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입양을 생각하다
"이 아이 이쁘지 않아?"
"하아.. 너무 불쌍해.."
거의 하루 종일 휴대폰만 하던 나의 SNS 알고리즘은 온통 강아지였다. 이 세상 모든 강아지들을 다 보듯 견주들이 피드에 올린 사진과 영상을 보는 것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봉봉이와 닮은 아이가 보이면 한참을 들여다 보고 그 계정에 들어가 다른 사진들도 찾아보곤 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키우고 있는 강아지를 봤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유기견 홍보글을 많이 보게 됐다. 유기견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은 구조 단체가 있는 것은 처음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가여운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노력하더라.
한편으로는 너무 화가 났다. 책임지지도 못할 입양을 왜 해서 죄 없는 동물들만 고생시키는지.. 잠깐의 즐거움을 위해 아이들이 희생되는 것이 너무 증오스러웠다. 털 알레르기가 생겼다고, 새끼 때에는 귀여웠는데 크니까 안 예쁘고 징그럽다고,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나이가 들어서 아프다고 버렸단다. 미친..
많은 아이들이 전국 각지의 시보호소 시설에 있는데 공고 기간 내 입양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안락사시킨다고 한다. 개체수를 줄여야 한다는 이유라나 뭐라나.. 이에 대해 아직까지 알고 있는 이들이 많지 않아 안타까운 현실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
"어? 봉봉?"
여느 때와 같이 알고리즘을 타고 많은 유기견 홍보글들을 보던 중 우리 봉봉이와 이름이 똑같은 아이를 보게 됐다. 말티즈와 푸들이 섞인 말티푸로 말티즈였던 우리 봉봉이와 종도 다르고 생김새도 달랐지만 이름이 같아 유독 눈이 가던 아이였다.
이 아이 역시 새끼 때 20대 젊은 여성이 입양했다가 유기했다고. 구조 당시 아이는 관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채 덥수룩한 털이 얼굴까지 다 가리고 있었다. 그 사이 빛나는 눈이 너무 슬퍼 보였다.
"유기견 입양 어때?"
남편은 싫단다. 강아지가 너무 예뻐 함께 하는 삶이 즐겁고 좋지만 더 이상 먼저 보내는 슬픔을 겪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 그리고 이미 성견이 되어 습관이 고착된 유기견을 키우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고 했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사실 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일명 '눈팅'만 하며 아이의 입양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유기견 중에서도 예쁘게 생긴 작은 아이들이 입양이 잘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봉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예쁜 말티푸 강아지 인기가 많다고 했다. 인기가 많은 만큼 구조 단체에서는 조금 더 신중하게 입양자를 선택하는 듯 보였다.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당장 입양하지 않더라도 한 번 보러 다녀오는 건 어때?"
"그럴까?"
남편의 입에서 의외의 답이 나왔다. 싫다고 할 줄 알았다. 기쁜 마음으로 매주 홍보가 진행되는 입양 마당 위치를 찾아 방문했다. 내 강아지 봉봉이가 떠난 뒤 처음으로 가까이서 강아지들을 만져볼 수 있는 기회였기에 설레기도 했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했는데..
울고 말았다.
'봉봉'이라는 이름이 흔한 이름이 아니라 살면서 더 이상 부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곳에 방문해 부르니 덜컥 눈물이 났다. 한참 동안 말티푸 봉봉이를 안고 쓰다듬었다.
너무 예뻤다. 아이 몸 크기로 보아 적정 몸무게가 5kg 정도는 될 것 같은데 처음 구조 당시 2kg 중반이었다고 한다. 제대로 못 먹고, 못 잤을 테니.. 우리가 아이를 봤을 때에는 임시 보호자와 함께 지내며 잘 먹고, 잘 지낸 덕분에 3kg 중반까지 살이 쪘다고 했다. 다행이다.
한 시간 정도 장소에 머물며 여러 아이들을 만나봤다. 마지막으로 말티푸 봉봉이와 인사를 나누고 뒤돌아 걸어 나오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내가 왜 우는지조차 설명이 불가했다. 다 이해한다는 듯이 남편이 내 등을 토닥였다.
집에 돌아온 뒤 또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온통 강아지뿐이 없는 알고리즘을 타고 SNS 삼매경에 빠졌다.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강아지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듯하다.
.. 좋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