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시선

하나로는 부족해서...

by 신지훈


요즘 나는 두 쌍의 눈으로 산다.

정확히 말하면, 두 쌍의 안경으로 산다고 해야겠다.


그래, 맞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 바로 노안 덕분이다. 스마트폰을 얼굴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고 보거나, 쓰고 있던 안경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보고 있으면 그는 십중팔구 노안이다. 나이와 함께 찾아오는 단순한 퇴행 현상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막상 내가 그런 장면의 주인공이 되고 나니 당황스러운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 노안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눈은 한 번 나빠지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기관이라는 말이 가끔은 누군가의 고약한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두 쌍의 눈으로 돌아오자면, 하나는 근거리용이다. 돋보기는 결코 아니다. (이건 매우 중요하다) 아직은 “돋보기 쓰셔야죠”라는 말을 듣기엔 조금 억울한 나이니까.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회의 자료, 노트북, 책을 볼 때 주로 쓰는 안경이다. 사실 이 안경을 착용했을 때와 안경을 벗고 볼 때의 시야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아주 미세한 불편함이 계속 신경 쓰여서 쓰고 있다. 말하자면 근거리 극복용 안경이다. 하지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이다. 조금만 거리가 멀어져도 시야가 흐릿해진다. 사람 얼굴도 잘 알아보지 못한다. 저 앞에서 나를 보며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이 누군지 몰라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있다가 당황하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 요즘은 자꾸 바닥을 보며 걷게 된다.


다른 하나는 원거리용 안경이다. 2~3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를 보려면 이 안경이 필요하다. 당연히 운전할 때는 필수다. 신호등은 훨씬 더 멀리 있기 때문에 이 안경이 없으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사실 이 안경이 원래 주력 안경이었다. 하지만 근거리 극복용 안경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세컨드로 밀려났다. 그래도 야간에 번지는 신호등을 정리해 주고, 도로 표지판을 제대로 읽게 해 준다. 이 안경을 써야 비로소 먼 세상이 또렷해진다. 문제는 이 안경을 쓰고 사무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는 순간이다. 세상이 갑자기 흐릿해지고 눈은 급격히 피곤해진다.


그래서 나는 매 순간 안경을 바꿔 가며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마치 장면마다 다른 배역을 맡는 소극장의 배우처럼, 상황에 맞춰 시선을 바꿔치기해 줘야 한다. 안경을 바꿔 쓸 때마다 ‘나이 드는 건 참 귀찮아지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도 이 정도라 다행 아닌가’ 싶어지기도 한다.


종종 실수도 한다. 한참 운전을 하다 눈이 침침해 운전이 힘들다고 느꼈는데, 거울을 보니 사무실에서 쓰던 근거리용 안경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겪는다. 가장 난감한 순간은 큰 회의장에서 열리는 강의나 워크숍에 참석했을 때다. 무대 위 화면이나 강사의 얼굴을 보려면 원거리용 안경을 써야 하고, 노트북이나 내 자료를 보려면 업무용 안경을 써야 한다. 이 둘의 단점을 적당히 커버할 수 있는 자리에 앉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멀리 앉게 되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안경을 올렸다 내렸다, 벗었다 썼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주변 사람들은 분명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 참, 산만하다고. 나는 딴짓을 한 게 아니라 시야를 튜닝하고 있었을 뿐인데….


동네 안경집 사장님은 늘 같은 말을 한다.

“이제 다초점도 고려해 보셔야죠.”


하지만 싫다. 그 말은 어쩐지 ‘되돌릴 생각은 이제 접으셔도 됩니다’라는 통보처럼 들린다. 적응 기간이 필요하고, 계단이 무섭고, 고개 각도를 계산하며 살아야 한다니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다. 다초점 안경을 쓰고도 테를 내리며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는 모습은 되도록 보여 주고 싶지 않다. 차라리 보이지 않으면서 보이는 척하고 싶을 정도다. 나는 아직, 고개를 숙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조금 불편하더라도 두 쌍의 안경을 들고 다닌다.


최근에 아내가 라식 수술을 같이 받아 보지 않겠냐고 했다. 수술 시간도 10분이 채 안 걸리고, 아프지도 않다며. 잠시 고민해 봤지만 검색창에서 본 ‘40대 이후에는 권장하지 않음’이라는 문장이 생각을 단번에 정리해 줬다.


그래서 오늘도 조금 불편하더라도 두 쌍의 안경을 들고 다닌다. 늘 번거롭고 지금 이 순간 어떤 안경이 맞는지 잠깐씩 헷갈린다. 회의실에 앉아 있다가 운전용 안경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잠시 생각하게 된다.


예전에는 하나의 눈으로 살았다. 하나의 시야로 일하고, 보고, 판단했다. 지금은 두 개의 시야를 오가며 산다. 일할 때의 눈, 이동할 때의 눈, 집중할 때의 눈, 피곤할 때의 눈. 눈 상태에 따라 안경도 함께 바꿔야 하는 나이가 됐다.


어쩌면 안경 얘기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중년이 되면 다들 이렇게 사는 건지도 모른다. 한 가지 기준으로 살기엔 세상이 복잡해졌고, 한 가지 시선만으로 세상을 판단하기엔 조금 부담스러워진 나이니까. 고집도 열정도 살짝 식어 버린 기분이 든다.


문제는, 나는 아직 하나의 시선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안경 하나, 눈 하나, 생각 하나로.


오늘도 안경 케이스를 열며 묻는다.

“이거, 정말, 원상복귀는 안 되는 건가요?”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26화여기서 일하시면 곤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