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나는 슬픔을 공부하겠다.'
그러니까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신형철 평론가는 그것이 슬픔에 대한 공부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를 향해있지 않는데, 만약 우리를 향해야 했다면 그는 '슬픔을 공부해야 할 것'이라고 방향을 살짝 틀었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는 네가 아니라 내가 지금부터 공부하겠다고 했다.
"인간에게 특정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결함이라는 것. 그러므로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이 역설을 인정할 때 나는 불편해지고 불우해진다."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타인의 슬픔에 대해 우리는 스스로 유효기간을 정해놓고, 그 기간이 끝나면 편의점에서 마치 못 먹을 폐기 음식과 마주한 것처럼 여전히 슬픔을 느끼고 있을 타인에게 말한다. '이제는 정신 차릴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 말라고'
그런데 지금 느끼는 그 불편이 타인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우리는 좀처럼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아니,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 역설을 인정할 때, 겨우 포장하며 살았던 내 인생이 다시 불우해지는 까닭일까.
슬픔은 불편하다. 쉬고 있어도 쉬는 것 같지 않고 지금 하는 일을 모두 멈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슬픔은 나를 조금씩 젖게 만든다. 처음에는 발만 적셨다가 다음은 무릎. 그다음은 허리. 차례대로 나를 삼켜 수영 조차 못하는 나를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그런 불편함은 다시 슬픔을 불러온다. 그러니까 슬픔은 또 슬프다. 내 슬픔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현실에서 타인의 슬픔이 불편한 까닭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나도 슬픔을 공부하겠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이 참혹한 짓이다.
그러니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 졸고, <책을 엮으며>,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참고 도서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