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장의 허상과 신매니저의 실상
이른 아침, 거울 앞에서 흰머리를 매만진다. 쉰에 가까워진 남자의 얼굴이 낯설게 서 있다. 잠을 깨려고 틀어놓은 뉴스에서는 오늘도 암울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환율 상승, 자영업 폐업, 부동산 폭등, 모 기업의 대형 계약 취소로 인한 주가 폭락, 그리고 희망퇴직. 금융권이든 유통업이든, 제조업이든 IT든 가릴 것 없다. ‘희망퇴직’이라는 단어가 빠지는 날이 없다.
사실 이런 뉴스는 20년 넘는 직장 생활 동안 수도 없이 봐왔다. 예전에는 ‘내 일 아니니까’ 별 감정 없이 흘려보내던 소식들이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말 그대로 귀에 꽂힌다. 쉰에 가까워지니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한가롭게 넘길 처지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안다. 통계에 따라 다르지만, 주된 직장에서의 평균 퇴직 연령은 대략 50세 전후라고 하니 오지 않을 것 같던 시점이 어느새 코앞까지 와 있는 셈이다.
가끔 이질감으로 가득 찬 사무실에 앉아있는 내게 누군가 뒤에서 이렇게 외치는 상상을 하곤 한다.
얼마 전 화제가 된 드라마 서울 자가 대기업 김부장 이야기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짠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직장 생활 25년 차, 서울에 자가를 보유한 대기업 사무직 부장 김낙수가 아산 공장으로 좌천성 발령을 받고, 이후 권고사직을 당하고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다. 설정만 놓고 보면 중년 남성의 비극과 극복의 스토리다.
(출처:드라마장면 캡처한 기사)
희망퇴직금과 그간 적립되었을 퇴직금을 합치면 대략 5억, 여기에 추가로 보유하고 있을 다른 자산까지 고려하면 오십 대 김낙수가 당장 새 직장을 구하지 않더라도 은퇴 생활 자체는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실이라면 어느 정도 자산을 꺼내 쓰며 새로운 일을 도모해 볼 여지가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김부장을 빠르게 나락으로 밀어 넣는다. 귀가 얇은 그는 아직 입주도 하지 않은 신도시 아파트 단지의 상가를 대출까지 받아 분양받고,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사실상 분양 사기를 당한다. 이야기는 결국 세차장에서 일하는 김부장의 모습으로 확장된다.
이미 소설 원작을 읽은 터라 드라마의 서사가 다소 불만스러웠다. 김부장을 마치 세상에서 가장 무능한 꼰대처럼 그려내는 전개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회사가 25년 차 부장을 내보내려는 이유는, 그가 갑자기 무능해져서라기보다는 조직 입장에서 고비용 구조가 되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를 굳이 빌런으로 만들어가는 초반부가 매우 거슬렸다.
오히려 현실의 김부장들은 대체로 유능하다. 오랜 경험을 통해 업무 흐름을 이해하고 있고, 협상력과 추진력은 여전히 강점이다. 문제를 찾자면 실력이 아니라 태도다. 일을 지나치게 잘 알고,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그 이상의 진폭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 상태.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변화의 방향에는 몸을 싣지 않으려는 마음가짐 말이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잘난 맛에 살던 사람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깨달음을 얻으며 극복해 나가는 서사는 언제나 소비되기 쉽다. 당신의 오만함과 게으름이 희망퇴직이라는 비극을 자초했다는 식의 이야기 구조는 김부장 이야기에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이런 서사는 현실의 김부장들이 겪는 불안과는 미묘하게 어긋나 있다.
우리는 드라마 속 김부장의 상황에 너무 쉽게 설득된다.
‘아, 저럴 만했네. 지가 잘못해 놓고 수습도 안 하네.’
‘저건 완전 월급 루팡이었네.’
‘대기업 다닌 거 맞나? 왜 저렇게 멍청하지?’
이런 감정으로 시청자를 안심시키는 장치들이 곳곳에 깔려 있다.
상가 분양 사기를 당하는 장면만 봐도 그렇다. 유튜브에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이미 옆에서 절대 관심 가지지 말라던 건물주 친구의 조언까지 있었는데도, 아무런 확인 없이 그것도 아내 몰래 큰돈이 필요한 투자를 결정한다는 설정은 과장에 가깝다. 대기업이라는 간판을 떼어 놓더라도 그는 한 조직에서 살아남아 리더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정보 수집과 판단, 협상과 교란을 익히지 않았을 리 없다. 특히 영업 조직 출신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서사를 밀어붙이기 위한 장치보다는 김낙수 스스로 오래 공부하고 분석했는데 결국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쪽으로 전개됐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김부장 이야기의 가장 비현실적 요소는 와이프다.)
현실로 돌아오면, 우리 시대의 김부장들은 드라마처럼 간단히 사기당하고, 무너지지 않는다. 대신 하루하루를 노련하게 버틴다.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걱정하고, 생각보다 훨씬 겸손한 사람들이 더 많다. 오히려 드라마에서처럼 잘난 척하는 김부장을 찾는 일이 더 어렵다. 벼는 어지간하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은 괜히 있는 말은 아니다.
요즘 정년 연장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현행 만 60세인 정년을 65세까지 늘려야 한다는 주장과, 그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국회 안팎에서 엇갈린다. 연내 법안 통과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이 논의 자체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오래 일터에서 버텨야 하는 구조’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정년 연장은 더 오래 일하자는 이야기라기보다, 그만둘 수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만약 정말 정년이 65세까지 연장된다면 나는 그 나이에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그때쯤이면 제이도 이미 직장을 구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나이일 것이다. 어쩌면 나는 바통을 진즉 넘겨야 할 사람이고, 제이는 그 바통을 받아야 할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제 성장률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일자리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고 빼앗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정년 연장이 모두에게 안전한 해법이 되기 어려운 이유다.
현실 속 다수의 김부장들은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목소리를 낮추고, 존재를 과시하지 않는다. 잘난 척하기보다는 버티는 법을 고민한다. 드라마 속처럼 통렬하게 무너지지도, 극적으로 부활하지도 않는다.
내년이면 직장 생활 23년 차다. 김부장 이야기를 보며 느낀 이질감은 단지 허구성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나는 그 이야기 속 김부장이 아니라, 아직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은 또 다른 김부장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더불어 나는 어떤 사람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한다. 변화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 대신 겁이 나더라도 한 발을 내딛는 사람이 되고 싶다. 꼰대가 아니라, 배우고 싶은 선배가 되고 싶다. 내가 정말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과정 어딘가에 있다고 믿으며 오늘도 출근 준비를 한다.
가끔 다시 그 문장이 떠오른다.
“여기서 더 이상 일하시면 곤란합니다.”
아직 직접 들은 적이 없다. 하지만 그래서 더 두렵다. 언젠가 갑자기 들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이제는 점점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적어도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드라마 속 김부장을 비웃는 대신 현실의 신매니저로서 내 몫의 고민을 정직하게 감당해 보고 싶다. 물론 노력한다고 해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다만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 속 김부장을 비웃으며 오늘을 넘기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을 뿐이다.
언젠가 그 문장을 듣게 되더라도,
최소한 “그래, 그동안 하얗게 불태웠다”는 말 정도는
나 자신에게 말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