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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Dec 06. 2022

10년 동안 꾸준히 기록하면서 깨달은 4가지

글의 제목을 '10년 동안 매일 기록하면서 달라지는 것'이라고 짓고 싶었지만 사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기록하진 않아서 그 제목을 쓰지 않았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가끔씩 슬럼프가 찾아왔고 이런저런 이유로 기록하기 어려운 순간들도 분명히 존재했으니까.


그런데 역설적으로 슬럼프와 기록하기 어려운 순간들 덕분에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록을 이어올 수 있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록하고 있었다면 오늘의 기록이 단순한 하루의 기록을 넘어 인생의 기록을 하는 중이니 부담감을 크게 느꼈을 테니까.


그래서 가끔은 무너져도 괜찮다. 무너져야만 그동안 추구했던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짓인지 깨닫기도 하는 법이니까. 긴 세월 동안 매일 기록할 수 있었던 까닭은 기록을 잘해서도 아니고 꾸준히 해서도 아니다. 잘하지 못해도 꾸준하지 못해도 포기하지 않은 덕분이다. 


이번 글에서는 10년 동안 꾸준히 기록하면서 깨달은 몇 가지 작은 진리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1. 기록 루틴이 있어서 쉽게 지치지 않는다.


취향이 분명한 사람들은 자기만의 루틴이 있다. 예를 들어 커피 마니아라면 글을 쓸 때는 과테말라산 원두를, 잠을 깨울 때는 에티오피아산 원두를 먹는 식이다. 


'그냥 커피면 되지, 종류가 달라야 돼?', 

'가방 하나로도 충분한데 왜 여러 개가 필요한 거야?'

'녹차, 홍차 말고 다른 차도 있어?'

'만년필이 10개나 있다고? 그거 비싸지 않아?'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카페인을 채우는 커피면 될 것을 왜 용도에 따라 나눠서 마셔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원산지에 따라 즐기는 각각의 매력이 있다. 커피뿐만 아니라 자전거, 차(Tea), 문구류 등에도 취향이 있는 곳 어디에든 적용할 수 있는 루틴이다.


루틴이 있어서 쉽게 지치지 않는다. 루틴이라고 불리는 취향 때문에 일반 사람들보다는 비용이 꽤 들지만 평생 즐길 취향이라면 그 정도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의도하지 않은 불필요한 관계, 충동 소비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줄이면 줄였지. 취향을 향유하는 데 있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현재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기록 도구 취향 아래와 같다. (대표적인 도구일 뿐 사실 이것보다 더 많다)


시간관리 : A5 사이즈 플래너

메모관리 : A6 사이즈 노트

일정관리 : Outlook, Calendars5, Spark

할 일 관리 : Things3, MS Todo 

업무관리 : Notion

기록관리 : Workflowy


비용만 하더라도 Outlook, Notion은 회사에서 월 구독을 하고 있고 Calendars5, Things 3은 몇만 원을 지불하고 앱을 구매했다. Workflowy는 개인적으로 월 $4.99달러를 내고 구독 중이다. 돈을 내지 않고 대안으로 쓸 수 있는 도구는 많지만 이 기록 도구들에 가치를 느끼기 때문에 지불하는 편이다.


시간관리는 주로 A5 사이즈의 종이 플래너에 쓰고 있는데 벌써 10년째 같은 사이즈를 쓰고 있다. 종이로 시간관리를 쓰고 있다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면 '구글 캘린더가 더 편하지 않아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물론 Outlook, Calendars 5와 같은 디지털 캘린더도 함께 쓴다. 다만 시간을 주무르는 측면에서는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가 한눈에 보기도 쉽고 직접 적으면서 일정을 챙기는 측면에서 훨씬 편하다.


메모 또한 과거에는 A5 사이즈를 고수했지만 현재는 A5에서 A6 사이즈로 넘어가는 중이다. 플래너뿐만 아니라 노트도 A5 사이즈를 들고 다니면 무겁기도 하고, 메모의 보관은 주로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기록하고 보관하는 '보관성'보다는 즉시 남길 수 있는 '휴대성'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2. 디지털과 아날로그, 중복 기록을 즐기게 된다.


기록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디지털 기록파, 아날로그 기록파. 둘의 공통점은 서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데 있다. 디지털 기록하는 사람은 무겁게 종이에 써야 하느냐, 매일 들고 다니는 게 스마트폰인데 굳이 또 하나 챙길 필요가 있나. 종이에 적어봤자 나중에 안 보게 되더라 식으로 말한다.


