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일을 하면 '아, 글 쓸 시간이여!' 이런 생각밖에 안 들어요. 물론 돈이 되긴 하지만, 내가 지금 글 쓸 시간을,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구나.. 싶고, 바람피우는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글 쓰는 일만 할 수 있다면!' 이런 마음이 늘 있어요."
책 <문학하는 마음 中 소설가의 마음, 최은영 소설가>
직장인 앞에는 '전업'이라는 단어가 붙지 않는다. (직장인 부업은 있어도) 부업 직장인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직업 앞에 '전업'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직업들이 있다.
전업 작가, 전업 투자자, 전업 유튜버.
주 40시간 이상을 일하고 다른 일을 추가로 한다는 건 피곤한 일이다. 말이 주 40시간이지. 출퇴근 시간에 준비 시간까지 포함하면 일이 우리 인생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그래서일까.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이 글을 쓰고, 투자공부를 하고, 영상 편집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대단하다고 치켜세운다. 반면 직장인들이 '힘들다', '피곤하다', '시간을 못 내겠다'라고 말해도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가볍게 이해하고 넘어간다.
돈을 벌어야 하는 첫 번째 직업이 있는 상태에서 자아실현의 욕구를 펼치고 싶은 두 번째 직업을 병행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남들 일할 때 (첫 번째 직업으로) 일하고, 남들 쉴 때도 (두 번째 직업으로) 일해야 하니까.
책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밝은 밤> 등으로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최은영 소설가는 2013년 중편 소설 <쇼코의 미소>로 등단했다.
"책이 나오기 전에는 충북 음성에 있는 극동대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를 했어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7시에 학교 셔틀을 타고 음성으로 내려가 9시 30분부터 다섯 시간씩 수업을 하는 일정이 이틀, 또 이틀은 영어 과외를 했어요. 학교 신문사 기자도 했고, 고려대학교 이공대 글쓰기 센터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서 글쓰기 튜터 같은 것도 했죠. 다 동시예요. 책이 나올 무렵에는 안양에 있는 고등학교 두 군데에서 방과 후 교사까지 했고.., 그러면서 작품도 발표해야 하잖아요. 그렇게 많은 일을 했었어요. 그러다 책이 나왔는데, 책이 팔리면서 인세가 들어오니까 일을 하나씩 버렸죠. 전에는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어요. 먹고살아야 하니까."
최은영 소설가는 전업 소설가가 되기 전 글쓰기 선생님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돈이 되는 다른 일도 해봤지만 글쓰기를 앞에 두고 바람피우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돈을 버는 일도 글쓰기와 관련된 일이라면 서슴지 않았다. 그 일들이 소설 쓰는 시간은 빼앗지만, 쓸 수 있는 기회를 계속해서 제공해주고 있으니까.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그 일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게 정답인 것 같지만, 정작 중요한 건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해서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다. 속도는 그다음이다.
최은영 소설가는 인세가 들어오면서 생계를 유지시켜 주던 일을 하나씩 '버렸다', 전업 소설가가 되겠다고 모든 직업을 버리는 무모한 일은 하지 않았다. 시간이 걸렸어도 결국 전업 소설가가 됐다.
지금 하는 일은 모두 버리고 '전업'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다는 건 어쩌면 그 일을 정말 하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 지금 일을 하기 싫은 욕구에서 기인된 것인지도 모른다. 정말 전업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지금 일을 유지한 채 남들이 쉴 때도 (두 번째 직업으로)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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