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집에 도착해서 우편함에 꽂혀있는 관리비 명세서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엘리베이터 안 쪽에 서서 바깥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계신다.
아무래도 입구가 열리면서 들린 인기척에 먼저 올라가시지 않고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올 사람을 기다리신 것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에는 이번 달 관리비가 얼마나 나왔는지 생각하느라 몰랐는데, 타고 나서 생각해보니 할머니가 나를 기다려준 것 같았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하다고 할까?’언제나 이런 마음은 표현할 수 있는 타이밍보다 뒤늦게 찾아와서 나를 고마워할 줄 모르는 벙어리로 만든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스마트폰을 끄적이고 있으니 금세 할머니가 누른 층에서 문이 열렸다. 할머니는 내리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시더니 나를 보고 해맑은 표정으로 ‘먼저 갈게요~~’를 외치며 내리셨다. 전혀 상상치 못한 그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마스크 속에 웃음꽃이 저절로 피었다. 그리고 그냥 그대로 서있는게 무안한 나머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할머니는 왜 처음 보는 내게 인사한 걸까?
넉살이 좋으신 걸까? 아니면 치매에 걸리신 걸까?
때론 상대가 건네는 여유에 있는 그대로 반응할 줄도 알아야하는데, 의도부터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의도부터 얼른 파악해야 책 잡히지 않는 세상이다. 그러다보니 상대가 건넨 무례 뿐만 아니라 호의도 의도부터 먼저 파악하는 게 습관이 됐다. 지난 10월 12일에 보냈던 뉴스레터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는’질문>에서 잘 지내?라는 상대의 질문에 오만가지 생각을 하는 나처럼.
할머니의 표정엔 그 어떤 의도도 없어보였다. 순간 의도부터 파악하려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안녕히 가세요’ 라고 말이라도 건넬 걸 그랬나? 아니면 ‘네 할머니 들어가서 쉬세요’라고 할 걸 그랬나. 역시나 꿀먹은 벙어리다.
이 할머니를 보니 몇 년 전에 기억 조차 희미한 어느 횡단보도에 서있던 노부부가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반대편에서 서있는 할머니를 배웅나와있는 것 같았고, 신호등이 보행자 신호로 바뀌자 양팔을 크게 벌려 얼굴에 함박꽃이 핀 할머니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 나도 늙으면 저렇게 늙고 싶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신기했던 건 그 전까지는 현재를 살기 바빴지. 나이 든 이후의 삶을 떠올린 적이 없다는 것. 그런데 오늘 엘리베이터에서. 그리고 몇 년 전 횡단보도에서 늙는다면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살면서 딱 두 번 들었다는 것.
앞으로 살면서 나는 이 생각을 몇 번이나 더 떠올릴 수 있을까. 아니면 반대로 나이 들었을 때 누군가의 삶에 그런 여유를 심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