아날로그 기록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 정리하는 데는 종이만 한 게 없다. 스마트폰에 기록하는 사람들은 자꾸 딴짓하느라 제대로 기록 못한다. 때론 여러 개를 펼쳐놓고 기록해야 하는데 디지털에서 그게 가능한가?라고 말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 둘을 융합해서 써야 가장 좋은 퍼포먼스를 낸다. 디지털만 쓰는 사람은 아날로그의 장점을 못 보고, 아날로그를 쓰는 사람을 디지털의 장점을 못 본다. 둘을 함께 쓰면 '중복'으로 적어야 하는 단점이 생기지만 같이 써야만 얻을 수 있는 장점도 함께 얻는 법이다.


글씨를 못 써서 아날로그를 피하고,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아서 디지털을 피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익숙해지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는데 불편한 것에 익숙해지는 대신 익숙한 것을 고집한다. 


  

3. 기록해봤자 다시 안 볼 것 아닌가? 비관주의에서 벗어나기


주변에 기록하기를 자주 멈추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이렇게 기록하는 게 의미가 있나? 다시 안 볼 자료 왜 셀프 고행하면서까지 기록해야 되지?' 내면의 비관적인 소음에 금세 수긍하는 탓에 기록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기 어렵다고 말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은 낙관주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낙관주의자는 현재에 만족할 줄 알고 유쾌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그들은 실패하거나 궁지에 몰렸을 때도 상황을 잘 극복하고, 병적 우울증에 걸릴 위험도 매우 낮다. 면역력이 강하고 실제로 기대수명도 평균보다 높다.”


이상을 추구하는 낙관주의가 평소에 자주 하는 뜬금없는 말들은 현실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비관주의에게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확률은 낮아도) 본인의 행동으로 뜬금없는 말을 현실로 만들어낸다. 비관주의는 바로 그때 본인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당한다.


'쉬어도 돼, 지금 힘들잖아?'

'충분히 고생했어, 멈춰도 돼'


우리 내면에는 비관주의가 자주 찾아온다. 그들의 말은 가끔 찾아오는 낙관주의보다 훨씬 달콤하다. 그래서 멈추면 순간은 편할지라도 가까운 미래에 후회하는 법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비관주의의 달콤한 말에 멈추고, 다시 후회해서 시작하고 또 달콤한 말에 멈추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같은 실수 또한 끊임없이 재생하고 있다. 


현실을 직시하는 비관주의의 안 좋은 점 중 하나는 당장 도움되지 못하면 움직이지 않는 데 있다. 그래서 비관주의는 오래 기록하지 못한다. 기록은 당장 도움되기보다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일이니까.


기록해봤자 다시 안 볼 것 아닌가? 는 현재 관점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예측은 전문가도 못한다. 그런데 비관주의는 자꾸 한다. 그래서 기록할 때는 비관주의의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 지금 현명한 것 같아도 결국 현명한 자는 현재에 만족할 줄 알고 (확률은 낮아도) 움직이는 낙관주의 기질이다.


꾸준히 기록할 것이라면 비관주의는 멀리하고 낙관주의와 친해지자.   


4.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건 인생이 아니라 일상.


이동진 영화 평론가는 본인이 쓴 책 <밤은 책이다>에서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라고 말했다. 인생은 아무리 멋진 계획을 세워도 좀처럼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오늘 하루는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갈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건 인생이 아니라 일상이다.


일상이 튼튼한 사람은 대개 인생도 튼튼하다. 하루를 잘 보내는 사람이 인생을 좀처럼 망치는 경우는 없으니까. 


12월 6일인 현재에 '올해는 뭐하실 거예요?'라고 묻는다면 어떤 사람은 '올해요? 1달도 안 남았는데요? 할 수 있는 게 있나요?'라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고, 또 다른 사람은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지만 아직 한 달이나 남았으니 올해 세웠던 목표 중에 지키지 못한 목표 1개는 꼭 달성해보려고요.'라고 얼마 남은 시간에 초점을 맞춰 말한다.


같은 시간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인생을 자주 이야기하는 사람은 일상을 헛되이 보낼 확률이 높지만, 일상을 자주 얘기하는 사람은 굳이 인생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미 잘 살고 있을 확률이 높다.




어느덧 2023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2023년 계획을 짜고 있다면, 1년 전체도 좋지만 시작하는 1월에는 무엇을 해볼까도 함께 고민해보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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