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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Sep 02. 2019

마음도 퇴근하겠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항상 뭔가 해야 할 거 같은 기분이다.


매일 아침이 전쟁이다. 전날 늦게 잠든 탓에 오늘 아침도 시간이 부족하다. 반복되면 습관이라는데 늦게 잠들고 허겁지겁 챙기는 아침 시간의 루틴은 몇 년째인데 적응이 안된다. 화장실에서 반쯤 감긴 눈으로 양치를 하면서 왜 늦게 잤는지 떠올려본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넷플릭스까지 가해자로 만들 수 있는 녀석들은 많다. 어떤 녀석으로든 핑계대기 나름이었다. 하지만 그 서비스들이 나를 늦게 잠들게 한 원인은 아니었다. 그저 잠들기 싫어서 저 서비스들을 활용했을 뿐.


퇴근하고 집에 오면 항상 뭔가 해야 할 거 같은 기분이다. 청소와 빨래를 하고, 밀린 독서를 끝내고 맥주를 마시면서 글을 쓰고 나면 잠잘 시간이 임박했는데도 하루가 끝난 기분이 들지 않는다. 여전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래서 졸음이 쏟아지는데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나에게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리추얼(Ritual)이 없었다.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했고, 이번 주 계획과 가계부도 작성하지 못했고, 메모장에 던져놓은 글감도 정리하지 못했다. 물론 오늘 끝내야 되는 일은 아니지만, 미리 해놓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탓에 나중에 고생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미리 좀 해놓을 걸' 후회하기 바빴는데, 돌아보면 나는 항상 미리 처리하는 성격이었다. 그런데도 왜 그런 걸까?


그동안 어떻게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들은 끊임없이 쏟아졌다. 해야 할 일이 많아질수록 그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은 욕구도 함께 치솟았다. 그 정리도 나중에는 결국 해야 할 일 중의 하나였다. 고민할수록 더 빨리 처리되거나, 일의 양이 줄어야 하는데 어째 점점 산더미처럼 쌓이는 것 같다.


한가해도 여유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바빠도 여유가 넘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가한데 왜 여유가 없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은 정말 여유가 없다. 여유는 시간에 있는 게 아니라 마음에 있다. 본인 스스로 여유의 방향타를 쥐고 있지 않으면 아무리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도 활용할 수 없는 시간일 뿐이다. 바빠도 여유 있는 사람은 현재에만 집중한다. 미래를 앞당겨 걱정하지 않고, 과거를 애써 떠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 사람이 그 사람의 미래를 걱정할 때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담담한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신기한 건 바빠도 여유 있는 사람의 미래는 정말 어떻게든 된다.


여유의 방향타를 쥐고 있는 사람은 '지금 여기서 본인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확히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내 '능력'과 '시간'에 상관없이 해야 할 일만 넘쳤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인생을 삼키면 우린 좀처럼 쉬지 못한다.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지친 몸뚱이로 꾸역꾸역 짜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일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긍정성의 과잉이다. 처음부터 그런 기분이 우리를 휘감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나무 베는데 여덟 시간이 주어지면, 그중 여섯 시간은 도끼를 가는데 쓰겠다고 했다. 쉬지 않고 무딘 도끼로 나무를 찍기만 해서는 나무를 쓰러트릴 수 없다. 되려 내가 쓰러진다. 쉬면서 에너지를 비축하고 도끼를 날카롭게 갈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낮잠을 자고 나면 하루를 이틀처럼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주위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그가 일에 열정적이고 의욕적일 수 있었던 이유다. 오죽하면 처칠은 전쟁 중에도 땅굴에서 낮잠을 잤을 정도다.


오늘이 아쉬운 탓에 내일의 컨디션을 생각하지 않으니, 내일이 되면 어제 왜 그랬는지를 후회한다. 쉴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쉬지 못했고 다음 날의 컨디션에도 지장이 간다. 끊임없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그러니 내겐 하루를 마무리하는 리추얼이 필요하다. 이 리추얼을 치르고 나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회사에서 몸만 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마음도 퇴근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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