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고찰
"박사 등록금은 네가 내는 게 좋겠다"
28살 여름, 석사 학위를 끝마치고 박사과정에 덜컥 합격해버린 나에게 아빠가 말했다. 박사는 온전히 네 힘으로 하라는 것이 아빠의 전언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등록금 정도는 좀 도와줄 수도 있는 게 아니냐, 딸이 공부한다는데 그것도 못해주냐 볼멘소리를 했겠지만 왠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빠를 향한 모든 말들이 목울대에 울컥 걸려서 차마 나오지 않았다. 그랬다,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될 다음 해 3월에, 나는 29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29살, 많지도 적지도 않고 기분은 이상해
시간은 흘러 흘러 나는 진짜 29살이 돼버리고 말았다. 처음 새해가 밝았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점점 더 실감이 난다.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남은 숫자를 세 보는 것은 꽤나 아찔하다. 20대를 연단위가 아닌 개월 단위로 세야 하다니, 기분이 무척 이상해지곤 한다. 누군가에겐 어리고, 누군가에겐 많은, 많지도 적지도 않은 29살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생각했다.
"도대체 29살이 된다는 것은 뭘까?"
나에게 29살이란 박사 등록금 정도는 스스로 마련하고, 그것이 당연해지는 나이이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서 부모님을 대해야 하는 나이이며, 가끔은 그들보다 내가 더 많이 알 때도 있는 나이이다. 허겁지겁 돈을 모아야 하는 나이이며, 오르는 집값에 전의를 상실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선택을 변명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나이이기도 했다. 즉,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뭐든지 독립해야 하는 나이, 어린 치기로 그랬다는 탓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바야흐로 29살, 이제 내가 살아내야 하는 나이였다.
시간은 생각보다 쏜살같이 흐르고 하루하루가 점점 더 소중하고 애틋해진다. 29살의 1월을 보낸 소감을 얘기해보자면, 어느 때보다 감정적이고, 치열하게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도대체 어떻게 29살을 살아가야 할까?
사계절의 하나씩이 나에게 주어진 와중에(이렇게 쓰고 보니 꽤나 로맨틱하다!), 풋내기 29살은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여전히 30대는 꽤나 무섭고 미지의 것이다. 무튼 계획한 것들과 이루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해내며 살아보리라 꾸역꾸역 다짐한다. 지지고 볶더라도 그러면서 배우는 거니까.
먼저 30대가 된 지인들은 30대 별거 없다지만, 이제 막 29살에 입성한 나는 망설이고 고민하고 도전하고 끙끙 앓는 시간을 조금 더 즐겨도 될 거 같다. 누구나 29살을 겪었고, 또 누구나 겪을 것이지 않은가? 나의 29살은 새로운 도전과 신나는 모험으로 가득하길. 그런 나를 내가 따뜻하게 맞아주길.
다가오는 새로운 10년을 위한 29살의 나비효과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29살들에게 또한 따뜻한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