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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Jan 21. 2021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가 되긴 싫어


'나 이번에 바인더 샀어!'라고 했을 때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소식을 알리면 반응이 한결같다.


'그걸 왜 사?'

'바인더? 그게 뭐야?'


그때부터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이번에 새로 나온 거야. 뷰테로 가죽으로 만들었고…'

'가죽? 저번에 보니까 가죽으로 만든 다이어리 뭐 쓰던데? 또 산 거야?'


하.. 또 설명이 필요하다. 일단 한숨부터 쉬고 차근차근 설명한다. 물론 내가 설명한다고 해서 상대가 이해할리 없다. 그런데 설명하지 않으면 내 취미가 정당화되지 못하는 기분.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 소비가 잘못된 기분. 그 기분을 느끼기 싫어서 계속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이해 조차 못한 상대는 설득될 리 없겠지만.


바인더를 예로 들었지만 스피커, 신발, 향수, 자전거, 꽃, 레고, 만화책 등 그 어떤 취미로 바꿔도 통한다. 그런데 나라고 다를까? 내가 즐기지 않는 취미를 누군가는 즐기고 있고 마침 나에게 이번에 나온 새로운 제품을 샀다고 하면 다른 상대가 나에게 그랬듯이 똑같이 반응할 것이다.


'그걸 왜 사?'

'비싸지 않아?'

'이미 가지고 있지 않아?'

'한정판? 신지도 않는 걸 그 돈 주고?'


나쁜 의도는 없겠지만 바로 이 순간이 그 취미를 가진 사람에게는 많은 설명이 필요한 순간이다. 설명에는 에너지가 든다. 그것도 많이. 설명을 해서 상대가 이해하거나 설득된다고 하면 쏟은 에너지만큼 가치가 있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 나조차도 다른 사람들의 설명에 이해되거나 설득당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설명이 필요 없는 집단이 있다. 나와 동류인 사람.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다.


'저 이번에 라미 신상 만년필 샀어요!'


'와. 대박. 혹시 그거 이번에 한정판이에요?'

'저도 사고 싶었는데 벌써 품절이네요. 부럽워요.'

'만년필 많이 써보셨으니까 이번 만년필도 잘 쓰실 것 같아요'


내가 즐기고 있는 취미라고 해서 모든 정보를 접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함께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통해 신상품이나 새로운 소식을 빠르게 접하기도 한다.



출근길이나 쓰레기를 내다 놓으러 갈 때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옆집은 불편하기만 하다. 서로 옆집에 살고 있는 걸 알면서도 애써 모른척하기 바쁘다. 어느 순간부터 옆집 사는 이웃은 블로그 이웃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개인화가 점점 심화되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타인과 끊임없이 관계 맺기를 갈망한다. 대신 아무나 하고 관계를 맺긴 싫다. 나와 비슷한 사람만 찾고 싶을 뿐이다.


옆집에 사는 이웃은 물리적으로도 가깝고 얼굴도 알고 사는 곳도 안다. 그러나 옆집에 산다는 사실 말고는 접점이 없다. 대신 블로그 이웃은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지만 좋아하는 것이 하나라도 겹친다. 그러니까 이웃 신청을 했고 상대도 비슷하게 느껴 이웃 신청을 받아준 것이다. 성긴 관계*처럼 보여도 편안함을 느끼는 적당한 거리다.   


성긴 관계 : 관계가 싶지 않고 서먹하다.


어떤 취미가 되었든 밖에서 볼 땐 얕아 보여도 풍덩 빠지고 나면 깊기 마련이다. 같은 취미 내에서도 주특기가 나눠지는데 수영으로 예를 들면 잘 모를 땐 다 같은 물놀이처럼 보여도 자세히 보면 자유형, 평영, 배영, 접영, 계영 등 얼마든지 분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계속해서 비슷한 취미, 동류를 찾는 까닭은 그 안에서는 디테일한 세계를 다루기 때문이다. 디테일은 현실과 맞닿아있다. 내가 잘 모르거나 놓쳤던 것을 인식하게 해 주고 때론 그 디테일을 가진 내가 그 분야의 선구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동류가 아닌 외부에서는 추상적인 세계를 다룬다. 그래서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어떤 만년필이 좋은지, 어떤 향이 스트레스받을 때 잘 어울리는지는 쉴 새 없이 설명할 수 있어도 왜 좋은 스피커를 써야 하는지, 꼭 그 한정판 신발을 구입해야 하는지는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설명이 필요한 순간에는 혼자 있고 싶은데 취미를 즐기고 싶을 땐 혼자가 되기 싫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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