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계가 나에게 행복을 선사하지 않는다. 나쁜 관계는 가차 없이 끊어 내야 한다.
좋은 관계를 늘리고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 행복을 위한 첫걸음이다.
코로나가 만들어 낸 이 상황은 그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중학교, 고등학교 나아가서는 대학교 친구들이 인간 관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때는 인터넷에서 만났다거나 또는 게임에서 만났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곤 했다.
그보다 더 과거에는 마을 단위로 인간 관계가 구성이 됐다. 마을을 벗어날 일이 거의 없으니 근처 학교에 진학을 했고 그렇다보니 동네에 비슷한 나이대가 곧 친구였다.
하지만 요새는 어떨까. 중고등학교, 대학교 동기들은 졸업 전까지 임시 친구일뿐 이후에는 친구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관계들이 많다. 그러고 보니 요새는 동창회라는 표현도 많이 퇴색됐다.
학창시절에 보면 학기 중에는 친한 애들이 아니더라도 친하게 지내곤 했는데 방학이 되면 정말 친한 애들하고만 시간을 보내거나 에너지를 쏟는다. 그 외에 연락이 오면 ‘굳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직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장에서 친구를 만들 수 있다? 없다?’라는 말을 종종 농담 삼아 술자리에서 하곤 하는데 그걸 쉽게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직장 동료를 휴가 중에 만날 수 있는가? 아니면 주말에 만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고 하면 충분히 친구 관계로 확장될 수 있지만 ‘음… 글쎄 꼭 휴가나 주말에 만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면 아직은 직장 동료일 뿐이다.
가만 보면 같은 학교에 다닌다고, 같은 직장에 다닌다고 해서 관심사가 비슷하지도 삶이 비슷하지도 않다. 그저 우연히 같은 학교(또는 직장)에 다닐 뿐이다. 그래서 그 안에서 비슷한 관심사나 삶을 가진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내가 책을 읽고 싶다고 해서 주변에서 책 읽을 사람을 찾으려면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미 읽고 있는 사람은 혼자 읽는 걸 선호할 확률이 높고, 읽지 않은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이유로 읽지 않는다. 누가 됐든 함께 읽기 위해선 설득을 해야 된다. 설득하자니 벌써 피곤하다.
반면 이미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독서모임에서는 설득 과정이 생략된다. (스스로만 참여하라고 설득하면 된다) 다른 이에게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서로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하지. 왜 책을 읽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의외로 살면서 ‘Why’를 담은 질문은 대답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다. 특히 그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할 수록 더더욱.
회사에 계신 부장님이 책도 사주고 맛있는 음식을 사줘도 함께 하는 독서모임은 싫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독서모임에서 부장님 또래 되는 분과의 대화는 재밌다. 애초에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관심사가 맞지 않기 때문에 나이가 보이는 것이다.
과거에는 친구 없다고 하는 게 ‘좁은 인간 관계’를 가진 사람으로 규정되는 것 같아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지만 요즘에는 오히려 당당하게 친구가 없다고 말하고 다닌다.
좁은 관계는 깊은 관계가 되지만 그 외에는 독서모임과 같은 관심사 기반으로 관계를 확장한다. 거기서 오는 관계는 깊지 않지만 관심사에 따라 계속 넓힐 수도 있고 원하지 않으면 다시 줄이기도 쉽다.
서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편한 관계가 ‘친구’지. 같은 동네에 살았고 같은 대학을 다녔다고 친구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러니 요즘에는 되려 말도 못하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이 없지만 큰 위안을 주는 반려동물들이 사람들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반려동물의 호칭이 ’강아지’에서 ‘해피’가 되고, ‘해피’가 ‘막내딸’이 된 것만 봐도 되려 사람들에게 위안을 찾기보다 위안을 줄 수 있는 대상과 관계를 맺는 시대가 됐다.
앞으로 관계 맺는 방식은 어떻게 변할까. 내가 생각하기로는 가족 외에 가족 같은 친구가 많아야 평균 1-3명 정도가 될 것 같고, 그 외에는 본인이 에너지가 닿는만큼 선택사항이 되지 않을까.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더 늘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좁은 인간관계에 충분히 만족하는 것이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알 수는 있지만 내가 숨기고 있는(혹은 말하지 않은) 진면목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관심사 기반으로 맺어진 관계에서 더 빨리 발견되기도 한다.
함께 독서모임했던 사람 중에서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몇 년동안 알던 친구보다 독서모임에서 알게 된 동갑내기 ‘OO님’이랑 오히려 더 깊은 관계가 된 것 같아요. 인터넷으로 친구가 된다는 생각이 지금까지 부정적이었는데 왜 서로 친구가 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20대 때만 하더라도 영원할 것 같은 관계가 서울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혼과 미혼, 아이가 있고 없고. 삶 곳곳에서 오는 선택의 분기점에 따라 갈라지고 또 갈라진다. 같아서 맞는 줄 알았는데, 달라지면 어쩔 수 없이 틀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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