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까? 말까?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다 보니 읽을까? 말까?를 고민하지 않는다.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읽을 수 있을까?라는 한 단계 높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고민하는데 에너지라는 비용을 아끼는 것만으로도 큰 자산이다.
2015년부터 꾸준히 독서모임을 한 덕분에 책 읽는 활동이 더 좋아졌다. 우리 주변에는 늘 나와 비슷한 사람들뿐이다. 본인이 개발자라면 주변에 개발자가 많을 것이고, 변호사라면 온통 변호사들 뿐이다. 그 점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안락함을 가져다 주기 도하지만 때론 성장에 방해 요소가 되곤 한다.
직업마다 가지는 공통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만약 공무원 집단에 속해 있다면 성장보다는 안주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어차피 겸업금지 규정으로 인해 허락받지 않는 한 겸업을 못할뿐더러, 일을 벌일 때 공무원이라는 신분이 도움되기보다 방해되는 요소가 많으니까.
독서모임을 하면서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만나는 사람들의 풀이 넓어지는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다 보니 직업, 연령, 성별, 지역이 천차만별이다. 특히 요즘처럼 비대면 활동이 많아지는 시대에는 사람들의 특성이 더 다양해졌다.
오프라인 중심의 독서모임일 때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토요일 오전 강남'이라는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맞추려면 주말에 출근하는 간호사, 사서 혹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참여에 제약을 받는다. 그런데 온라인 독서모임이 활성화되면서 시공간의 제약이 느슨해지다 보니 제약 있던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유입된다.
좋은 책을 만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혼자 읽으면 더더욱.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본인의 생각이 정답인 것처럼 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내가 읽고 싶은 책이 곧 좋은 책이라 믿는다. 그래서 편향이 있는지도 모른채 읽고 싶은 책만 계속 찾아 읽게 된다.
그래서 좋은 책을 만나려면 책 읽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책 읽는 좋은 사람들이란 정의는 무엇일까. 나는 그 정의를 독서 경력이 있으면서 한 가지 분야만 섭취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소설만 읽는 사람이 있고, 소설을 주로 읽지만 비문학도 종종 찾아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 둘 중에 후자를 더 좋아한다. 소설만 읽는 사람은 소설만 좋아할 확률이 높지만, 후자는 책 자체를 좋아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들과도 대화가 잘 통한다.
반면 책 읽는 나쁜 사람들은 피해야한다.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읽지 않으면서 참여하는 사람. 한 단계 더 나아가 당당하게 읽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늘 책에 관심이 많고, 아는 것도 많지만 딱 거기 뿐이다. 평소에 바쁘다는 이유로 책을 읽지 않고 책 읽는 사람들이 많은 독서모임에서 자신의 지식만 자랑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하다보면 삼천포로 빠질 확률이 높다.
당연히 책을 읽지 않았으니 먼저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물고, 사람들이 책을 가지고 이야기하다가 본인이 관심 있는 주제가 나오면 책과 관련 없는 에피소드를 나열한다. 이제 막 책을 읽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 에피소드에 끌려다니며 경청한다. 이때 사회자가 끊어주지 않으면 책 읽고 참석한 사람들은 가만히 있게 되고, 읽지 않았는데 참석한 사람들만 주로 말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독서모임이 망가지는 이유다.
그리고 독서모임은 본인의 신세한탄을 하는 자리가 아니다. 어쩌다 책이라는 주제로 지금 힘든 점을 표현할 수 있지만 '직장 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아이 키우면서 시간 내기 어려워요' 등의 본인이 처한 상황을 강조하다보면 직장을 다니지 않는 사람, 아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은 공감하지 못한 채 듣고 있을 수 밖에 없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일 수록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공통의 주제가 중요하다. 그래야 그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다.
과거에 독서모임을 하면서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에피소드가 하나있다면 대부분 참석하는 멤버들이 대학을 졸업한 친구들이었는데 어린 친구 중 한 명은 고졸이었다. 이 점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어느 독서모임에선가 나도 모르게 대학에 대한 이야기만 주구장창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잊고 있다가 모임이 끝날 때쯤 되니 불현듯 생각났다. 벌써 4~5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그 점이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적어도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소외받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모임장은 책에 대한 지식도 많아야하는 동시에, 축구 감독처럼 필드 전체를 바라보면서 누가 소외받고 있는지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모임장은 어렵다. 그러니까 할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