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룰의 『죽은 남자의 휴대폰』, 뛰어들라, 낯선 세계로.
일적인 이유로 여느 때보다 인스타그램에 열심이다. 댓글을 쓰는 일조차 별스럽다 느끼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꽤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소통”한다. 인스타그램은 수많은 낯선 사람들로 넘쳐흐른다. 일면식도 없는, 그저 작은 화면 속에서 만난 사이지만 서로의 생활을 들여다보며 일종의 친밀감을 형성한다.
그럼에도 인스타그램이라는 매체에 다소 냉소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내가 종종 놀라곤 하는 점은 이곳에서의 만남이 실제로 이어지는 일이 왕왕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리면서도 흠칫 놀라곤 했다.
‘세상에, 낯선 사람을 그렇게나 신뢰한다고?’
전혀 모르는 낯선 이의 세계에 제 발로 뛰어들다니. 의심 많은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이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용기일까? 서로에 대한 이 무조건적인 환대는 도대체 무엇일까?
2007년 초연된 사라 룰의 극작품, 『죽은 남자의 휴대폰』은 바로 이 기꺼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무엇이 진을 기꺼이 죽은 남자의 휴대폰에 응답하도록 만들었을까?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죽은 남자의 기억을 간직하도록 만들었을까?
진과 남자의 첫 만남으로 가보자.
여유롭게 아침을 먹던 진의 귀에 거슬리는 벨소리가 들린다. 벨소리는 그치지 않고, 결국 그녀는 대신해서 전화를 받는다. 그의 어머니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은 후, 진은 곧 그가 이미 죽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뒷수습을 마친 진은 그의 삶을 기억하기로 결정한다. 죽은 남자는 말이 없지만, 그의 손을 잡고 그녀는 말한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도록 도와주세요. 그의 사랑하는 이들의 정신과 마음속에서 고든의 기억이 살 수 있도록 돕기를 도와주세요(15).
그렇게 진은 죽은 남자 고든을 만난다.
고든의 장례식이 끝나고 난 후에도 진은 휴대폰을 처분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그의 세계로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간다. 진은 고든의 정부를, 그의 아내를, 그의 동생을, 그의 어머니를 마주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작품에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진뿐만이 아니다. 고든의 가족 또한 그의 휴대폰을 가진 이 낯선 여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그녀를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기꺼이 그녀와 새로운 관계를 쌓아간다. 마법 같은 환대의 시작이다.
고든의 폰이 계속 울리자, 나는 그의 폰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마치 그것이 그를 계속 살아있게 해주는 유일한 물건인 것처럼요,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 전화하는 한 그가 살아있는 것처럼요(36).
휴대폰이라는 마법의 물건은 진이 낯선 세계로 뛰어들기 위한 발판을 마련해준다. 휴대폰을 손에 든 진이 낯선 이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로 결정한 순간, 그들 또한 그녀를 받아들인다. 그들은 고든의 기억을 공유하며, 타인에게 다가선다. 진이 조우하는 낯선이들은 그녀와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며 진정으로 고든을 용서한다. 진도, 그들도 서로를 통해 치유받고 나아갈 힘을 얻는다.
새로운 관계, 새로운 상황에 직면한 우리의 진은 다정한 여인의 모습이었다가, 용감한 전사였다가, 불안한 인간이었다가, 사랑을 맹세하는 연인의 모습으로 끝없이 변모한다. 생경한 세계로의 용감한 유랑은 그녀의 삶에서 한계를 지운다. 서로에 대한 따뜻한 환대는 서로의 제한 없는 가능성으로 보답받는다.
낯선 세계로 발을 내디딘 진은 타인들의 상처를 어루만짐으로써 유대를 형성하고, 서로를 치유한다. 이 새로운 만남으로 진은 그녀의 고정된 정체성에서 탈피한다.
내 우려와 달리, 인스타그램으로 관계를 시작했던 사람들은 서로와의 만남을 기뻐하며 주고받은 영향력에 감사해했다. 그것이 일회성 만남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인연 혹은 새로운 기회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서로에게 받은 긍정적인 기운과 따뜻함을 그들은 소통의 창구를 통해 나눠주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것, 타인과의 접촉을 지향하고, 함께하는 것, 두 팔 벌려 그들을 환대하는 것, 그리하여 나라는 작은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것.
이것이 사라 룰이 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마법 인지도 모른다. 또한 이 마법은 너무 자주 매정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마음 한구석에 품어야 하는 따뜻함 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다가가고, 만나고, 환대하라. 그럼으로 성장하고, 서로를 구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