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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Dec 01. 2019

글의 기쁨과 슬픔

자기 자신으로 살아라


책 <말하다>에서 김영하 소설가는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 수업을 가르쳤던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학생들은 둥그렇게 모여 앉아 '나는 용서한다'로 시작하는 글을 쓰는 것이었다. '나는 용서한다'로 시작하니 그 뒤에는 지금까지도 용서하기 어려웠던 일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마련이다. 방금까지도 아무렇지 않았던 학생들은 그 문장과 마주하는 순간 학창 시절 왕따를 당했던 기억, 나를 험담했던 친구의 기억이 저절로 떠오른다. 수면 깊숙이 묻어두었던 그런 기억들을 말이다. 어떤 학생은 도저히 못 견디겠다며 강의실을 뛰쳐나갔고, 또 다른 학생은 아직은 용서할 때가 아니라며 글쓰기를 포기한다.


글을 쓴다는 건 괴로움을 쓰는 것과 같다. 쓰지 않았더라면 생각하지 않았을테고 느끼지 않았을텐데 뭐라도 남겨보겠는 마음에 쓰기 시작한 글은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나를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슬프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도 있지만 글을 쓰면서 슬퍼지기도 한다. 굳이 마주하지 않아도 될 내 한계를 고스란히 느끼면서 글을 쓴다는 건 그래서 고통이다. 쓰는 것도 고통이지만, 그 고통을 통해 우리는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 때문에 한 번 더 고통을 느낀다. 그래서 그 과정과 마주하기 싫은 사람들은 쓰기를 두려워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표현함으로써 우리는 더 강해진다. 상처가 생긴 자리는 처음에 쓰라릴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딱지가 생기고 다시 새살이 돋 듯이 글도 마찬가지다. 쓰면 쓸수록 상처는 내 삶을 휘감는 거대한 해일이 아니라 해안가로 계속 떠밀려오는 잔잔한 파도일 뿐이다. 무뎌지기 마련이다. 


책 <알고리즘, 인생을 계산하다>에서 삶의 끝에 가까워질수록 사람은 가장 의미있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면 즐거움에 집중하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의미에 집중한다. 젊을 때는 새로운 사람들이 많은 파티에 참석하는 게 즐겁지만, 나이 들어서는 썩 달갑지 않은 이유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면서 유독 눈에 띄는 점은 아이를 다 키우고 이제 글쓰기를 통해 본인을 표현하고 싶은 40대~50대 어머니들의 절실함이다. 그녀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데 익숙한 20~30대보다 단어나 문장 구조가 엉성하지만 살아온 인생에서 묻어나는 스토리에 특별한 매력이 있다.


정직이 우월 전략인 게임을 찾아라. 
그런 뒤, 자기 자신으로 살아라.
― 책 <알고리즘, 인생을 계산하다>


내가 힘들 때 다른 사람의 주옥같은 글이 힘이 되기도 하지만, 과거에 비슷한 지점에서 끙끙 앓으며 해결책을 찾던 나의 모습을 내 과거 글에서 발견했을 때 더 큰 힘이 된다. 글이란 그런 것이다. 남들보다 잘 쓰려고 할 때보다 정직한 나 자신을 말할 때 더 가치있는 법이다. 그때부터 글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다.




참고 도서

책 <알고리즘, 인생을 계산하다>, 브라이언 크리스천

책 <말하다>,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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