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는 그 시대를 대변한다. 나의 20대는 욜로(YOLO)였다. 한 번 뿐인 인생이니 재밌게 살다가자는 Drake의 <The Motto> 노랫말 ‘You Only Live Once’에서 비롯된 신조어다.
욜로를 지향하던 친구들은 지금이 가장 싸다는 강한 확신을 갖고 명품 시계와 명품백을 질렀고, 젊었을 때 많은 경험을 해봐야한다며 해외여행을 자주 떠났고, 주말마다 오마카세를 다니면서 인증샷을 남기기 바빴다.
쾌락과 의미는 언제나 상충한다. 욜로를 부정하던 친구들은 버는 족족 펑펑 쓰는 욜로족 친구들을 보며 ‘그렇게 쓰고 살면 돈은 언제 모으려고?’라는 물음에 ‘모아봤자 어차피 내 이름으로 된 집 한 채도 못 사잖아.’라고 말 한 마디면 충분했다.
월급을 벌어 집을 못 사는 건 20대였던 그때나 30대가 된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아마 40대, 50대가 되어도 마찬가지일 거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의 20,30대는 더 이상 욜로를 추구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욜로의 시대가 지나자 ‘사고 싶었던 물건을 질렀다고’ 선언하는 플렉스(Flex)의 시대가 왔다.
그런데 욜로와 플렉스는 무슨 차이일까. 책 <2022 트렌드 노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욜로가 인생에 대해 전반적인 ‘태도’, 즉 저축보다는 소비를 지향하는 가치를 말하는 것이었다면, 플렉스는 가격보다는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왔던 소비에 대한 갈증을 한 번에 터뜨리는 ‘행위’가 중요하다. 플렉스하는 사람은 저축도 열심히 한다.
사실 플렉스도 한물 간 느낌이다. 그런데도 욜로는 자취를 거의 감춘 반면 플렉스는 여전히 우리 삶 곳곳에 머물러 있는 까닭은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욜로족은 저축보다는 소비를 선호하는 반면 플렉스하는 사람들은 저축 및 소비 통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평소에는 그것을 착실히 수행하다가 월급날이 되면 그동안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기다렸던 물건을 결제한다. 플렉스하는 물건은 꼭 비싼 물건이 아니어도 된다. 다이소에 가서 사는 곰돌이 스티커 몇 장도 이들에게는 플렉스의 대상이다.
요즘 20대가 많이 쓰는 말 중 하나가 ‘갓생’이다. 신을 뜻하는 영어단어 ‘갓(God)’에 인생을 합친 신조어로 열심히 살자고 스스로 다짐을 할 때 많이 사용한다.
이 신조어는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사람들과의 만남이 제한되고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늘자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무기력감과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좌절하던 20대들이 무너진 일상을 다잡기 위해 만든 일종의 선언문이다.
10년 전의 20대와 지금의 20대는 상황이 같다고 할 수 없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하게 절망적이다. 그런데 과거 20대는 소비를 통해 절망적인 인생을 회피했다면, 지금 20대들은 루틴을 통해 무너진 일상을 다시 일으켜세우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태도가 무너진다면 그것은 복구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행위가 무너진다면 얼마든지 다시 도전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갓생은 플렉스와 맥락을 같이 한다. 플렉스는 물건이 대상이라면, 갓생은 일상이 대상이다. 둘다 매일 할 수는 없어도 내가 힘을 주고 싶을 때 잔뜩 우주의 기운을 모아준다.
과거의 우리는 절망적인 현실을 두고 농담처럼 ‘이번 생은 망했어요’라고 외쳤지만 요즘 친구들은 오늘은 망했지만 ‘내일부터 다시 갓생 살자!’를 외치기 시작했다. 밖에서 보면 무너질 때마다 주구장창 다짐만 외치는 그들을 보며 책임감 없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들 나름대로 절망적인 현실에서 긍정을 찾아내는 행위다.
그러니 주변에 누군가’갓생 살자’고 외친다면 잔소리나 ‘그게 무슨 뜻이야?’라고 묻는 대신 조용히 좋아요나 눌러주자. 응원하는 댓글을 달아줘도 좋고.
젊은 세대가 ‘열심히’ 사는 삶을 자랑거리로 삼은 것은 아마도 Z세대가 처음일 것이다.
- 책 <2022 트렌드노트> 66p, 신수정 외 6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