장 그 사람과 잘 어울리는 제목을 뽑아 캘리그래피로 작성한 책갈피를 손수 작성한 편지와 함께 선물해주셔서 감동이었다. (현진님의 사진, 규승님의 글 통계도 감사합니다!)




씽큐베이션 2기 《집중의 감각을 선물하는 시간》


 7월부터는 내가 설계한 그룹 《집중의 감각을 선물하는 시간을》을 이끌며 또다시 3개월 동안 레이스를 달린다. 책 『피로사회』를 읽으며 벌써 첫 모임을 마쳤다. 함께 책을 읽고 글 쓰는 동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왜 이렇게까지 잘해주시나요?" 하고 묻는 내게 그는 "이렇게까지 열의를 다하는 사람은 본 게 처음이라서."라고 대답했다.
― 책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 테라오 겐


발뮤다 창업자 테라오 겐이 아직 아무것도 선보이지 못했을 때, 어떤 사장이 그의  열정을 보고 물심양면적으로 지원해준다. 그때 테라오 겐은 사장에게 "왜 이렇게까지 잘해주시나요?"라고 물었다. 사장은 "이렇게까지 열의를 다하는 사람은 본 게 처음이라서"라고 대답한다. 갑자기 대학생 때 약속도 없이 찾아왔지만 인터뷰를 받아줬던 소극장 대표님이 생각났다. 어설프지만 후배들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내 모습을 보고 흔쾌히 수락해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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