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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Sep 18. 2015

불안한 마음의 자장라면

아무도 뛰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끝까지 뛰기로 한다.

일러스트 ⓒ황인정



2007년 3월. 남편을 설득해 무작정 일본으로 날아가 어학교를 다니는 하루하루.
오전반이었던 나는 12시에 돌아와 오후반인 남편의 귀가를 기다린다.
일본에 온 모든 사람의 꿈과 계획은 모두 달랐지만, 일단 처음 일본에 온 이상은 말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어학교에 등록한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출신지도 다르기 때문에 학교라고 해도 비슷비슷한 환경을 가진 또래들과 다녔던 예전의 학교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것도 흥미롭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도 좋아해서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많아도 일본어 말하기 대회도 나가고 공부한 거 써먹는다고 띄엄띄엄 일본어로 여행사에 전화도 걸어보는 둥, 나름대로 즐겁게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수업이 끝나 집에 도착한 1시부터 남편이 돌아오는 5시까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주 고역이었다. 5평도 안 되는 작은 원룸에 도착하면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설마 여기서 혼자 공부를 더 하면 되잖아,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겠죠).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점심을 먹기로 한다. 혼자 뭘 만들어먹기도 뭐해서 자장라면을 끓인다. 한 개는 적을 것 같아서 두 개를 끓이지만 역시 양이 벅차서 다 먹지 못한다.
배가 부르고 햇볕이 드니 솔솔 오는 잠이 반갑다. 졸려서가 아니라, 할 일이 없는데 잠이 오니까 그게 반가운 것이다. 그렇게 잠이 와서 자고 있으면 남편이 돌아오는데, 자장라면을 입가에 잔뜩 묻히고는, 한 쪽에는 굳은 양념과 불어서 뭉친 면이 들러붙은 냄비와 함께 자고 있는 내 모습이 정말 가관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웃으면서 놀리지만, 그 때 남편은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이제 막 결혼한, 얼마 전까지 ‘여자친구’라 불렀던 그녀가 대낮에 저러고 있다니! 아, 내가 생각해도 절망적이다.

나는 왜 그렇게 다 먹지도 못할 자장라면을 꾸역꾸역 두 개씩 끓여먹고, 그렇게 잠이 들었을까

(그것도 꽤 오랜 시간 매일 그랬다고 한다).

일본에 가기 바로 두 주 전까지 나는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 중 하나였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 연구원 인턴, 다니던 교회에서는 청년 회장에 결혼 준비까지- 한 시간 단위로 쪼개 살았던 인생의 시간표가 갑자기 텅-비어버린 것이다. 잠자코 어학만을 배우는 생활 -심지어 하루에 겨우 3시간- 을 즐기기는커녕, 나는 불안한 마음을 어찌할 줄 몰라 그렇게 자장라면을 먹고 자버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한 낮의 해는 할 일이 없는 사람에게 너무 밝다. 나는 눈을 감아 버렸다.
결국 나는 오후에 학원 아르바이트를, 심지어 남편은 학교마저 관두고 직장을 구해 다니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엔 항상 이야기한다. 어학교 다닐 때 진득이 공부만 할 걸, 뭐가 그렇게 조급했을까, 아쉽다… 그치?

지금은 글을 쓰며 살고 있다. 글 쓰는 일 또한 표면상으론 시간표가 텅 비어있다. 그저 혼자서 계속 쓰는 것이므로 과외 하나를 빼면 월요일도, 화요일도 똑같다. 누구도 나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으며, 어학교를 다닐 때처럼 숙제조차 없다.
내가 글을 쓰겠다고 어금니를 꽉 깨물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도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세상은 그대로고 쓰지 않는 한 나는 할 일이 없다.
그래서 나는 그때처럼 불안한 마음을 어찌할 줄 몰라 자장라면 대신에 설탕을 들이부은 듯 아찔하게 달콤한 망고주스를 주문하기도 하고, 걱정의 뇌가 마비되기를 바라는 듯 어지러울 정도로 단 것들을 입에 집어넣는다.

하지만 적어도 6년 전 그 때와 달라진 것은, 나는 자장라면을 먹고 잠으로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전히 불안하고 시간은 비어있는 채 흘러가는 것 같다. 쓰고 있는 시간조차 여전히 조각조각 끊어진 실을 이어 붙이는 것 같은 답답함과 무기력함이 존재하지만, 지금의 나는 자장라면을 끓여 먹고 잠이 들지 않는다.

그릇을 씻고, 노트북을 들고 일어나 카페로 간다. 일본에서 완주하지 못하고 마친 마라톤이 얼마나 아쉬웠는지 기억하기에, 아무도 뛰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끝까지 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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