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부터 세면대가 말썽이었다. 이물질이 많이 끼었는지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이 시원하게 내려가질 않는다. 그래도 내려가긴 하니 불편함을 참고 며칠을 그대로 썼다.
그런데 물 내려가는 게 시원치 않으니 세면대가 금세 더러워진다. 안 되겠다 싶어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세면대 마개를 돌리면 쉽게 빠진다고 하는데 직접 해보니 빠지질 않는다. 그래서 귀찮은 마음에 그대로 또 며칠을 썼다.
욕실 바닥 청소를 하며 세면대 하단에 있는 배관을 보니 문득 떠올랐다.
‘유튜브에 검색해볼까?’
찾아보니 며칠 전에 인터넷에 본 방법과 다른 방법이었다. 하단에 있는 나사를 풀어줘야 마개가 열리는 세면대가 있다고. ‘혹시 우리 집 세면대가 그런가?’ 싶어 해 봤더니 그제야 열린다.
마개를 열어보니 이물질이 많이 끼었다. 보기 전까지는 ‘왜 이렇게 물이 안 내려가지?’ 싶었는데, 막상 직접 현장을 목격하니 안 내려갈 만도 하다. 이걸 보면 어떤 일이든 직접 마주하지 않으면 이상해 보이고 쉬워 보이는 법이다.
청소용 칫솔과 물로 이물질을 제거하니 금세 깨끗해졌다. 원래대로 다시 조립을 하고 물을 틀어보니 속이 뻥 뚫린 것처럼 물도 솔솔솔 잘 내려간다.
일상의 불편함을 잘 참는 편이다. 사실 잘 참는다기보다 큰 문제가 아니라면 굳이 시간을 들여가며 해결하는 게 귀찮다. “쓰는 데 문제없으면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사소한 불편함이면 그냥 넘어가는 식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사소한 문제라고 해서 불편함까지 작은 건 아니었다. 자주 마주하는 문제일수록 불편함이 또 다른 불편함을 낳았다. 이걸 생각해보면 어떤 날에는 그 불편함이 시발점이 되어 하루 종일 기분도 좋지 않았던 날도 있지 않았을까.
미국 행복 심리학자 에드 디너가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하지 않았던가. 불편함도 마찬가지다. 불편이 주는 불행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에어컨이 아예 작동하지 않아 기사님을 부르면 오기 전까지 며칠만 고생하고 나머지 여름은 시원하게 보낼 수 있지만, 덜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에어컨은 기사님을 부르기도, 그렇다고 부르지 않기도 애매한 상황에서 고민하다 여름을 보낸다.
불행은 불행을 부른다. 최악의 날은 언제나 좋지 못했던 한 가지 사건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그 사건이 있기 전에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부정적인 것들이 가득했을 것이다.
대형 사고를 얘기할 때 꼭 하인리히 법칙이 등장하는데 일명 1:29:300 법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큰 사고 1개가 터지면 그전에 29개의 작은 사고가 발생했고, 평소에 300번의 사소한 징후가 나타난다.
불행이라는 대형 사고도 마찬가지다. 큰 불행 전에는 29개의 작은 불행이 있고, 300번의 사소한 불편함이 우리 일상을 괴롭히고 있었다. 불편함을 불편하다는 이유로 방치하다 보면 작은 불행이 되고, 작은 불행들이 모여 큰 불행이 되는 셈이다.
지금 근처에 도사리고 있는 사소한 불편함을 제거하기만 해도 작은 불행의 씨앗은 제거된다. 아니면 어차피 올 불행이라면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어딘가에 있을 행복을 찾는 대신 불행의 씨앗을 제거하자.
‘가만, 집에 세면대 말고 또 불편했던 곳이 어디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