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또 다른 시작을 낳는다
시작을 부추기는 환경이나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언제나 좋았다. 정신없이 굴러가는 일상으로 연초에 세웠던 목표를 잊고 지낼 때 주변에 본인의 계획을 수시로 점검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 또한 전에 세웠던 목표를 자연스레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를 설득시켜 책을 읽게 만드는 건 어렵지만 내가 읽는 모습을 지속해서 노출하면 '나도 한 번 읽어볼까'라는 마음이 불현듯 샘솟기 마련이다. 재미를 추구하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의미를 찾아 나서는 게 사람인지라 그럴 때면 전에 포기했거나 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물색한다. 마침 주변에서 누군가 책을 읽고 있다면 따라 읽게 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멈춰있던 사람에게 다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다.
매일 10페이지씩 읽는 건 쉽다. 그런데 100일 동안의 매일이라면 어떨까. 읽을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했을 뿐이다. 습관이 되기까지는 해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 떠올려야 하는데 보통은 이게 가장 어렵다. 어쩌면 삶에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것도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들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가 아닐까.
회사에 늦지 않기 위해 평일 아침 6시 부근에 몇 개의 알람을 맞춰놓는다. 이 알람 덕분에 지각하지 않는다. 알람이 잠들어 있는 나를 깨우듯이 잊었던 순간들을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건 철저히 내 몫이다. 내가 변화해야 한다면 곧 사라질 결심보다는 계속 바뀔 수밖에 없는 환경을 설정하는 편이 낫다. 책벌레가 되고 싶다면 어딜 가든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고, 일찍 일어나고 싶다면 새벽형 인간밖에 없는 모임에서 그들과 자주 부딪히는 편이 낫다.
목표가 대단하면 사람들은 이미 달성한 것처럼 치켜세워주지만, 정말로 대단한 사람들은 작은 목표도 주변 사람과 환경을 이용해 자주 떠올릴 기회를 곁에 많이 두는 사람이다. '해야 되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보통 중요한 일이 아니다. 중요하다면 이미 시작하고도 남았어야 했다. 해야 된다는 말을 뱉음으로써 죄책감을 살짝 덜어내면서 기억 속에 사라지길 기다릴 뿐이다.
결심을 자주 잊어버리는 사람은 큰 목표를 올려보기 전에 작은 것부터 쌓아가는 습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습관이 이미 정체성이 된 사람이 핸드폰 알람처럼 지속적으로 내게 상기시켜줄 수만 있어도 효과는 좋다.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여전히 결심만 하는 사람은 이 효과의 가치를 과소평가한다. 그들은 시간이 흘러도 아직 혼자서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고 세 번째는 더 쉽다. 횟수를 늘리면 난이도는 낮아진다. 그러나 그것도 초반에만 국한된 이야기다. 시행착오는 많이 겪는다고 쉬워지지 않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내가 달라진다. 충분히 사유하면 반복을 줄일 수 있다. 그래서 기록이 필요하다. 기록이 좋은 건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자극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뭉뚱그리면 잘못된 걸 알아차리기 쉽지 않지만, 퍼즐처럼 하나씩 떼어보면 어디가 잘못됐는지 파악하기 수월하다. 전체를 알고 있는 내가 찾지 못한 문제를 아주 작은 일부분만 아는 타인이 쉽게 찾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래서 보완이 되는 사람과 함께 해도 좋다. 내가 발견할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니까.
무언가 시작하기 위해서는 미리 하는 습관을 지니면 좋다. 미리 하면 시간도 벌어주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여유를 가져다준다. 마음에 여유가 없다면 시간이 넉넉할지라도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미리 하는 습관의 힘은 평소에는 잘 드러내지 않는다. 문제가 터져야만 가치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확률이 낮은 건 확률이 없다는 말과 다르다. 낮은 확률이라도 확률이 존재하는 한 '블랙 스완'은 반드시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