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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Aug 05. 2019

카메라로 방해받고 싶지 않아

발언권이 없는 경험하는 자아의 한 마디


 우리는 언제 사진을 찍게 될까요. 아마 우리에게 기쁨과 설렘을 선사하는 풍경이나 사람을 만났을 때일 겁니다. 그러니 기쁨이나 설렘이라는 감정이 먼저이지요. 만일 우리에게 이런 핑크빛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면, 우리는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꺼내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진짜로 찍은 것은 풍경이나 사람이 아니라, 내 마음의 기쁨과 설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책 《강신주의 감정수업》 머리말 중에서


왜 여행지에 가면 사진부터 찍게 되는 걸까?

여행을 떠나는 순간부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나는 찍고 싶지 않았는데 옆에 있는 사람들이 찍는 통에 가만히 있으면 왠지 나만 손해 보는 느낌이다.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 그 대열에 합류한다. 어느 순간부터 관광지에 도착하면 사진 찍고, 다시 이동하고 또 사진 찍는 일의 반복이 되어버렸다. 여행을 즐기러 온 건 지금 이 순간의 난데, 사진으로 여행을 기억하기 위해 내 손이 대신 촬영 알바를 뛰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 이 여행 잘 가고 있는 걸까?



행동경제학 연구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1996년에 토론토 대학 연구원이자 의사인 레델 마이어와 함께 설계한 연구 내용을 담은 아주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위 그림은 고통스러운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는 두 환자의 상태를 나타내는 그래프다. 요즘은 수면 내시경 검사를 통해 환자가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하지만 연구하던 당시에는 보편적이지 않았다. 이 실험에서 환자는 60초마다 그 순간에 느끼는 고통의 정도를 연구진에게 보고했다.


그래프에 나온 Y축 고통 강도 수치에서 0점은 '전혀 고통스럽지 않다', 10점은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다'를 나타낸다. 검사는 환자 A의 경우 8분, 환자 B의 경우 24분 지속되었고, 그래프에서 보다시피 각 환자가 느끼는 고통은 변화의 폭이 컸다. (고통이 0인 마지막 순간은 검사가 끝난 뒤에 기록되었다.)


이 검사에 총 154명의 환자가 실험에 참가했는데, 검사가 가장 빨리 끝난 경우는 4분, 가장 오래 걸리는 경우는 69분이었다. 어떤 환자가 검사 중에 더 고통스러웠을까? 답은 너무나도 쉽다. 고통은 짧고, 쾌락은 길어야 좋다고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그러니 고통 시간이 길었던 환자 B가 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카너먼 교수는 환자가 매 순간 직접 보고한 고통을 계산한 수치를 '쾌락 측정기 총합'이라고 명명했다. 연구진은 검사가 끝나고 모든 참가자에게 그 과정에서 느낀 '고통의 총합'을 물었다. 고통의 총합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들이 이제까지 보고한 고통 전체를 회고하도록 유도해, 쾌락 측정기 총합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고통스러운 순간에 본인이 보고한 고통 강도의 합과 모든 검사가 끝나고 그 순간을 회고했을 때 고통 강도의 합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놀랍게도 환자들은 고통 전체를 회고하지 않았다. 즉 순간에 느낀 고통의 합과 고통의 순간을 회고했을 때의 합이 일치하지 않았던 셈이다. 통계분석 결과 카너먼 교수는 다른 여러 실험에서 발견한 유형을 설명해주는 두 가지 사실이 드러났다.


정점과 종점 원칙 : 환자들이 회고하는 전체 평가를 가장 정확히 예측하는 수치는 최악의 순간에 보고한 고통과 검사가 끝날 때 보고한 고통의 평균이었다.

지속시간 무시 : 검사가 지속된 시간은 전체 고통 평가에 어떤 식으로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 원칙을 환자 A와 B의 상태에 적용해본다면 두 환자가 매긴 최악의 고통 점수(정점)는 8점이었지만, 검사가 끝나기 전 마지막에 매긴 점수(종점)는 환자 A가 7점인 반면, 환자 B는 1점에 그쳤다. 따라서 정점과 종점의 평균은 환자 A가 7.5점, 환자 B가 4.5점이었다. 예상대로 이 검사에 환자 A가 환자 B보다 훨씬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환자 A는 불행하게도 고통스러운 순간에 검사가 끝나는 바람에 불쾌한 기억을 남기고 말았다. 카너먼 교수는 이 실험을 비롯해 여러 실험 결과 회고 평가는 지속 시간과 무관하고, 다른 순간보다도 정점과 종점의 두 순간에 무게를 둔다고 말한다.   

