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봤다 말고, 해보는 중
나이 들수록 사람들 입에서 자주 튀어나오는 단어다. 단어는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결국 예전에 내가 해본 무엇에 대한 '허세'를 부릴 때 필요한 표현이다. 나이가 지긋이 들어서 버릇이 되는 그 말을 희한하게도 나는 스무 살 때부터 달고 살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나이에 무슨 왕년이 있었겠나 싶다.
그때 내가 늘어놓던 <왕년>으로 시작하는 일종의 경험담(a.k.a. 썰)은 지금 돌이켜보면 참 별거 없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20대 시절 내가 늘어놓던 왕년의 경험들을 잠시 소개해 보려 한다.
* 고2 크리스마스이브에 김성호의 '회상',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까' 등을 버스킹 하고 모은 성금 15만원을 절에(?) 기부했던 썰
* 5만원권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 각종 서약서를 쓰고 현금 10억을 은행 금고에 안전히 호송하는 알바를 딱 한 시간 하고 무려 2만 3천원을 받았는데 갑자기 돈이 돈 같이 보이지 않아서 감자탕에 소주 먹고 한 시간 만에 바로 다 써버린 썰
* 경기도 모처 나염공장 고액 밤샘 알바를 야심 차게 갔다 휴식시간에 천 더미에서 자다가 염색약품 향기에 취해 하루 만에 도망친 썰
* 전자책 회사에서 19금 야설 편집을 담당하며 얼굴 벌게 끈적끈적한 문단과 문단 사이에 들어갈 19금 사진을 하루 종일 고르는 게 주요 업무였던 썰
* 게임 방송국에서 스타크래프트 시합(임요환, 김가을 리즈 시절) 녹화 테이프를 6시간씩 보면 인코딩 작업을 했지만 정작 나는 스타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썰
뭐 대략 이런 시시한 썰들이다.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친해지면 뭐 대단한 척한다고 경험담을 떠벌리기 좋아했다. 그때는 제법 당당했다.
"왕년에 이런 일도 해봤지. 그게 뭐냐면…"
이런 말투를 쓸 때마다 그 순간엔 적어도 내 귀에 내가 굉장히 인생의 색다른 경험을 많이 해 본 사람처럼 들렸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귀를 쫑긋하며 관심을 보이는 게 신났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들 눈에 대단해 보였을 리는 만무하지만.
돌아보면, 내가 떠들어대던 왕년의 서사는 대단한 경험이라기보다는 나를 포장하기 위한 과대광고였다. 일종의 자기 PR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경험이 많아서가 아니라, 사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가리기 위해 더 열심히 떠벌렸던 것 같다. 무릇 학업에 그다지 큰 뜻(=소질)이 없었던 나는 적당한 학점과 적당한 토익점수를 확보하는 데 만족했다. 오히려 취업을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짧은 경험이라도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곤 했다. 물론 그 도전들이 무척이나 소중했던 경험으로 남았지만, 문제는 그걸 내가 나를 지나치게 과대포장하는 데 이용했다는 데 있었던 것 같다.
30대가 돼서도 이놈의 왕년타령은 그치지 않았다. 직장 생활하면서 겪은 소소한 에피소드가 엄청난 무용담으로 둔갑하고, 20대의 경험담에 MSG까지 더해져서 주변에 떠벌리며 살았다. 하지만 나이 들고, 직장도 꽤 오랜 시간 다니고, 실제 다양한 경험이 훨씬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다 보니 내가 떠벌렸던 이야기들이 얼마나 얇은 장막에 기대고 있었는지 금방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내가 "그 일을 해봤다"라고 말하면 정작 그 분야의 찐 고수가 어디선가 나타난다. 그리고 묻는다. "거기서 그거 해봤다는 거예요? 궁금하다. 자세히 말해봐요. 나도 3년 넘게 해 봤거든요.” 그 질문이 들어오는 순간, 내 왕년의 서사는 바로 3분짜리 단편영화로 축소된다.
어쩌면 내가 잠깐의 무용담으로 떠벌린 그 일을 진지하게 지속해 오던 사람들에 대한 예의를 모르는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40대가 된 이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왕년 이야기를 줄이기 시작했다. 말한다고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굳이 말 안 한다고 위축될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직장에서 왕년을 말하면 왕따가 돼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주의가 필요하다.)
대신 요즘 나는 왕년의 추억에 빠져 있기보단 오늘의 루틴에 더 집중한다.
토요일 오전 9시,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펼친다. 한 주를 되짚으며 떠오르는 문장들을 키보드에 옮기는 시간이 바로 오늘이다. 누가 이 비루한 글을 읽을지 모르지만, 그냥 습관적으로 쓰는 오늘을 즐긴다. 왕년의 나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더 솔직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중이다. 아내와 제이는 가끔 내 글을 읽고 “제법 재밌다"라고 말해준다. 그 말 한마디면 밋밋했던 한 주가 충분히 의미 있어지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니,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정말 실감 난다. 나는 예전보다 열정적이지 못하고, 몸이 가볍지 않고, 다양한 것을 추구하지도 못하고 있다. 시간도 체력도 내 곁에서 떠나간다. 고개를 일부러 숙이는 게 아니라, 저절로 숙여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도 나에게 조용히 경보를 울리기 위해 글을 쓴다. 한가롭게 왕년 타령을 하지 말자고 다짐의 한 줄을 메모장에 적어두며.
왕년주의보 발령 - 허세 부리지 않기
왕년을 이야기하지 않다 보니 예전보다 훨씬 덜 피곤하다. 허세 부리는 비용이 절감돼서 그런 것 같다.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앞으로의 목표는 단순하다. 왕년을 자랑하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 바로 왕년보다 오늘에 더 충실한 삶 말이다.
그런데 가끔은 여전히 입에서 “내가 옛날에…”가 불쑥 튀어나오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 내 말을 끊는다. 왕년에 붙잡혀 살기엔 앞으로의 시간이 아직 남았기에 나는 그냥 이렇게 정리하기로 했다.
왕년은 단문으로 쓰고, 오늘을 장문으로 쓴다.
“그래서 당신은 왕년은 어땠나요?”
“왕년에 별거 없었고…
오늘 제법 큰일이 있었죠.
큰 출판사에서 제 글을 책으로 내고 싶다는 연락이 왔어요.”
이 문장을 언젠가 진짜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은… 그냥 상상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