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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Sep 22. 2019

카카오프로젝트100을 시작한 이유

직접 기부하는 것보다 프로젝트100을 운영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인 이유

"10만 원이나? 꽤 센데"


카카오프로젝트100 소개 글을 읽다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서 걸어야 하는 디파짓을 보고 살짝 놀랐다. 10만 원이 큰돈은 아니지만 습관을 만들기 위해 투자하기엔 살짝 망설여지는 금액이다. 물론 좋은 습관만 만들어준다면 10만 원이 대수인가. 100만 원. 1,000만 원(잠깐만. 이건 아닌 것 같다)도 낼 수 있다. 습관을 만들려고 한 번이라도 노력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아주 작은 습관이라도 꾸준히 만들어가는 게 가장 어렵다는 사실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미 그 습관을 얻은 것처럼 들떠서 쉽게 이룰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시작해보면 예상치 못한 온갖 걸림돌이 나타나 '이거 말고 할 게 많으니 그만두라고' 살살 꼬신다.


혼자 습관 만들기를 하다가 실패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집하는 습관 모임에 참여하곤 한다. 무료 모임도 많지만 내 돈이 들어가지 않으면 꼭 해야 한다는 강제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작게는 몇 천 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십만 원을 내야 하는 모임에 참여해 습관을 만들기 위해 기꺼이 참가비를 지불한다. 그런데 문제는 습관 만들기에 성공한다면 그 돈이 아깝지 않지만 또다시 실패할 경우 돈도 날리고 습관도 만들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카카오프로젝트100에는 좋은 의도가 붙었다.


"한만큼 돌려줄게. 대신 못하면 기부할게"


그렇게 무려 470만 원이 모였다. 호기심에 덜컥 내가 만든 읽는 사람 : 호모부커스 책읽기 프로젝트(링크)에 참여한 47명의 디파짓이다. 새로운 것에 쉽게 돈을 쓰는 나도 10만 원을 결제하는데 잠시 망설였는데 다른 사람이라면 더 망설일 수밖에 없다. 10명이나 참가하려나 싶었다. 좋은 게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강매하는 게 취미이긴 하지만 이번엔 아무래도 힘들 거 같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예상과 달리 지갑을 쉽게 열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다들 '못한 만큼 기부된다'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TMI : 유료 프로젝트에 절대 참여하지 않던 친구도 지갑을 열었다.)



직접 기부하는 것보다 프로젝트100을 운영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인 이유

14살 때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던 그레그 루이스(Greg Lewis)는 케임브리지 의대를 졸업하고 영국에서 의사가 되자 막상 본인이 끼치는 영향력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날마다 병동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은 틀림없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영향력을 끼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의사 인력풀이 풍부한 영국에서는 의사 그레그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한정적이었다. 심지어 그의 자리가 비더라도 다른 의사의 업무가 조금 더 늘어날 뿐, 그의 공백으로 인해 환자가 큰 장애를 가지거나 죽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책 《냉정한 이타주의자》를 쓴 윌리엄 맥어스킬은 영국이나 미국처럼 부유한 나라에서 의사 1명이 추가될 경우 평생 4명 정도의 목숨을 구하는 것에 맞먹는 혜택을 제공하지만, 상대적으로 의료 부문에 투입하는 자원이 훨씬 적은 에티오피아 등 최빈국은 수 십배에 달하는 약 300명 정도의 목숨을 구하는 것에 맞먹는 혜택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그레그는 에티오피아에서 의사로 활동하는 것이 본인의 가치관과도 맞다. 하지만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었던 그레그는 영국에 남기로 했다. 왜 그랬을까?


영국 의사들의 평균 수입은 미화 기준 세전 11만 달러(약 1억 3,000만 원)다. 그레그가 42년 동안 의사로 일하면서 벌어들이는 총수입은 자그마치 약 460만 달러(약 54억 7천만 원) 정도다. 전공마다 차이는 있지만 수입이 가장 높은 종양전문의라면 평균 연봉이 20만 달러로 상승한다. 그레그는 에티오피아에서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는 의사가 되는 대신 높은 연봉을 받는 종양전문의가 되어 수입을 기부하기로 했다. 직접적으로 구하는 환자의 수는 적을지라도 영국에서 기부를 통한 돈벌이를 선택해 더 많은 사람들을 간접적으로 도울 수 있게 되었다. 2014년 그레그는 2만 파운드, 즉 10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돈을 기부했다. 이 돈은 에티오피아에서 의사로 근무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2일차 기준 평균 인증률 91%이면 기부금만 42만원이다.


그레그의 사례를 내 삶에 적용해보면 나는 그레그처럼 많은 기부금을 내는 것보다 오히려 내가 노련하고 잘할 수 있는 기부 프로젝트를 결성해서 사람들의 기부금을 이끌어내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게 바로 내가 카카오프로젝트100을 운영하게 된 계기다. 개인 차원에서 기부해봐야 매달 1만 원에서 많게는 10만 원 정도를 기부하는 정도에 그치겠지만, 현재 카카오프로젝트100에서 운영 중인 읽는 사람 : 호모부커스에서 책 읽기 습관을 인증하지 못한 날의 기부금만 모으면 개인에게는 적은 금액일지라도 전체 인원(47명)의 금액이 모이면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이 넘는 금액이 쌓이게 된다. 2일 차였던 9월 21일 기준으로 평균 인증률이 91%이니 지금 인증률로 프로젝트가 끝나면 기부금(약 42만)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3달 동안 개인적으로 매달 10만 원씩 기부하는 것보다 큰 금액이다.


종양전문의로 근무하면서 받은 연봉으로 기부했던 그레그는 말했다. "처음에는 수입의 10퍼센트를 기부했어요. 그러다 그 돈이 없어도 별로 아쉽지 않겠다 싶어서 비율을 조금씩 높였습니다. 지금은 수입의 50퍼센트 정도를 기부하고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전보다 더 살 만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17세의 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아요"


주변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운영하면 힘들지 않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남들은 힘들지라도 몇 년째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운영 중인 나에겐 별로 힘든 일이 아니다. 어차피 혼자서도 꾸준히 하던 습관이고 단지 사람들을 모아 함께 할 뿐이다. 2019년 4분기에는 프로젝트가 책 읽기 하나에 불과하지만, 내년에는 개인 차원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모두 카카오프로젝트100으로 가져와볼 예정이다. 이 방식이 내가 직접 기부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다!


내년에는 더 많은 프로젝트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요!


P.S. 사람들이 너무 잘해서 아무도 기부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냐고? 그럼 내 디파짓을 기부하면 된다!


한 개인의 영향력은 사소할지라도, 그 파급력은 절대 사소하지 않다.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누군가를 보고 ‘세상은 아직도 따뜻해’라고 생각하면서도, 언젠가 그런 행동을 한 나 때문에 누군가 그런 희망을 가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이렇듯 우리는 철저하게 자신의 영향력에는 눈을 감고 있다.

― 책 《프레임》, 최인철




참고 도서

책 《냉정한 이타주의자》, 윌리엄 맥어스킬

책 《프레임》, 최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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