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으로의 초대

부제는 재검토 중입니다

by 신지훈

연말연시가 되면 직장에서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


해마다 등장하는 구호라 이제는 아무리 들어도 신선하지 않다. 이번 달에도 벌써 세 번은 들었다. ‘올해도 또 그 레퍼토리야? 그런 말쯤은 나도 하겠다’ 싶은, 진부함과 공허함이 뒤섞인 문장. 때론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슬쩍 던지는 기선제압처럼 보이고, 때론 연초 분위기를 잡기 위해 꺼내는 의례적 구호처럼 들린다. 어쨌거나 참 편리한 말이다. 왠지 ‘리더의 덕목 1-3번 항목’쯤에 있을 것 같은 문장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편리한 말이 던져질 때마다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다. 원점으로 돌아가 보라는 말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실제로 회사에서 하는 대부분의 일은 ‘보이지 않는 복잡한 역사’를 갖고 있다. 누군가의 손을 거치며 조금씩 변형되고, 여러 팀의 이해관계와 타협을 지나 온 결과물이다. 어떤 배경에서 어떤 판단을 했는지, 그 타당한 이유가 문서에 깔끔하게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 일을 기안한 당사자는 이미 회사를 떠났거나, 남아 있다 해도 “내가 그때 왜 그랬더라” 하며 기억을 더듬는 일이 많다.


그래서 원점을 찾겠다고 무턱대고 파고들면, 다듬어진 규칙이 무너지고, 당장의 몇 가지 문제를 고치려다 멀쩡한 뿌리까지 흔들 수 있다. 특히 고객과 연결된 일이라면 더 조심스럽다. 작은 실수도 회복이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이다. 원점은 말하기는 쉽지만,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자리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말들을 쉽게 던진다.


“이건 처음부터 잘못됐네.”
“애초 방향이 틀렸어.”


하지만 ‘원점 재검토’라는 말은 정작 그 말을 하는 사람도 정확히 어떤 원점을 말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나도 모르겠다”는 말을 돌려 말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 말을 꺼내면, 말하는 당사자는 묘하게 ‘큰 방향성을 제시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내용 없는 방향 제시가 그럴듯한 조언으로 포장되는 순간이다.


이런 말의 가벼움은 그 일을 겪지 않은 사람의 가벼움을 증명한다. 그 과정에 들어간 시간과 에너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만이 쉽게 던질 수 있는 문장. 그래서 원점 재검토라는 말에는 묘하게 부정의 냄새가 배어 있다. 단 한 문장으로 지금까지의 시간을 송두리째 지워버리는 힘. 밤을 새우고, 다시 고치고, 또다시 합의하며 쌓아 온 시간이 “원점부터 다시”라는 말 한 줄로 초기화되는 기분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누군가 당신에게 “원점부터 잘못됐어요”라고 말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떠올려보라. 공들여 만든 탑을 누군가 손가락으로 톡 건드려 무너뜨리는 듯한 허탈함. 누군가는 문제를 단순화하기 위해 던진 말이었겠지만, 듣는 사람에겐 지난 시간이 고스란히 부정당하는 경험이 된다. 말은 던지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오래 기억한다.


직장 생활이 어느덧 23년 차에 접어든다. 이제는 ‘재검토하라’는 말이 단순한 실무 용어가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와 철학이 드러나는 언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같은 뜻이라도 말하는 방식에 따라 전달되는 감정의 온도가 완전히 다르다.


오래전 회사를 먼저 떠나신, 내가 가장 존경했던 임원은 같은 뜻을 전하면서도 전혀 다른 울림을 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야심 차게 준비한 신규 서비스를 한참 들여보시더니 조용히 말씀하셨다.


“고객에게 더 가치 있게 느껴지도록 하는 고민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상하게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부족함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인정하며 한 단계 더 들어가 보자는 제안처럼 들렸다. 그때는 잘 몰랐다. 재검토라는 말에도 품격이 있다는 것을. 원점이 부정의 언어가 될 수도, 성장의 언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문제는 ‘원점’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원점을 방패 삼아 모호함을 숨기고, 어떤 사람은 책임을 남에게 떠넘긴다. 반면 어떤 사람은 원점을 함께 보자는 의미로 꺼내 든다. 원점이 누구에게는 되돌림의 명령이지만, 누구에게는 다시 확인하자는 제안이 되는 이유다. 말의 격이 곧 그 사람의 격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요즘 이 원점이라는 말이 회사 밖에서도 생각나는 건, 아마 내가 인생의 반환점 근처에 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의 원점은 회의록과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인생의 원점은 어디를 뒤져도 잘 나오지 않는다. 어떤 선택이 출발점이었는지, 어떤 순간이 방향을 바꿔 놓았는지 기억은 점점 흐릿해진다. 돌아가고 싶어도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느낌. 그래서 인생에서 원점을 떠올릴 때는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디 서 있는지 다시 확인하는 것’에 더 가깝다.


오십이라는 나이는 원점으로 돌아가기에 늦었지만, 원점을 다시 확인하기엔 아주 정확한 때다. 다시 시작할 수는 없지만, 다시 정할 수는 있다. 지나온 선택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지 조율할 수 있는 나이. 그래서 요즘 나는 ‘원점’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예전처럼 짜증이 먼저 올라오지 않는다. 과거를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현재를 기준으로 다시 나를 점검해 보라는 제안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인생의 원점은 선택의 문제지만, 종점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다. 그래서 오십 이후의 시간은 원점과 종점을 동시에 응시해야 하는 묘한 나이인지도 모른다. 어디서 시작했는지는 잊어도 살아지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으니까.


그래서 직장 상사가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 봐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 이렇게 되묻고 있을 것이다. 업무의 원점이 아니라, 나의 원점.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었더라. 그리고 어디로 가고 싶었더라.”


원점은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한 번쯤 다시 바라보아야 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굳이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다음 걸음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월요일 회의에서 또 누군가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 보죠?”라고 말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제발 그 말부터 좀 재검토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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