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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Nov 02. 2017

북바이북 <생각의 기쁨> 유병욱 작가 번개 후기

인생은 결국 어느 순간에 누구를 만나느냐이다.


오랜만에 판교 변두리에 위치한 북바이북 판교점을 다녀왔다. 처음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길을 찾기 힘들 정도로 꼭꼭 숨어있을 뿐만 아니라 서점 내 공간은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아담하다. 아담한 덕분인지 강연을 들으러 갈 때마다 적은 인원으로도 꽉 찬 느낌이 들고, 작가와의 거리도 무척이나 가깝게 느껴진다. (느껴질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무척 가깝다. 마치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만나는 가수처럼.)  


판교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제법 많이 이 곳을 방문했을 법한데, 저녁이 있는 삶과는 거리가 먼 SW 개발자를 업으로 삼다 보니 어려웠다. (아니 불가능했다.)


두 번째 방문이었던 오늘은 이번 주 내내 교육을 듣다 보니 시간이 되어 갈 수 있었고, 첫 번째였던 8월 14일 마저도 휴가라서 북바이북 작가 번개 후기에 참여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북바이북에서 강연을 듣는다는 것이 일상이지만 필자 같은 경우는 평일에 출근하지 않아야 갈 수 있는 이벤트와 같다. 그래서 이벤트 때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기 위해 브런치에 글로써 남겨놓는다. 




생각의 기쁨, 유병욱 Creative Director


처음 들었던 작가 번개는 '적게 벌어도 잘 사는 노후 50년'이라는 책을 쓴 황희철 작가님의 강연이었다. 그때는 책을 읽기도 했고, 당일이 휴가다 보니 시간도 넉넉하여 카페에서 사전 정보를 많이 찾은 후 강연에 참석했다. 하지만 이번 강연만큼은 미리 계획을 세워서 실천하는 내 성격과는 거리가 멀게, 신청도 현장에 가서 접수하고 책도 읽지 않은 채로 강연에 참석했다.


유병욱 작가님은 처음 본인을 소개할 때 '작가 VS CD'라는 문구를 보여주셨다. 광고계와는 거리가 멀다 보니 처음 'CD'를 보고 뭐지? 음반 얘기하시는 건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Creative Director의 줄임말이었다. (저만 그런 건 아니죠.......?)


현재는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로 유명한 박웅현 작가님이 대표로 계시는 TBWA Korea에서 일하고 계시고 시디즈, e편한세상, 대림 등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계셨다. 강연 중간중간 자신이 참여했던 광고를 보여주면서 그 안에 담긴 철학(?)을 설명해주시니 다른 강연들과는 달리 굉장히 신선했다. 


(디테일을 설명하는 시디즈 광고는 무려 4번이나 보여주셨다.)


네가 만든 광고가 네 명함


오랜만에 친구와 연락하거나, 의도치 않게 길거리에서 옛 친구를 만났을 때 우리는 '나중에 한 번 보자'는 말을 굉장히 쉽게 내뱉는다. 쉽게 내뱉은 만큼 그 약속은 쉽게 지켜지지 않는다. 그랬던 것처럼 작가님도 처음 회사를 퇴사했을 때 '나중에 한 번 올게요'라는 끝인사에 상사 한 분이 '그런 빈말하지 말고, 네가 만든 광고가 곧 네 명함이니 그거 보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할게'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당연하게도(?) 쉽게 약속했던 그 말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그 상사분의 말은 계속 기억 속에 남아 자신이 지금까지 성장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때론 누군가의 위로 한 마디가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잘하는 스텝들의 공통점


일하다 보면 수많은 스텝들 중에서도 특히 잘하는 스텝들이 있다고 한다. 그 스텝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자존감'이 높다는 것. 


'CD님 말만 하세요. 분부대로 실행에 옮기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스텝들은 일할 때 굉장히 편하지만, 아웃풋 측면에서는 그렇게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스텝들이 일할 당시에는 굉장히 불편하고 감정이 상할 때도 있지만 결과로만 승부해야 하는 프로 세계에서는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됐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자신의 말에 반박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려고 노력한다고 작가는 얘기했다. 



인생은 결국 어느 순간에 누구를 만나느냐이다.

