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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Nov 03. 2019

나는 여전히 잘 듣는 사람이고 싶다

말 잘하는 건 돈이 되는데, 잘 듣는 건 왜 돈이 안 되는 걸까?

나에게 부족한 게 있다면 그중 하나는 듣는 능력일 거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다가도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면 입이 근질거리고,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머릿속에서 궁리하느라 여념이 없다. 일본에서 20년 동안 1,000명이 넘는 유명 인사들을 인터뷰한 아가와 사와코는 말을 배우는 데는 3년이면 충분했지만 듣는 것을 배우는 데 20년이 걸렸다고 했다. 수천 명을 만난 전문 인터뷰어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나는 오죽할까. 듣는 게 이렇게나 어렵다.


실컷 떠들고 집에 가는 길은 후련하다. 말하는 사람은 한 명이지만, 듣는 사람은 몇 명이어도 상관없다. 개운한 느낌이 든다면 그건 만족할 만큼 떠들었다는 이야기다. 스스로 만족할 정도면 그건 과했다는 뜻이다. 아쉬워해야 한다. 많은 말을 내뱉고 '아까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할 게 아니라, '그 말 정도는 했어도 괜찮았을 텐데'라고 아쉬워하며 차라리 다음을 기약하는 편이 낫다.


그런 까닭에 요즘에는 '저 사람 진짜 말 잘한다'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보다, 뒤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묵묵히 텍스트로 풀어내는 사람에게 눈길이 간다. 내 생각을 말하는 건 쉽지만 상대의 말을 주워 글로 남기는 건 어렵다.


한국에서 15년 넘게 전문 인터뷰어로 활동하고 있는 지승호씨는 최근 책 <타인은 놀이공원이다> 북토크에서 여전히 먹고사는 일이 걱정이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한 분야에서 무려 15년이다. 한국 사회에서 말 잘하는 건 돈이 되는데, 잘 듣는 건 왜 돈이 안 되는 걸까? 인터뷰를 전문적으로 하는 그가 2015년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상하게 한국 사회는 느려 보이고 성실한 걸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 면이 있어요. ‘내가 열심히 하면 저거보다 나을 텐데?’라고 생각을 하는데, 실제로 경기에 나갔을 때는 아닐 수 있거든요. 밖에서 보는 것과 실제로 맞닥뜨리는 게 다를 수 있어요. 뭔가 투덜거리는 것 같아서 슬프지만(웃음). 정말 그냥 받아 적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면, 왜 이렇게 편하고 좋은 일을 사람들이 안 하는 걸까요?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일인데요.

“내레이션이 너무 많으면, 다큐도 재미없잖아요” (채널예스)


이 말을 듣고 찔리지 않을 사람이 어딨을까. 나는 팔짱 끼고 멀리서 평가하기를 좋아하지. 누군가가 "직접 링으로 나가보는 건 어때?"라고 묻는다면 '내가 왜 굳이..'라고 말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상대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을 때, 그냥 흘려넘기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물어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하는 말은 다른 사람이 내심 잘 들어주길 바라면서, 다른 사람의 말은 경청해본 적이 있는가. 그저 듣는 척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북토크에서 사회자는 지승호 인터뷰어한테 "요즘은 전문 인터뷰어가 아니어도 유명한 사람이나 기자들을 포함해서 누구든지 인터뷰어가 되는 세상인데 불안하지 않냐"라고 물었다.


"인터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단행본 낼 정도로 긴 호흡을 가지고 인터뷰하는 사람은 제가 유일할걸요. 아무나 저처럼 못해요. (웃음)"


웃으면서 했던 그의 대답에는 자신감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잘 듣는 사람은 잘 적어두는 사람이다. 꼭 펜이 없더라도 마음으로라도 말이다.


잘 말하는 사람에게는 귀를 열지만,
잘 듣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연다.

― 일본 전문 인터뷰어, 아가와 사와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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