환자 A와 환자 B 케이스 중 어떤 검사를 받을래?


이 사례를 보기 전이었다면 당연히 내 선택은 환자A 케이스였다. 짧은 게 장땡이다. 하지만 이 사례를 보고 난 이후라면 누구나 고통의 기억을 줄이는 환자B 케이스를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이쯤 되면 헷갈린다. 분명히 쾌락 측정기 총합(검사하는 동안 순간마다 느낀 고통의 합)은 환자B가 더 높았는데, 막상 검사가 끝나고 그 검사를 회고했을 때 환자B는 "제가요? 그런 적 없는데요?"라고 부인하는 꼴이 됐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이 딜레마를 두 자아. 즉 "지금 아픈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경험하는 자아'와 "전체적으로 어떠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기억하는 자아'의 충돌로 보면 편하다고 말한다. 인생을 살면서 간직하는 것은 기억이 전부이다시피 해서,  우리가 삶을 생각할 때 채택할 수 있는 유일한 관점은 기억하는 자아의 관점이다.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녀석은 '경험하는 자아'가 되겠지만, 몇 시간 뒤 그 순간을 떠올리는 녀석은 '기억하는 자아'인 셈이다.


경험하는 자아의 관점에서 정점과 종점의 개념이 없다. 물론 경험하는 자아도 "늘 기억하겠다", "지금은 의미 있는 순간이다"라고 정점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말 중 상당수는 몇 달만 지나도 까마득히 잊힌다. 기억하는 자아는 내 모든 경험을 보고 있는 자아의 사령관이지만, 경험하는 자아는 필드에서 자아의 한 포지션만 담당하고 있는 선수다. 선수가 '내 포지션이 가장 중요해!'라고 아무리 주장해봐야 사령관은 그 말을 쉽게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둘을 혼동하는 탓에 과거 경험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분명히 재밌게 즐긴 여행인데도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옆 승객과 마찰로 인해 나중에 누군가 "그 여행 어땠어?"라고 물을 때 기내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여행은 별로였다고 판단한다. 아쉽게도 경험하는 자아는 발언권이 없거나 상당히 약하다. 그래서 기억하는 자아는 종종 경험을 기억으로 바꿔치기하며 과거 경험을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하며 인지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월터(벤 스틸러)는 폐간을 앞둔 '라이프'지의 마지막 호 사진을 찾기 위해 소재가 불분명한 사진작가 숀(숀 펜)이 있는 곳으로 모험을 떠난다.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등을 넘나들며 드디어 만난 숀은 눈표범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숀은 눈표범을 가만히 지켜볼 뿐 셔터 누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때 월터가 숀에게 묻는다.



"언제 찍을 거예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난... 개인적으로 카메라로 방해받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에 머물고 싶지.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사진작가 숀은 사진으로 기억하는 대신 두 눈으로 지금 이 순간을 경험하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많은 관광객이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대는 걸 보면 추억을 저장하는 것이 여행의 중요한 목표일 때가 많다고 짐작할 수 있는데, 이 목표가 휴가 계획을 결정하고 실제 휴가에서의 기분을 좌우한다. 사진작가는 어떤 광경을 보았을 때 그것을 음미할 순간이 아니라 설계해야 할 미래의 기억으로 여긴다. 찍어놓은 사진을 오래 또는 자주 보는 일은 매우 드물고 심지어 아예 안 본다 해도 사진은 기억하는 자아에 유익할 수 있지만, 경험하는 자아에게 사진 촬영은 경치를 즐기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 수 있다.

― 책 《생각에 관한 생각》p.568


기억하는 자아는 우리가 챙기지 않아도 알아서 잘 챙긴다. (심지어 왜곡도 한다.) 그러니 우리가 챙길 건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경험하는 자아다. 기억하는 자아는 아름다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하지만, 경험하는 자아 또한 지금 이 순간을 오롯이 즐기고 싶어 한다. 다만 발언권이 없어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할 일은 기억하는 자아가 시키는 촬영 알바는 그만두고 그저 멍하니 아름다운 순간을 지켜보는 일이다.



Photo by Mike Bowm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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