   

강연을 들으면서 가장 공감이 많이 됐던 말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읽었던 책 <어린 왕자>는 그저 그랬고, 수학여행으로 다녀온 경주도 수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엔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는 추억이 돼버렸다. 이미 겪었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그 책을 읽지 않거나, 그곳을 가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돌이켜보면 가본 게 가본 게 아닌 경우가 많고, 읽은 게 읽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자면, 어린 왕자는 학교에서 추천도서라고 해서 강제로 읽으라고 했으니 읽었을 뿐이고, 경주에서 기억에 남는 건 오고 갔던 길과 숙소에서 선생님 몰래 마셨던 맥주 맛이었다. 온전히 느끼지 못한 그 책과 그 장소를 우리는 전부라고 생각한 채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돼서 읽었던 어린 왕자와 경주여행은 어떤가. 다시 한번 온전한 경험을 하고 나서야 어렸을 때 겪었던 그 경험이 전부가 아니었다고 깨닫는다. 


우리 인생 또한 결국 어느 순간에 누구를 만나느냐이다.


'어느 순간'과 '누구'가 반드시 접점에서 만나야 한다. 만약 어느 순간, 누군가가 빨리 오거나 뒤늦게 온다면 그저 흘러가는 많은 것 중 하나에 불과할지 모른다. 



식판과 평판


일을 할 때 우리는 '식판과 평판'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식판'은 직장에서 우리를 밥 벌어먹게 해주는 대부분의 일들을 얘기한다. 하지만 '평판'은 다르다. 내 커리어를 한 단계 성장시켜주거나, 우리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주기도 하는 일을 지칭한다. 어떤 일을 하다 보면 그런 순간들이 있다. '이 일을 하면 엄청 성장하겠는데?'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작가 또한 책에서 다뤘던 '식판과 평판'이라는 말은 사회초년생이나 젊은 직장인보다는 어느 정도 연배가 된 사람, 또는 시니어 직급에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는 다시 이야기한다. 일하는 시간만큼이나 개인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식판'이 되는 일이라면 개인 시간까지 투자해서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평판'이라고 생각되는 일들은 당신을 바꿔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 일만큼은 최선을 다할 것.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 


유병욱 작가가 다니는 TBWA KOREA에서는 창의력이 있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주니어 보드를 모집한다고 한다. 그때 '벽을 부수는 6주 과정'이라는 콘텐츠가 있는데, 2주 동안은 벽을 찾는 시간이고 남은 4주 동안은 그 벽을 눕혀보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그 벽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벽을 찾는데 시간을 주지 않고 긴급하게 이야기하라고 하면 대부분 마음속에 있는 벽보다 멋진 벽이나 마음에도 없는 벽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일요일이 2번 정도 포함된 2주의 시간을 가지면 대부분 본인을 되돌아보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그렇게 시간을 할애했고 대부분이 진지한 벽을 들고 온다고 한다.


폴댄스, 심리치료, 제3의 언어, 범죄심리학 등등..


평소에는 어떤 이유에서든 행하지 못한 벽들을 이 시간을 통해 스스로 눕혀보면서 내 앞을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한 단계 성장해줄 '계단'으로 생각하도록 스스로 깨닫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이 내용을 들으면서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게 좋다기보다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바스락 모임에 좀 가다듬어서 모임 식구들과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누군가는 힘들다고 한 일이 또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쉬운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서로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람이라는 이름의 책장


누구든 잘하는 것이 있고, 못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냥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메꾸기 위해 그것을 잘하는 사람을 찾아 도움을 청하면 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책장이 남들이 찾을만하게 가꾸어야 한다. 일방적인 것들은 항상 여러 가지 부작용이 도사리고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면, 본인 또한 또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결국 사람이라는 이름의 책장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이 되어야 한다.





책도 몰랐고, 작가도 몰랐다. 그저 내가 알고 있던 북바이북에서 내가 몰랐던 책을 썼던 내가 모른 작가의 어떤 '강연'을 한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이다. 작가는 스마트폰이 출시되기 전에  책 한 권을 들고 오사카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지하상가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허기를 채우려 어떤 가게에 들어섰는데 거기서 '텐동'이라는 음식을 만났다고 한다. 10년이 넘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먹었던 그 음식의 맛이 굉장히 뛰어났다는 기억이 날 정도로 맛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나중에 오사카를 방문했을 때는 그곳의 정확한 위치를 몰랐었는지, 가게가 망한 건지 그곳을 다시 방문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작가의 경험담처럼 가끔은 익숙하지 않은 것, 내가 접해보지 못한 것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작가도 책도 몰랐던 오늘 강연이 그랬다. 북바이북 작가 번개는 언제나 만족스럽다.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다면 항상 그곳을 향할테지만 그러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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