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서용마 May 12. 2020

못 본 척하지 않는 사람들.

할 일이 많을 땐 허둥지둥이다. 우선순위를 정해 차례대로 일을 처리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이 일도 해야 하고 저 일도 해야 하니 퇴근은 언제 하고 일은 또 언제 할 것인가라는 생각들이 나를 좀먹는다. 그럴 때마다 일은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서 있다. 뭐 하나라도 진득하게 잘하고 싶지만 하나만 잘한다고 인정받는 시대는 지났다. 사람뿐인가. 주력 분야가 하나뿐이었던 기업들은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로 인해 크게 휘청거렸다.


오늘 하루는 깊게 파고드는 시간보다 넓게 흩어지는 시간이 많았다. 시간이 흩어질 때면 챙겨야 할 게 많다는 생각에 마음은 평소보다 더 분주하다. 분주한 시간에 존재할 때는 뭐라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하지 않지만 바쁨이 걷어지는 순간 불안감은 존재를 드러낸다. 치열한 하루를 보냈는데도 뭘 했는지 정의하기 어려운 하루의 끝은 공허했다.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불안하다면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러나 열심히 했는데도 불안하거나 공허하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때부터는 열심히는 더 이상 결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일에 있어서만큼은 날카로운 사람이 되고 싶지만 정작 날카로워진 건 마음이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쏟아내는 말은 감정적이었고 그런 말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상대방의 마음속에 살아남아 있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말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를 공격하는 가시가 되기도 했다.


일을 잘한다는  무엇일까. 맡은 일을 잘하는 사람일까. 다른 사람의 일도  일처럼 주도적으로 처리하는 사람일까. 그것도 아니면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아는  그릇을 가진 사람일까. 일을 잘하는 방법은 이렇게 생각하기 나름이라서 스스로 규정짓지 못한다면 일에 대해 고민될 때마다  모습은 상상했던 모습과는 자주 빗나간다. 일이라는  단면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맡은 일을 잘하는 사람은 철저히  몫과  몫을 구분 짓는 경향이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의 일까지 도와주는 사람은  배로 해내기 위해 자신을 갉아먹어야 한다. 무엇이든 받아들일  아는  그릇을 가진 사람은 그릇 어느 부분에서도 깊은 면이 없어서 하나만 진득하게 담아내지 못할 확률이 높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초라하다고 여겨질 때였다.
탐페레 공항, 책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맡은 일에 대한 자신감과 내 생각이 맞을 것이라는 확신은 언제나 중요하다. 자신이 없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때론 형편없는 일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것이며, 자기 확신이 없다면 시시각각 변하는 주변 상황에 휘둘려 나를 지키기 어렵다. 그러나 자신감이나 확신보다 더 중요한 게 하나 있다면 언제든지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태도다.


사원에게 쉬운 일도 부장에겐 어려울 수 있는 법이다. 배우는 태도를 갖춘 부장은 최신 트렌드에 능숙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따라갈 수는 있다. 그러나 배우기를 게을리하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 일을 좀 더 익숙하게 해내는 아래 직원에게 전가시킬 뿐이다. 이때 보통 본인의 부족함을 드러내기보다 별 거 아닌 일이니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일의 난이도를 과소평가한다면 큰 일도 그저 작은 일일 뿐이다.


영양제는 복용했을 때 효과를 바로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이전과 큰 차이를 못 느끼는 사람도 많다. 이럴 때는 보통 복용을 중단하면 그제야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알게 된다. 일도 마찬가지다. 누구든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성과를 크게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모든 일이 성과로 드러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일은 정의하기 어렵거나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성과는커녕 인정 조차 못 받는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사람은 자리에 있을 때보다 떠났을 때 비로소 그 자리가 크게 보이는 법이다.


작은 일도 크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을 찾아내 한 마디 건네주는 사람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런 일, 그런 사람에게 시선을 오래 두지 않는다. 암묵이 당연시될 때 이타적인 행동은 모습을 가린다. 마음이 존재를 숨길 때 행동도 덩달아 숨는다. 어쩌면 누구나 볼 수 없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이 아닌,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을 봤다고 말하는 사람의 태도만이 서로가 가지고 있는 날카로운 마음을 둥글게 깎아줄지 모른다.  못 본 척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생각으로 그 일을 하는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