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음.. 아무거나’
식사를 함께 하는 타인의 질문에 ‘아무거나’라고 자주 답하곤 한다. 사실 무엇이든 잘 먹는 체질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선택의 고통을 피하고 싶은 까닭이 더 크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선택이 있다면 그건 오늘 입을 옷을 고르는 일이 아닐까.
오늘 뭐 입지?를 고민하다 옷장에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 우리는 한 번 비워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그 결심은 ‘언젠가 꼭 입어야지’라며 사놓고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채 옷장에 잠든 새 옷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된다.
그렇게 발견했다면 입을 법도 한데 처음 구입했을 때와 비슷한 이유로 여전히 그 옷은 선택받지 못한다. 어쩌면 처음부터 나와 함께 할 녀석이 아니었는데 과분한 욕심으로 무리하게 데려온 건 아닐까.
그 욕심은 내 삶에 들어온 어떤 시작들과 닮았다. 결심이라는 구입 버튼을 통해 내 삶의 옷장에 들어왔지만 어느 순간 곁에 있었는지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채, 다시 필요한 순간이 되면 발견되는 아이러니. 그런 시작들은 다시 결심해도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않고 처음의 마음가짐 언저리에 머무르고야 만다.
무수히 많은 일을 벌렸지만 무엇이 끝났는지 무엇을 끝내야하는지 제대로 고민하지 않은 나머지 어떤 시작을 끝맺은 경험이 드물었다. 우리는 보통 시작을 결심하지. 그렇게 시작한 일을 ‘이 날이 되면 끝내야지’하고 고민하지 않으니까.
지난 주에는 노트북을 집에 두고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틈틈이 확인해야할 것들이 많아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불안할 것 같았는데, 막상 없이 지내보니 생각했던 것만큼 불안하지도 않았다. 대신 들고온 아이패드로 충분했다.
입추(立秋)가 지났다.
무더웠던 여름도 끝나간다.
끝내기 좋은 계절이다.
그동안 미루기만 했던 결심을 실행에 옮길 때가 왔다.
이번 주에 인상 깊은 문장
“사람들은 대부분 후자의 시작에만 주목하고 대체 무엇이 끝났는지, 무엇을 끝내야 하는지, 종결에 대한 물음에는 제대로 고민하지 않는다.”
− 책 <어떻게 나의 일을 찾을 것인가>, 야마구치 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