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서용마 Aug 11. 2019

자기소개는 두렵지만, 새로운 사람은 만나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일 위에서는 열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제 이름은요..."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자리라면 가장 먼저 이름부터 밝힌다. 인원이 두세명 정도라면 자신을 먼저 소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좀 더 많은 인원이 모이면 구심점이 되는 사람(보통은 주최자/리더)부터 자기소개를 시작한다. 사실 리더는 자기소개할 필요가 없다. 이미 모든 사람이 그를 잘 알고 있고, 오기 전에도 충분히 찾아봤을 것이다. (그렇지만 리더가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하는 자기소개는 시작을 끊는 것도 두렵지만, 더 두려운 건 모든 사람이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름을 시작으로 각자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보를 중심으로 본인을 소개한다. 내 차례가 오기 전에는 '이름, 나이, 사는 곳 정도만 이야기해야겠다'라고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놓았는데, 오늘 처음 보는 옆사람이 아무도 궁금하지 않은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마치 자주 보는 친구 마냥 술술 풀어놓는다. 이 사람. 말로만 듣던 투머치 토커다.


'아.. 저렇게 말하면 나는..'  


그 순간부터 부담이 밀려온다. 투머치 토커는 쏟는 말의 양 자체도 부담이지만 이렇게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할 때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다음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미리 그려놓은 대로 나를 간단하게 소개하려고 했지만 투머치 토커의 자기소개를 듣고 난 이상 그대로 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뭔가 숨기는 사람처럼 생각할 것 같다. 이렇게 오늘 자기소개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내향적인 성격은 인정.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은 만나고 싶다. 다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다 보면 내가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부담스러울 뿐이다. 대학생 때 친구뿐만 아니라 친구의 친구들까지 함께한 술자리는 언제나 즐거웠다. 그런데 몇 시간만 지나면 친구들은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이런 말을 건넸다


"괜찮아? 혹시 기분 나쁜 일 있어?"

"나 되게 재밌는데 왜?"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


최신 폰은 쉴 새 없이 전화를 하고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고, 카톡을 보내고, 인터넷을 하더라도 배터리가 온종일 쌩쌩하다. 어쩌다 한 번씩 충전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구식에 가까웠던 '나'라는 핸드폰은 한 가지 일만 하더라도 배터리가 순식간에 방전되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바닥을 기고 있는 에너지를 아끼고 있었고, 술자리에서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며 다른 생각을 했다. 최신 폰처럼 좀처럼 배터리가 줄지 않는 친구를 보면 대단함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했다. 적어도 사람이라면 1차에서 2차, 3차로 계속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힘이 쭉쭉 빠져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어떤 친구들은 2차에 가서 '1차는 사실 워밍업이었어'라고 뒤늦게 고백하며 택시 타고 집에 갈 때까지 단 한 번의 추락도 없이 분위기를 휘집고 다녔다. 이뿐이랴, 다른 곳에서 마시고 있는 친구들이 불러도 그들은 언제나 OK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한 마디 내뱉었다. "진짜 대단하다.."


대학생 때는 친구들과 만나는 술자리에 불과했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이들의 에너지는 '슈퍼커넥터'가 되는 원동력으로 업그레이드되곤 했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을 가리고 있을 때 그들은 거리낌 없이 아는 사람을 늘려가며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며 인맥을 늘렸다. 책 《친구의 친구》에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면 나와 같은 사람들도 슈퍼 커넥터가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나를 잘 안다. 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인맥을 늘려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라는 말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의구심을 갖게 하거나 불편하게만 느껴진다. 물론 아는 사람이 많으면 좋다. 그렇지만 작위적으로 구축하는 방식에서 발생하는 찜찜함이 너무나도 크게 다가온다.


"엘리베이터에서 짧은 시간 동안 나를 어필해라"

"혼자 밥 먹지 마라"

"상대의 이름을 자주 불러 친근함을 쌓아라"

"건네받은 명함에 나눈 대화를 기록해라"


억지로 인맥을 늘리려고 하면 찜찜하고, 현 상태로 있자니 어쩌다 한 번씩 현실 자각 타임이 온다. 내 인맥은 왜 이렇게 좁은가?라는 사실이 자각될 때마다 읽게 되는 자기계발서에서는 짧은 시간 동안 나를 어필하고, 항상 다른 사람들과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상대의 이름을 자주 부르며, 처음 보는 상대는 명함을 받아 나눈 대화를 기록하라고 조언한다. 읽는 내내 솔깃했고, 바로 실행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힝! 속았지? 너는 저번에 속더니 이번에도 속는구나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을 때면 그 내용을 내 삶에 적용하기만 한다면 마치 대단한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상상했지만, 책을 덮거나 강의장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펼쳐진 인생은 실전이었다. 적용은커녕 아는 지식만 하나 더 늘었다.


