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10년 지기 동네 친구이다.오며 가며 눈인사를 하다가 같은 유치원을 보내면서 급속도로 친해졌다. 우리는 아이를등원시키고카페에 앉아 소소한 삶을 나누었다. 매일 보던 우리는 아이가 다른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아쉬운 이별을 했다. 초등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를 맞이했고바쁘게 적응하는봄의시간과 지루한 겨울이몇 해지나갔다.
전화가 울리기전까지K는카톡에서방긋 웃는 얼굴로 기억되고 있었다.
"따르릉~따르릉~"
"어머, K야~ 오랜만이다.반갑다. 호호호.어떻게 지내니?"
휴대폰 화면에 K의 이름을 보며, 통통 튀는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여보세요, K야, K야~~"
K의 옅은 떨림이 울려왔다.
"응, 언니는 잘 지내지?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언니, 내일 시간 있어?"
힘들게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고 있었다. K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응, 응, 괜찮아, 내일 10시쯤 볼까?"
"응. 언니 내일 카페에서 만나."
짫은 대화로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전화기 넘어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는 K가묻어났기 때문이다.전화를 끊고 K의 메신저 프로필을 찾아보았다.텅 비어 있었다. 매주 캠핑을 다니며 바쁘게 올리던 행복한 가족사진은 어디로 간 것일까?
K는 수학과를 나와 결혼 전까지 수학강사를 했었다고한다. 첫 아이 두 살 때 둘째를 임신하고 이 동네로 이사 왔단다. 에너지 넘치는 아들이 둘이라 밥 먹을 새도 없다는 그녀는 마른 몸이었다. 주말이면 캠핑을 좋아하는 남편의 취미로 전국 캠핑장을 다녔고,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은 K는늘 밝은 에너지로반짝거렸다.하지만,명절이 다가오는 때면그녀의 표정은 어두워졌다.4시간이 걸리는 친정은 둘째 낳고 못 가봤고, 30분 거리 시댁에서명절을지내며 냉장고 청소와 베란다청소를 연휴 내내 하고 온다고 했다.
"어머, 냉장고 청소를 한다고? 시부모님 부자시라며! 일하는 분 있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언니! 올해 72세 되셨어! 내가 손이 야무지다고 냉장고 청소는 나보고 하라셔!"
"아, 정말?"
"웅, 사람을 일주일에 3번 부르는데, 냉장고랑 베란다 청소는 꼭 나만 시킨다니까!"
"............."
"그래도 생활비에 아이들 학원비를주신다니 고맙잖니! 일 년에 명절이 두 번이기에 다행이다!"
"언니, 내가 말을 다 안 해서 그렇지! 명절연휴 내내 식모처럼 나만 일하고, 한 달에 두 번씩은 시댁 가서 또 일해! 학원비 공짜로 주시는 게 아니라고!"
"아, 그런 거니? 몰랐었어. 부자 시부모님 계셔서 좋은 줄만 알았지"
"그리고, 아이들 학원비 주시면서 매달 성적을 확인하셔! 성적이 안 오르면 어미가 문제라고 남편이랑 시부모님이 나를 탓한다니까!"
"어머? 그래? 그게 왜 니 탓이야!"
"내가 애들을 잘못 키워서 그런 거래!"
"................"
"K야~ "
카페에 도착했을 때 힘없이 앉아 있는 K가 보였다.아무도 물을 주지 않아 말라 비틀어 버린모습으로 바삭바삭 부서질 듯이 여위어 있었다.
" 내가 못 간다고 했어!애들 학군도 시댁 동네가 좋다고 남편이 계속 얘기하는데, 난 이혼하면 했지 못 간다고 했어!"
K는 막힌 숨을 몰아 쉬며 아이스커피를 단숨에 마셨다.
"언니, 우리 집에는 결혼하고 3번 다녀왔어! 신랑은 멀어서 못 간다고 우리 부모님 보고 서울로 이사 오래! 우리 집섬에 깡촌이라며 얼마나 무시하는지 몰라."
"어머, 그랬구나, K야, 속상했겠다!"
"지난주에 이혼상담을 받았는데, 내가 결혼하고 살림만 했잖아. 그리고 지금 집이랑 차가 신랑 명의라서 재산분할이 얼마 안 된데."
"어머나, 그렇구나."
"애 둘이나 낳고 키운 건, 재산분할에 큰 영향이 없더라고! 이번에 듣고 현타 와서 깜짝 놀랐어!"
"그래서 언니, 나 이혼을 5년 후에 하려고 계획을 세웠어!"
"뭐? 5년 후에 이혼을 하겠다고?"
"응, 지금. 이혼하면 분명히 아이들은 남편이 데려간다고 할 거야. 내가 지금 경단녀라 당장 취직하기도 힘들겠더라고. 10년 사이에 아무런 능력이없는 애엄마가 돼버렸지 모야! 그래서 앞으로 5년 동안 능력을 키우려고!"
"어머,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렇지? 언니는 응원해 줄 줄 알았어!"
"K야~언니는 늘 너를 응원해!"
"언니, 고마워!"
"예전에 언니가 말했던 구청에서 하는 컴퓨터교육 있잖아, 거기 등록했어! 그리고, 면허 도로주행도 하려고 해! 일자리를 알아보니 컴퓨터 활용능력이랑 운전은 필수 더라고!"
"어머! 잘했다. 이혼 생각은 누구나 하지! 꼭 이혼이 아니더라도 네가 경쟁력을 갖는 건 아주 좋은 생각이야!"
"웅, 언니, 고마워! 언니가 말해준 것이 도움이 돼서 고맙다고 얘기하려고 만나자고 한 거야. 5년 후에 뒤통수를 제대로 쳐줄 거야!"
"그래, 5년 동안 너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에 집중해! 이혼은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 부부들 중에 이혼생각 안 하는 부부가 어디 있겠니? 뚜껑 열고 보면 속이 다 문드러진 부부들많아."
"언니, 고마워! 오늘 내 이야기 들어줘서. 정말 언니에게얘기하니 속이 다 뻥 뚫린 것 같아."
"그래, 답답하면 언제든지 말하렴!"
"애들 학교 끝날시간 되었다. 가자, 언니."
부부관계에서 돈의 갑질은 더 치사하고 구차하게 느껴진다. 돈의 무게에 실린 갑질은 졸렬하다.
그 후로 K는 엑셀과 컴퓨터 활용 능력 자격증 2개를 취득했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자신감이 생긴 K는 동네에서 과외를 시작했다. 그리고 여전히 깡마른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2년 후에 그녀의 결정이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삶의 의지가 불타고 있는 K를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