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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Jul 14. 2019

나는 내가 서른이 될 줄 몰랐어

모든 출구는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다


나는 내가 서른이 될 줄 몰랐어. 근데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서른인 거야. 어렸을 때 내가 상상한 서른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거든.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직장에 다니고, 퇴근 후 집에 가면 반겨줄 처자식이 있을 줄 알았지. 그때 바라본 서른은 '어른'이라는 단어가 제법 잘 어울렸고 그 나이쯤 되면 왠지 모르지만 듬직해 보였어.


상상한 것 중에 이뤄놓은 게 아무것도 없는데 벌써 서른이 되고 말았어. 노력을 안 한 건 아냐. 열심히 살았지. 작년에 3년 동안 열심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자마자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건 아주 소박한 거였어.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극장으로 출근해 한가하게 영화를 보고 싶었거든. 그때 나는 지쳐있었어. 하고 싶은 일도 많았지만 일단은 좀 쉬고 싶었지.


직장에 다닐 땐 영화 볼 시간이 주말밖에 없더라고. 퇴근 후 극장으로 달려가면 바로 시작하는 영화를 볼 수 있었지만 유일하게 주어진 여가 시간을 영화 보는데 쓰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주로 주말에 갔더니 매번 사람이 꽉 차 있어서 영화에 집중하기 불편하더라고. 계속 핸드폰 보는 사람, 가방에서 비닐을 부스럭거리며 주전부리를 꺼내는 사람(도라에몽 같았어. 먹을 게 계속 나와.) 옆 사람과 대화하는 사람까지. 영화 사운드와 맞물리던 그런 불협화음이 나를 괴롭혔어. 그런 소리가 한 번 들리면 계속 들려.


퇴사하는 날에도 극장에 갔어. 어떤 영화를 봤는지 아직도 기억 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보러 갔거든.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에 갔는데 사람이 많아서 당황했어. 그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다들 직장 안 다니시나? 연차 낸 사람이 이렇게 많나? ' 내가 직장인이라 그동안 직장인의 프레임으로 살았더라고. 모든 게 직장인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어. 모든 사람은 아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삶의 형태가 나랑 비슷할 거라고 착각한 거지. 물론 주말보다는 사람이 적었지만 한가한 극장을 꿈꿨던 나로서는 실망하기 충분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어. 잘못 설계된 프레임으로 내 기대치를 잔뜩 올려놓고, 막상 마주한 현실은 내가 만든 프레임에 닿지 못하니 실망감을 만들어냈어. 은퇴하신 어르신들도 많았지만 내 또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사람들도 많더라고. (사실 부러움도 한 스푼, 아니 두 스푼 정도 있었지.)


책  『행복을 풀다』 에서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태도’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고 말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이 움직이면 누구나 행복을 느낀지만, 반대로 현실이 내 바람과 기대에 어긋나면 불행하다고 느끼는 거지. 어렸을 때 그 나이가 되면 듬직해 보였던 서른과 평일에 한가로운 극장은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었어. 막상 현실에서 마주한 극장과 서른은 그런 모습이 아니라 당황하고 실망했던 거야. 그런 감정은 행복보다 불행에 가깝지.


우린 아직 도착하지 않은 지점에 완벽한 모습을 걸어놓고 그 모습이 되기 위해 열심히 전력질주하는 거 같아. 옆에 멋진 풍경이 있어도 도착해서 봐도 늦지 않다는 이유로 그 풍경을 모조리 놓치고 말이지. 그러니 한때 먼 미래였던 서른이 어렸던 내가 보기에는 충분히 완벽해 보였던 거야. 어린 내가 지금의 나에게 '서른 되니깐 어때요? 인생이 좀 바뀌었나요?'라고 물었다면 '이 나이 되면 뭔가 있을 것 같지? 글쎄. 이 나이 먹어도 여전히 찌질하단다.'라고 했을지 몰라. 그럼 어린 나는 그 말에 실망하고 이런 생각이 들었겠지. '서른이 뭐 저래'


나처럼 어느 시점이 되면 완벽해질 거라는 착각. 자주 생각하지 않아?


○○이 되거나, ○○를 하면 항상 우린 완벽해질 거라 생각해.


어른, 졸업, 취업, 퇴사, 결혼, 은퇴, 저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단어는 셀 수 없이 많아. 어떤 단어든 넣는 족족 공식이 성립하지. 여전히 그 착각을 하고 있다면 지금도, 앞으로도 자기 삶에 대한 평가가 형편없을지 몰라. 아직 완벽한 순간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형편없다고 느끼거든. 그런데 형편없는 건 지금의 내 삶이 아니라, 지금 내가 자주 내뱉는 질문일 거라고 생각해봤어? 답이 안 나오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질문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 더 나은 답을 찾고 싶다면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질문부터 점검해야 돼.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판단하기 직전에 던진 질문이 내 인생을 평가하는 주된 프레임이라고 책 『프레임』 에서 이야기하더라고. 그 문장을 읽고 내가 평소에 어떤 단어를 자주 쓰는지 궁금했어. 곰곰이 생각해봤지. 여러 개 있었지만 '시간'이 가장 많았어. 그 단어를 중심으로 구성된 질문을 주변 사람들에게도 자주 묻는 것 같더라고. 출퇴근 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는지. 주말은 어떻게 활용하는지. 나 스스로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늘 궁금했어. 가끔 다른 사람에게 시간관리에 대한 해법을 찾으면 행복감을 느끼곤 했어. 반대로 내가 가진 방법을 알려줘도 비슷했지. 내가 작년에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것도 '내 시간'을 늘리고 싶었던 가치관이 컸어. (이 책에서 말하기를 평소에도 돈 밝히는 사람은 어느 순간에 물어보는 질문도 돈에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야. 어떤 생각을 많이 하는지가 그 사람의 프레임인 거지)


최인철 교수가 쓴 책 『굿 라이프』 도 재밌게 읽었는데 이번에 책 『프레임』 도 읽고 내가 구축한 프레임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어.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10년 뒤 또 이렇게 말할 것 같아.


"나는 내가 마흔이 될 줄 몰랐어"


완벽한 마흔을 그려놓고 열심히 달려가는 대신 이제는 서른이라는 고속도로에 펼쳐진 풍경을 좀 즐겨보려고. 참고로 모든 출구는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야. 같은 문을 두고도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출구가 될 수도 있고, 입구가 될 수도 있어. 그건 누가 정하냐고? 네가 정하는 거지. 형편 없는 건 내 삶이 아니라 타인에게 자주 묻는 '질문'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곰곰이 생각해봐. 누군가가 항상 다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연봉 얼마에요?"부터 묻는다면 그 사람은 연봉으로만 사람을 평가할 가능성이 높아. 그게 나 자신일 수도 있고.


※ 그런데 왜 이번 글은 반말이냐고? 미안. 지금껏 쓰던 프레임을 깨보고 싶었어.




글 | 서용마 @symuch

그림 | 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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