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 그날
뚜뚜뚜뚜....뚜..뚜...뚜..우......삐-
심폐소생술로 겨우 겨우 뛰던 심장이 손을 뗀 순간 심박수가 곤두박질치더니 이내 삐 소리와 함께 멎었다.
원인도 모른 채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그렇게 내 반려견 봉봉이는 강아지별로 떠났다.
봉봉이는 내 생애 처음으로 키운 말티즈 강아지다. 강아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데려온 아이라 키우는데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었고, 여러 시행착오도 겪었다. 힘들었고, 후회도 했다. 2개월 아기 강아지는 성견이 될 때까지 많은 것을 가르쳐야 했고, 경제적 지출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힘든 날들을 지나 봉봉이는 우리 부부에게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버렸다. 애견동반 카페, 식당, 호텔 등을 찾아다니며 함께 여행도 많이 했고, 많은 추억을 쌓았다. 지나고 보니 함께했던 그때 우리는 웃는 날이 많았더라.
2024년 7월 홍천에서 봉봉이와 함께 여름휴가를 즐기고 집에 돌아온 뒤 악몽이 시작됐다. 어느 날 갑자기 발작을 하기 시작했는데 몇 시간에 한 번씩 반복했다. 급하게 동물병원에 전화해 상황 설명을 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울며불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애원하듯 물었고,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빨리 방문해 응급조치라도 하라더라. 집 앞 상가에 있는 동물병원을 급히 찾았고, 혈액검사를 진행했다. 별다른 소견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발작은 멈췄고, 집에서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새벽 3시경, 또다시 시작된 발작. 그런데 심상치 않더라. 결국 분당 모 동물병원으로 이동해 아이를 입원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딱 한 번 10분밖에 허용되지 않는 면회였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방문해 봉봉이를 만났다.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진료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수의사와 상담을 진행하는 상황에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발작 방지를 위한 주사를 맞은 지 이틀째, 담당 수의사는 봉봉이의 상태가 많이 호전된 것 같다며 퇴원해도 좋다고 했다. 기쁜 마음도 잠시, 퇴원 당일 저녁부터 아이의 상태가 심각해졌다. 눈에 초점도 없고, 남편과 나도 못 알아본다. 그리고 끊임없이 걸었다. 병원에 전화해 상태를 알렸지만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라는 말만..
결국 아침 6시에 아이를 안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차에서 항상 얌전하던 아이가 소리를 지르고 안으면 발버둥을 쳤다. 인지장애까지 온 것이다. 빠른 조치를 취하지 못한 탓이다. 결국 다시 입원..
또다시 진행된 혈액검사와 X-ray, MRI 등 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진행했다. 원인을 찾을 수 없다. 어떤 검사 수치도 명확히 발작을 특정할 만한 것이 없었다. 결국 '특발성 간질'로 추정.
하루가 다르게 아이의 상태는 나빠졌다. 수혈까지 할 만큼 최악이었으니..
그래도, 그래도..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 기다리던 어느 날 듣지 말아야 할 소식을 듣게 됐다.
"보호자님, 봉봉이가 심정지가 와서 빨리 병원에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아침 7시경, 세상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울며 남편을 깨웠다.
축 늘어져 옆으로 누운 봉봉이 가슴 위로 수의사가 계속해서 심폐소생술을 진행했다. 집에서 동물병원 도착까지 걸리는 40분의 시간 동안 수의사는 멈추지 않고 가슴 압박을 했단다.
"살릴 수 있을까요..?"
"... 어려울 것 같습니다."
.
.
"... 멈춰 주셔도 돼요.."
떨리는 두 손으로 봉봉이를 어루만지며 연신 '엄마가 미안해'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 순간 공간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몇 십 마리의 아픈 강아지들이 입원해 있어 항상 짖는 소리와 낑낑대는 소리로 가득했던 공간이 신기하게 고요했다. 슬픈 냄새가 났나 보다..
아이를 데려가기 전 다시 눈물바다가 되었다. 눈앞에 작은 종이 상자.. 동물병원 진료를 보고 난 뒤 항상 봉봉이는 수의사에게 안겨 나왔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작은 종이 상자 안에 봉봉이가 곤히 잠을 자듯 옆으로 누워 있었다. 다시 깨어날 것처럼..
그날 밤 9시, 봉봉이는 한 줌의 재가 되었다.
봉봉이와 영원히 이별을 하게 된 그날, 난 똑똑히 기억한다. 심정지가 되었지만 눈 주위가 빨개지며 엄마와 아빠를 느꼈다는 것을. 그 누가 뭐라고 해도 난 그렇게 믿는다. 그렇게 믿고 싶다.
꽤 시간이 지났지만 가슴속 구멍은 그대로 남아있다. 가끔 한 번씩 참고 있던 슬픔이 터져 몇 분을 미친 듯이 운다. 혼잣말로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아직도 반복한다.
2019.12.12 ~ 2024.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