오랜만에 연락 오는 친구의 카톡은 이제 열기 전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대개 "요즘 잘 지내?"로 시작하는 친구의 말은 처음에 반가운 마음에 "나야 잘 지내지. 너는?"이라고 덥석 물었지만, 이제는 그 안부 섞인 인사 뒤에 어떤 말이 붙을지 너무나도 잘 안다. "나 XX월 XX일에 결혼해!" 그 순간 반가운 마음은 서운함으로 뒤바뀌지만 애써 숨기며 축하 인사부터 건넨다.


'이 자식! 결혼할 거면 미리 연락해서 얼굴 보고 그동안 살았던 이야기라도 할 것이지. 꼭 닥쳐서 말하더라'


굳이 한 마디 더 보태서 말을 건네고 싶지만 반대편에서 나뿐만 아니라 한명 한명 찾아가며 보낼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역력해서 보내려고 쓴 내용을 다시 지운다. '나라고 다를까?'

2년 전쯤, 함께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디자이너 분을 통해 개인 로고(+명함)를 제작했다. 그 전부터도 만들고 싶었지만, 그저 '내 마음에 드는 로고'만 만들고 싶었지. 어떻게 만들어야 내 마음에 드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보통 시중에 파는 명함 중 마음에 드는 디자인은 부담하기 무척 높은 금액이라 만들기 어려웠다.)


"용마씨 명함 로고 하나 디자인해드릴까요?"


그 제안이 고마웠지만, 내가 적정한 비용을 치른다고 해도 그대로 받을 분이 아니었다. 망설이며 사례를 어떻게 해드릴까요?라고 물으니 본인도 연습 삼아 시도해보는 일이니 소정의 선물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때 디자이너분이 만들어준 내 로고는 명함뿐만 아니라 브런치, SNS 등의 프로필 사진으로 아주 잘 활용되고 있다. 매번 만나는 사람마다 로고가 예쁘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어떻게 디자인하신 거예요?"

"종이에 계속 이름을 써보다가 발견했어요. 사실 다른 분들의 명함은 이런 식으로 해도 잘 안 나오는데, 용마씨는 그동안 오래 봐와서 그런지 바로 생각나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삼각형, 원형, 네모처럼 도형 같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시간 관리, 일정 관리, 메모 관리 등 내가 잘하고 있는 분야의 첫 글자를 담고 있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앞으로 주변에서 명함을 제작할 예정인데, 혹시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 분을 추천할 것이다. (이게 바로 친구의 친구. 약한 연대의 힘이다.)  


새로운 인맥을 얻고자 한다면 공유 활동, 그중에서도 특히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상호 의존'을 필요로 하며, 무엇인가를 잃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무릅써야'하는 공유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더 낫다. 그런 활동들에 참여하는 동안에는 네트워킹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된다. 그 활동이 끝나면, 당신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롭고 흥미로운 사람들을 곁에 두게 됐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 책 《친구의 친구》, 292p


미국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책 <The Good Great Place>에서 제3의 공간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가정을 뜻하는 제1의 공간과 일터를 뜻하는 제2의 공간과 달리 제3의 공간은 가정과 회사에서 찾을 수 없는 활력을 되찾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를 일컫는다. 제3의 공간은 꼭 물리적인 공간만 뜻하는 것은 아니다. 브런치나 네이버 블로그 등에서 글을 쓰면서 만난 적 없는 독자들과 소통하거나 본인의 관심사 기반의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소속감을 느낀다. 때론 내 글을 읽지 않는 오랜 친구보다 내 글을 읽고 댓글을 남겨주는 사람들과 더 깊은 유대감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독서, 글쓰기, 기록, 영화 등의 문화 자본을 토대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니 작위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했을 때 느꼈던 찜찜함은 사라졌다. 인맥을 늘리기 위한 곳에서는 나는 변두리에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문화 자본 위에서는 항상 내가 솔선수범해서 사람들을 만난다. 특히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며 원래 내 성격이라면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그들과 만날 때 내 에너지는 급격히가 아닌, 아주 천천히 줄었다. 덕분에 나는 더 적극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일 위에서는 아주 열정적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작위적인 네트워크는 여전히 껄끄럽지만,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덕분에 여전히 두려운 자기소개가 계속될 수 있다.






참고 도서  :  책 《친구의 친구》, 데이비드 버커스


Photo by Kimson Doan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의 취향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