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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Jan 17. 2021

하나뿐인 고향을,
저는 그렇게 잃었습니다.

책 <짜릿하고 따뜻하게>, 이시은

“고향이 어디야?”


이 질문에 저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건 인천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취업을 해서 인천을 떠나기까지의 시간을 계산해보면 여수와 인천에 살았던 시간은 비슷합니다.


그래서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제 대답은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최근에 오래 살았던 인천이라고 할 때도 있고, 태어났던 여수로 말할 때도 있습니다. 매번 바뀌는 대답처럼 고향은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옛날 사람들은 고향에서 오랜 시간 살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천에 살 때도 대부분의 인천 시민들은 전라도, 충청도에서 온 사람들이 많지 토박이는 거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인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인천은 잠시 거쳐가는 곳’ 또는 ‘지금 살고 있는 곳’ 이상의 의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카피라이터의 책을 읽었습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들이 쓴 대부분의 책은 좋았습니다. 책 <짜릿하고 따뜻하게>를 쓴 이시은 작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기존에 읽었던 책이란 느낌이 조금 달랐습니다.


사촌 오빠의 권유로 카피라이터가 된 작가는 일본 드라마가 좋아서 일본어를 공부했고, 일본의 광고와 카피에 관심이 부쩍 늘었습니다. 덕분에 이 책은 그녀가 좋아하는 일본 광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닙니다. 카피가 하나 등장할 때마다 작가는 자신만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낸 에세이를 들려줍니다. 책을 읽는 동안 그게 참 좋았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할머니와 고향에 대한 에피소드가 그랬습니다. 첫 번째로 보내는 뉴스레터의 제목을 “하나뿐인 고향을, 저는 그렇게 잃었습니다”로 지은 것도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책에서 할머니가 계신 곳이 고향이라 말합니다. 고향을 지역으로 인식하다 보니 항상 애매함을 느끼던 저에게 신선함을 주는 시선이었습니다.


인천에 가는 저에게 고향 가는 길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날은 그렇다고 할 것이고, 또 다른 날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겁니다. 그러나 그녀는 할머니 만나러 가는 날이면 할머니가 어디에 있든 늘 고향 가는 길입니다.


그녀의 글을 읽고 나서 ‘고향’이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저는 남들보다 고향이 한 곳 더 많았지만 거기까진 생각해보지 못하고 늘 애매함만 느껴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생각을 달리 먹어야겠습니다. 나는 남들보다 고향이 한 곳 더 있다고.


좋은 콘텐츠를 발견하면 만나는 사람마다 지겹도록 말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너 저번에도 말한 거 알지?’라는 말을 상대에게서 자주 듣습니다. 그만큼 제 안에만 담아두기 너무 아까운 콘텐츠라는 생각에 주변 사람들에게 퍼뜨리기 바쁩니다.


때론 좋다는 말로 끝내기 아쉬운 것들이 있습니다.

적어도 이 책이 저에겐 그렇습니다.


책 <짜릿하고 따뜻하게>, 이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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