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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Sep 11. 2015

마파두부의 밤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밤에는 ‘음식’이야말로 기적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일러스트 ⓒ황인정



점심엔 뭘 먹을까, 저녁엔 뭘 해 먹을까, 일하는 틈틈히 고민한다. 6시에 먹으려면 5시에는 밥을 앉혀야겠지,,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끼니를 챙겨먹어야하는 건 영 성가시다. 다들 뭘 먹고 살지- 일단 장을 보러가자. 남편과 마트를 한 바퀴를 돌아도 카트에 담긴 거라곤 언제나처럼 계란과 우유 정도다. 이렇게 창의력이 없어서 글은 어떻게 쓴담-

“마파두부 해먹자-“

생각도 못한 메뉴가 남편의 입에서 나온다.

마파두부를?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고?레시피는 아는거야?

“음- , 잘 몰라. 하지만 우선… 두반장이 있어야지.”

두반장이라니, 고추장도 아니고 된장도 아니고, 그게 뭔데!?

심지어 이금기 두반장이 유명하지, 라고 중얼거리면서 두반장을 서슴없이카트에 담는 그를 보면서 나는 조금 당황스럽다.


6년 동안 그와 살았다. 그는 언제 두반장이라는 소스의 존재를 알았을까, 나 모르게 아는것이 가능할까? 함께 텔레비젼을 보고, 같은 영화를 보고, 사무실로 쓰는 오피스텔에서 함께 살기 때문에 누구보다 오랜 시간 붙어있는데 우린 정말 같은 걸 보았을까,

저민 고기를 고르는 남편을 두고 나는 뚜벅뚜벅 과일 코너로 갔다. 겨우내가 모르는 소스 하나를 알고 있는 것뿐 인데 분하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속속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것이 당황스럽다. 태풍이지나간 후라 복숭아는 한 상자에 2만4천원, 상추도 물이 먹어 끝이 절었는데도 2천5백 원까지 올랐다. 무엇을 집어야 할지 모르겠다. 답답하다. 나는 뻔한 사람인데 당신은 그렇지 않구나,, 믿었던 과일들조차 내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풀이 죽어 돌아온나는 남편이 마파두부를 만드는 내내 텔레비전의 채널만 이리저리 돌린다.


곧 온 집안에 매운 내가 난다. 매콤하고 달콤하다. 주볏거리며 부엌으로 가니 냄비 한 가득 만들어진 마파두부. 두반장의고추 조각은 씹히다 입에 맴 돌아서 가끔씩은 뱉어내게 될 만큼 크기가 크다. 작은 정사각형으로 썰어넣은 두부가, 볶아진 두반장 소스 사이에서 흐트러지지 않고 방긋방긋,탱글탱글 제 모양을 지키고 있다. 저민 돼지고기를 볶아 넣은 소스는 알차고 든든해 보인다. 전분으로 걸죽해진 소스를 얼른 밥 위에 부어주고 싶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방금 한 밥과 매콤하고 보들보들한 마파 두부가 담긴 접시 두 개를 놓고 나란히 앉아서, 나는 잠시 동안 음식을 건드릴 수 없었다.


소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는 저자이자 화자인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이탈리아에서사귄 친구들과 미국식 추수감사절을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루카는오늘밤의 대화를 어떻게 진행시켜야 할지 걱정했었다. 손님의 절반은 영어를 못했고, 나머지 절반은 이탈리아어를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 밤은 모든사람이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혹은 최소한 누군가 잘 알아듣지 못할 때 옆 사람이 통역해 줄 수 있는 그런 기적의 밤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처음 만나,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그것이 가능할까? 6년을 함께 살고 있는 나도 오늘 저 작은 중국 소스 병 앞에서 다른 사람을 본 것 같았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마도 그 날 밤 그들 앞에 질 좋은 칠면조 가슴살과 사르디시안 와인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이 백 마디의 말보다 더 진실하게 가슴과 몸 안에 퍼질 때,우리는 좀 더 행복해지고 넉넉해지며, 감정에 충실해지고 눈물을 흘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 기적이다. 조금전 마트에서는 당황스러울 만큼 몰랐던 당신을 완벽히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나는 낯선 언어를 배우는것이 두렵지 않고, 그는 낯선 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만드는 것이 두렵지 않다.

이 음식을 앞에 놓고서야 각자가 기꺼이 과감해지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해한다.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밤에는 ‘음식’이야말로 기적과 같은 역할을 한다.

마파두부의 밤이 되고서야 만나게 되는 당신을 이해하는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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