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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Dec 29. 2019

나는 시처럼 글을 쓰고 싶어


"나는 시처럼 글을 쓰고 싶어"라고 매일 같이 내뱉던 아이가 시(詩)를 따라쓰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금방 싫증을 느끼고 포기할 줄 알았는데 몇 개월이 지나도록 필사는 계속 하더라.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는 다른 사람의 시가 아닌 자신의 시를 쓰기 시작했다.





1. 

피어난 마음


밥 생각이 없어

끼니를 거를까 하다가

그래도 수저를 들었습니다

그제서야 다시 시작할 

마음이 피어났습니다


2. 

꽁꽁


꽁꽁 언 빙판길

넘어질세라

평소보다 느려지는 발걸음

꽁꽁 숨겨두었던 내 마음

들킬세라

평소보다 빨라지는 심장소리

 

3.

전원 버튼


전원 버튼을 누르면

그제서야 눈을 뜨는 컴퓨터처럼

뜨거운 커피 한 모금은

전원 버튼이 된다

입천장이 데일라

천천히 목 뒤로 넘기며

문득 

나를 깨워주는 것들이

어디에 있나하고

떠올려본다

사람

음식

공간

그리고

지금 나에겐

연필이 필요하다



4.

가로등 불빛


어두컴컴한 밤길을 비추는

가로등 불빛 하나가

오래 전부터 깜빡입니다

아직 그 자리를 비추고 있는데

곧 꺼지지 않을까 싶어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바라봅니다

올 때마다 즐거웠다는 말 한 마디가

발걸음을 가볍게 합니다

여전히 그 곳에서

제 역할을 다 하는 불빛처럼

계속 걸어야겠습니다


5. 

쓰레기 봉투


쓰레기 봉투를 

하나 샀습니다

공간이 넉넉하더군요

손이 가는대로 버렸습니다

금방 채워져서 꾹 눌렀습니다

그랬더니 여전히 넉넉하더군요

여러번 버렸더니 이제는 몇 번을 눌러도

더 이상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아껴쓰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 출근 길에 

쓰레기 봉투를 버리러 갔더니

봉투에 가득 담긴 건 

쓰레기가 아니라 시간이었습니다


6. 

불청객


손님이 찾아온다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어디서 왔는지 중요하지 않다 말한다

그럼 무엇이 중요한지 묻는다

나를 신경 쓰지 않는게 중요하다 말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묻는다

그건 너의 몫이라

너가 스스로 깨닫게 해주기 위해

내가 자주 찾아오는 것이라

나는 불청객이 아니라 말한다.

뒤에서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돌아본다.

그곳엔 외로움이 다녀온 흔적만 덩그러니 남았다



7. 

벽이 나를 밀었다


내가 벽을 밀자

벽이 나를 밀었다

숨을 고르기 위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한 걸음 더 물러났다

다른 곳에는 벽이 없었다

나는 그 곳으로 달려갔다


8. 

덜 마른 머리카락


밤새 비가 내렸다

풀이 비를 머금은 모습이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 같다

오늘도 지하철은 풀숲이다


9. 

우리는 서로를 부러워한다


너는 내심 부러운 기색이었다

나는 묻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네가 나를 부러워할 때

나는 너를 부러워했다

그 둘은 단 한 번도 일치한 적이 없었다

터놓지 않았으니 보여준 적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부러워하기 바빴다





글쓰기에서만큼은 부지런했던 작년과 올해에 비해 내년부터는 아마 게을러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도 '시 쓰기'와 매거진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마음'만큼은 시간을 조금씩 내서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쓴 시 아홉 편도 부끄럽지만, 앞으로 쓸 시는 더 부끄러울 것 같은 마음에 세상에 내놓지 못하고 노트에 꽁꽁 숨어지내겠지만 그럼에도 2020년에는 꾸준히 저만의 시(詩)를 써보려고 합니다. 아마 쓰다가 또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시시한 시 한 편 쯤은 남겨보아야겠지요.


올해 6월부터 스타트업에서 마케터 또는 에디터라는 불분명한 경계에서 일하는 제가 내년에는 그 흔적을 조금씩 남겨보려고 해요. 개발자에서 왜 마케터로 전직을 했는지부터, 현재 스타트업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는지까지 일하는 마음을 글로 표현할 예정입니다.


시 쓰기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마음 많이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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