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한 베트남 출신 K가 있었다. 한국으로 유학와서 많은 어려움도 겪었지만 대학 졸업을 반 년 정도 남긴 상태에 교수님의 추천으로 입사하게 된 것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인근 대학이나 특성화 고등학교와 협약을 맺고 인턴/계약직 입사 후 정규 채용하는 협약 프로그램이 있다) K는 입사 초기에는 적응의 문제였는지 나름 고생하다가 적응한 후에는 참 열심히 일했다. 야근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우연히 K가 우리집 근처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어차피 같은 방향이니 내가 차로 태워줄테니 같이 가자는 제의를 했다. 몇 번의 경험이 쌓이며 K도 나에 대한 신뢰가 쌓였는지 퇴근할 때가 되면 은근슬쩍 내 자리를 쳐다봤고 눈이 마주치면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K와 함께 퇴근했다. 30분 정도 되는 짧은 거리를 가는 도중 K와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왜 한국으로 유학을 왔고 이 회사에서 어떤 커리어를 쌓고 싶고 나중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에 대해. 야근 많이 하는 것 아니냐는 나의 질문에 K는 "다 공부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라며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참 열심히 사는 친구구나...'
K는 나중에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줄 것을 전제로 일하고 있었다. 사실상 최저시급을 받으며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고, 모 대기업의 키오스크 프로젝트 (사실 이것도 하청의 하청인 프로젝트) 를 수행할 때는 클라이언트를 찾아가 며칠이고 해결이 될 때까지 일을 붙잡고도 있었다. 그렇게 열심이었지만 K의 정규직 전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헌신하면 헌신짝된다고 했던가... 씁쓸했다.
우연히 다른 사람으로부터 K는 베트남 회사의 한국법인에 취업해서 (그것도 정규직으로. 급여조건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여서) 개발자로써의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스러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갓 스무살이 되어 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입사했던 그 친구들도 비슷한 일을 겪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몸값 비싼 경력자 데려오나 경력 없는 어린 친구들 데려오나 크게 차이는 없을 것 같아요." 라고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큰 기술력 없는 자체 서비스, 하청의 하청이나 수행하는 입장에서 어리고 몸값 싼 친구들 쓰는 게 낫다고 판단했겠지.
C차장은 모 통신사의 솔루션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다. (사실 이것도 하청의 하청이다) 사실 C차장도 내적인 고민을 많이 안고 있었다. 관리이사의 되도 않는 요구 (가령 '올해 이 프로젝트로 추가 매출 50억 만들어 오세요' 라던가)사항을 듣는다거나 그 외의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들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타이밍도 기가 막히지. 어느 날 이러한 내용의 이메일을 받게 되었다.
'상부의 지시로 통신사 솔루션 구축 프로젝트를 전면 중단 및 재검토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향후 방향이 설정되면 다시 공유하겠습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의 중단은 다른 배경이 있긴 했다. (기회가 되면 이 내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겠다) 갑작스런 통보에 C차장은 물론 경영진도 당황했다. 하지만 이 사건이 빌미가 되었을까. 며칠 후, 관리이사는 C차장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차장님 일하는 방식이 저랑 너무 맞지 않습니다. 차장님이 나가시던가 제가 나가던가...(이하 중략)"
C차장은 처음엔 황당했다가 곧바로 화가 났다.
"저한테 지금 권고사직을 통보하시는 건가요?"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차장님께 앞으로 더 열심히 잘해보자고 말씀드리는 거에요."
뭔 개같은 소린지... (사실 이 관리이사는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말'을 내게도 했다) 결국 C차장은 일을 내려놓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 없는 사람과 일하고 싶진 않다고 생각했을테지.
무슨 일이든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뤄지는 것이다. 그 사이에 필수적인 것이 '배려'이고 '신뢰'다. 이 경영진들은 '배려'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대학 동아리에서 출발하면서 다른 곳에서의 사회생활 없이 이 회사를 시작해서 그런지, 자신의 '위'에 누군가가 있는 상황을 겪어보질 못해서인지, '배려'라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