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반(反) 아침형 인간이 되었을까
“제이야, 일어나.”
대답이 없다.
“제이야. 학교 늦는다.”
여전히 대답이 없다. 이불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나는 목소리를 한 톤 높인다.
“일어나라고.”
그제야 이불이 꿈틀거린다. 아주 잠깐 신음 같은 소리가 들리고, 다시 고요가 찾아온다. 시계를 본다. 7시 20분. 이미 세 번째로 깨우는 중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방을 나선다. 5분 뒤 다시 올 것이다. 그리고 또 올 것이다. 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려면 최소 네다섯 번은 깨워야 한다.
오늘도 생각한다.
얘는 진짜 누굴 닮아서 이렇게 아침잠이 많은 걸까.
한때 나는 잠에 있어서는 나름 일가견이 있었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기로 꽤 유명했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집에서 문을 잠그고 잠들었다가 학교에서 돌아온 누나가 집에 들어오지 못해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아마 축구를 몇 시간이나 하고 지쳐 쓰러져 잤을 것이다.
그 무렵 엄마는 병원에 입원해 계셨고, 집에는 어른이 없었다. 괜히 겁이 나서 문을 잠가두었던 것 같은데, 초인종도 없는 집 대문을 아무리 두드린들 내가 깰 리가 없었다. 누나가 결국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누나의 분노는 아직도 생생하다.
망나니도 사람 된다는 군대에 가서도 내 잠버릇은 더 심해졌다. 이등병으로 자대 배치를 받은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옆자리 한 달 고참이 말했다.
“야, 너 참 대단하다. 고참이 후임병 깨워야 하는 게 말이 되냐?”
특히 상병 시절의 일은 아직도 가끔 꿈에 나온다. 불침번을 겸한 일직하사 근무 중, 새벽 5시쯤 내무반에서 몸만 잠깐 눕혔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산꼭대기에 위치한 상황실에서 내가 근무하던 당직실로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받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관사에서 자고 있던 주임원사에게까지 연락이 갔다.
잠에서 깼을 땐 이미 주임원사가 내무반 문 앞에 서 있었다.
“도대체 어떤 X새X가 당직이야!”
일반 후방부대였어도 큰일 날 일이었다. 하필 그곳은 강원도 철원군,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있던 GOP 부대였다. 적군을 코앞에 두고 당직병이 곤히 잠든 셈이다.
“전시였으면 넌 총살이다”라는 말과 함께 영창 갈 짐을 싸라는 지시가 떨어졌지만, 초저녁에 위병소 근무를 두 번이나 돌았다는 사정이 정상참작이 되어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영창 가는 버스에 올랐다가, 주임원사의 마지막 자비로 내려왔던 기억은 아직도 아찔하다.
신입사원 3개월 차에 이런 일도 있었다. 지방에서 시작한 회사 생활, 사택에 살던 시절이었다. 본부장 보고 자료를 준비하다 밤을 새웠다. 당시에는 체력도 좋았고, 군기가 바짝들어서 밤샘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새벽 5시까지 일을 마치고 집에 가서 샤워만 하고 오려다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본부장 보고는 오전 9시였고, 나는 9시가 되도록 사택 침대 위에 있었다. 책상 서랍은 하필 자물쇠로 잠겨 있었고, 보고서는 공용 폴더에도, 메일에도 없었다. 그 파일은 미스터리하게도 나 혼자만 가지고 있었다. 다행히 내가 도착하기 전 서랍은 열려 있었고 보고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세수만 대충 하고 나가 들은 말은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니 회사 생활 적성에 안 맞으면 고마해라.”
돌이켜보면 내 삶에 유독 잠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은 이유는, 밤에 쉽게 잠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년 시절 나는 새벽까지 만화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밤이면 야식과 술이 따라왔다. 1년에 350일쯤 술을 마신 적도 있었다. 몸이 차분히 수면 모드로 진입하는 일은 내게 없었다. 그냥 쓰러지듯 잠드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지금 내 잠을 방해하는 1순위는 휴대폰이다. 매일 밤 휴대폰은 머리맡에서 나를 기다린다. 침대에 누워 이것저것 보다 보면 어느새 새벽 1시를 넘긴다. 종이책은 이제 어깨와 목이 아파 오래 들고 보지 못해 전자책으로 바꿨다. 거치대에 올려놓고 리모컨으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역시나 1시는 훌쩍 지나 있다. 아침 6시 반이면 일어나야 하니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다. 하루가 힘들었을수록 잠은 더 멀어진다. 뭔가 탈출구가 필요하고, 그 탈출구는 너무 쉽게 손에 잡힌다.
