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제대로 시작해보겠다는 다짐에 맥북을 샀습니다. 2016년 11월에 서피스를 사고 나서 거의 4년 만입니다. 오랜만에, 그것도 거금을 들여 산 노트북이라 배송 예정일이 조금이라도 당겨지지 않을까 싶어 생각날 때마다 애플 홈페이지에 들어갑니다.
일을 하다가도, 쉬고 있다가도 ‘혹시?’, ‘설마!’와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스칠 때마다 다시 사이트를 들어가 보곤 했습니다. 바뀌지 않은 배송 예정일을 보고 곧 실망할 테지만 잠시나마 기대하는 저를 보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일상에서 기쁨을 자주 느끼려면 무언가 기다리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요.
어린 시절 여수의 작은 마을에 살았던 저는 친구와 놀기 위해 친구 집 앞에 가서 크게 이름을 불렀습니다. 가끔은 할머니가 나와서 집에 없다고 말씀해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가 나와 밥 먹고 있으니까 10분 뒤에 놀이터에서 보자고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놀이터에 미리 가서 뭐하고 놀지 생각하며 친구가 밥을 다 먹고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오늘 뭐하고 놀지?’ 생각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웠습니다. 그러다 멀리서 친구가 보이기 시작하면 다시 이 곳에 올 것임을 알면서도 부리나케 뛰어가서 뭐하고 놀 것인지 생각해둔 것을 떠들며 놀이터로 함께 걸었습니다.
어느덧 그 꼬마는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놀이터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즐거워했던 것처럼, 주말보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목요일인 오늘이 다른 요일보다 더 기쁘다면 내일이 금요일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쁘다면 그건 주말이 앞두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건 어쩌면 실망 다음에 찾아오는 기쁨을 찾는 행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과 내일 기뻐할 저는 일요일이 되면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사실에 다시 슬퍼하고 말 테지만 묵묵히 맡은 일을 하다 보면 금요일은 다시 찾아오니깐요.
책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등을 쓴 박준 시인은 여전히 직장을 다닙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데도 왜 아직 직장을 다니고 있냐는 김필균 인터뷰어의 물음에 박준 시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길에 시달리고 월요일을 싫어하는 대신 금요일을 사랑하며···. 앞으로도 계속 삶의 비루를 느끼면서 계속 시를 쓸 것 같다.”
기다리는 게 있다면 우리는 그 무엇도 견딜 수 있습니다. 지금은 비루할지라도 결국 큰 기쁨이 찾아올 것임을 알고 있을 테니깐요.
이번 주에 추천하는 도서는 11명의 문학인을 인터뷰한 책이자, 글쓰기에 크게 슬럼프가 왔을 때 위로가 된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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