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서용마 Oct 27. 2019

가능하다면 시처럼 써라


 구청에서 직원이 나와 치매 노인의 정도를 확인해 간병인도 파견하고 지원도 한다 치매를 앓는 명자네 할머니는 매번 직원이 나오기만 하면 정신이 돌아온다 아들을 아버지라, 며느리를 엄마라 부르기를 그만두고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고 며느리를 며느리라 부르는 것이다 오래전 사복을 입고 온 군인들에게 속아 남편의 숨은 거처를 알려주었다가 혼자가 된 그녀였다


― 기억하는 일,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아들과 며느리는 구청 직원이 찾아올 때만 멀쩡한 척하는 명자네 할머니가 얼마나 야속할까? 프로이트에 따르면 기억은 인간 존재 그 자체라고 했다. 명자네 할머니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존재를 조금씩 잃어간다. 아니. 아들을 아버지라, 며느리를 엄마라 부를 정도라면 이미 거의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가 절대 놓지 않는 기억이 하나 있다면. 오래전 사복 군인들에게 남편의 거처를 알려줬던 일이다.


박준 시인은 명자네 할머니의 이야기를 몇 줄 안 되는 시로 표현했다. 짧은 문장이지만 그녀가 지금까지 걸어왔을 기나긴 세월이 평탄하지만은 않았으리라는 사실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기억을 잃고 있는 그녀는 행복했던 순간은 빼앗기게 내버려 둘지라도 남편을 잃은 기억만큼은 놓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만 남은 가족을 지킬 수 있으니까.


고통은 사람을 한 단계 성장시켜주기도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면 자라나기를 멈추게 만든다. 시대는 변했지만 그녀의 기억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는 까닭이다.




우리가 글을 써야 한다면 가능한 시처럼 써야 할 것이다. 구구절절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 앞까지 차올라도 거기서 멈출 줄 아는 시처럼 말이다. 이성복 시인은 "시 쓰는 게 별 게 아니라 타인을 위해 신발을 바깥쪽으로 돌려놓는 행위"라고 했다. 감정을 배설하는 글은 나를 위한 글이다. 반면 감정을 절제하는 글은 타인은 위한 글이다. 내가 먼저 울면 타인은 울 기회를 놓친다. 나만 개운하면 그건 일기다. 그러니 글이라고 한다면 전달하려는 내용이 많을수록 되려 간결하게 표현하고, 기억하기 좋게 표현하라. 가능하다면 시처럼 말이다.




지난주에 <명상은 자랑이 될 수 없다>라는 글을 쓰면서 지적을 받았다. 의도가 명확하지 않고 용어가 거슬린다는 댓글이었다. 그 의견에 반박할 이유는 나름대로 가지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잘 읽히는 글'을 지향하는 내가 글을 쓰면서 굳이 쓰지 않아도 될 표현을 남발하고 있지 않는지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다.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누군가를 보고 ‘세상은 아직도 따뜻해’라고 생각하면서도, 언젠가 그런 행동을 한 나 때문에 누군가 그런 희망을 가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이렇듯 우리는 철저하게 자신의 영향력에는 눈을 감고 있다.

― 책 『프레임』, 최인철


매번 내가 쓴 글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지만 관심이 있었지. 내 글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영향력 있었을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충분히 대체 가능한 표현이 수두룩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책 『생각에 관한 생각』 에서 믿을만하고 똑똑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면 간단한 말로도 충분할 때 괜히 어려운 말을 쓰지 말라고 한다. 우리의 생각은 직관을 담당하는 시스템 1과 머리를 써야 하는 시스템 2로 나눠지는데, 그중에서 시스템 2는 게으르고 평소에 머리 쓰기를 싫어해서 평소에 주로 움직이는 생각은 시스템 1이다.


댓글 남겨주신 독자 분은 평소에 인지적 편안함을 느껴 내 글을 술술 읽었을 테지만, 최근 명상 글에서는 배턴 터치, 운명의 데스티니, 아티클 등의 단어를 보고 인지적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다. 편안함은 어떤 위협도, 주의를 돌릴 필요도, 더 애쓸 필요도 없이 모든 것이 순조롭다는 표시다. 반면 '압박감'은 지금 문제가 있으니 시스템 2가 가동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았더라면 독자 분은 시스템 1에서 편안하게 계속해서 글을 읽었겠지만 평소와 다른 생소한 표현이 눈에 띄면서 불편함(인지적 압박)을 느꼈다.


인지적 압박은 압박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시스템 2를 작동시켜서 시스템 1이 제시한 직관적 답을 거부하게 만든다.


시스템 2가 작동된다는 뜻은 지금까지 순조롭게 넘어가는 것도 이제부터 의심하겠다는 뜻이다. 잘 읽힌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갔던 것들도 이제는 더 엄격한 기준으로 바라볼 것이고 사소한 맞춤법도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글은 적확하게 표현하면서 간결한 시처럼 써야 한다. 앞으로 내가 써야 할 글의 태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박준, 이성복 시인의 시 필사를 시작했다.





관련 도서

책 <생각에 관한 생각>, 대니얼 카너먼

책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책 <프레임>, 최인철



매거진의 이전글 명상은 자랑이 될 수 없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