물론 이제 나이 탓인지 예전처럼 못 일어나는 경우는 없다. 나도 제이처럼 알람을 세 개씩 맞춰놓기 때문이다. 중단하지 않으면 8분 단위로 무한 반복된다. 능동적으로 잠에서 깨는 경우는 딱 하나, 화장실을 더는 참을 수 없을 때뿐이다. 이 슬픔은 다른 편에서 진지하게 한 번 다룰 예정이다.
아무튼 중학교 3학년이 된 제이는 요즘 뭐가 그리 바쁜지 새벽 1시, 2시가 되도록 잠을 자지 않는다. 그러니 아침에 깨우면 함흥차사가 되는 것도 당연하다. 가짜로 화난 척 버럭해야 겨우 일어난다. 대부분은 연기지만, 가끔은 괘씸해서 진짜로 소리를 지를 때도 있다.
늦은 밤, 가끔 제이 방 문을 살짝 열어보면 이불속에서 이어폰을 양쪽 귀에 꽂고 음악을 듣고 있다. 혼자 있는 방에서 굳이 이어폰을 끼고 있을 이유가 있을까 싶다가도, 저 나이에는 그게 필요한가 보다 하고 문을 닫는다. 나도 그랬을 테니까.
와이프와 함께 일찍 나와야 하는 날이면 거의 전쟁이다. 알람을 스무 개쯤 맞춰놓는다. 자명종, 스마트폰, 태블릿까지 3박자를 고루 준비한다. “나 일어났어”라고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내고도 다시 잠들어 지각한 날도 있었다. 그걸 보면서 크게 나무라지 못한다. 나와 별반 다를 게 없으니까.
요즘 아이들에게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는 자야 성장호르몬이 많이 나온다며 일찍 자라고 말하는 건 참 어렵다. 학원 수업은 보통 10시에 끝난다. 집에 오면 10시 반, 늦으면 11시를 넘긴다. 밥을 못 먹은 날엔 밤 12시가 다 돼서야 저녁을 먹는다. 이런 아이에게 일찍 자라고 말하는 게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나 또한 하루가 유난히 힘들었으면 보복심리처럼 더 늦게까지 깨어 있는다. 지친 날일수록 내 시간을 쥐어짜 쓰고 싶어진다. 십대 청소년이라고 크게 다를까 싶다. 새벽 1시에 제이 방문을 열며 “적당히 하고 자라”고 말할 때, 그 말이 꼭 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오랜 벗이자 통증의학 전문의 최 원장은 늘 누워서 휴대폰을 보지 말라고 잔소리한다. 나는 그럼 누워서 뭐 하냐고 반문한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우리는 스마트폰 없던 시절, 누워서 뭘 하며 살았을까.
그의 집에 가면 식탁 위에 휴대폰을 던져두고 자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런 시대에 저런 사람도 있구나 싶어 괜히 놀란다.
사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휴대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침대에 오르면 된다. 그게 전부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렵다.
어젯밤, 불 꺼진 제이 방문 앞을 지나며 생각했다. 저 아이도 지금 이어폰을 낀 채 휴대폰을 보고 있겠지. 나처럼.
오늘 아침도 제이를 깨우러 갔다.
“제이야, 일어나.”
대답은 없었다. 나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있는 걸까. 키와 얼굴(?)만이 아니라, 좋은 습관도 나쁜 습관도 고스란히 유전되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래도 오늘 밤엔 일찍 자야지, 하고 다짐한다.
제이도 아마 같은 다짐을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안다.
오늘 밤도 새벽 1시는 넘길 거라는 걸.
이게 우리다.
이게, 우리 집안의 유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