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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Nov 06. 2015

글쓰기던지, 요리이든지 간에

온몸으로 감각하고 있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 분명히 시작된다

일러스트 ⓒ황인정



나와 남편은 이번 주 내내 저녁으로 닭 가슴살을 먹었다.

원래는 점심과 저녁 식사 모두 닭 가슴살을 먹으려고 했지만, 그렇게 먹으며 하루가 지나고 나자

인생의 재미가 없어져 버렸다.

남편이

"탄수화물을 안 먹으니 일할 의욕이 나지 않아, 아아아."

그러고는   

"널 사랑할 의욕이 나지 않아 (무슨 뜻입니까?)"

라고 해서 점심은 뭐든지 맛있게 먹고 저녁에만 닭 가슴살을 먹기로 했다.

 

일주일 먹을 분량을 사면서, 과연 이것을 매일 먹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지만,

이것저것을 넣고 매번 새로운 요리로 만들어 내는 그의 열정 덕분에 일주일을 질리지 않고 잘 먹었다.

다음은,

“다이어트를 위해 시작했으나 질리지 않기 위해 이것저것 넣어서

결국 다이어트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던 닭 가슴살 요리들”의 리스트다.


1. 카레와 청량고추를 넣어서 버무려서
2. 스위트칠리 소스에 버무려서
3. 로즈마리를 넣고 두드려서
4. 빵가루를 입힌 후 살짝 튀겨 두반장 소스에 버무려서
5. 튀긴 후 케찹과 땅콩을 넣어 만든 양념통닭소스에 버무려서

카레를 넣어 맛을 내거나, 양념통닭 소스를 만드는 것은 예상가능한 일이었지만

언젠가 제이미 올리버가 로즈마리 잎을 얹고 두드리던 것을 흉내 낸다던지,

냉장고를 열어 둘러보다 두반장을 꺼내 섞는 걸 보고서는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연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어떻게 그런 요리를 떠올리지?, 만 옆에서 반복해 외치며

퍽퍽하지 않은 닭 가슴살 요리를 맛좋게 즐겼다.


다니고 있는 교회 식당에서 얼마전 식당 봉사를 위해 전을 부치고 있는데,

음식 에세이를 쓴다는 걸 알고 있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내게 말했다.

“음식에 관해서 글을 쓴다니, 음식이라면 일가견이 있겠어요?”
나는 화들짝 놀라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전혀, 전혀요.
진실로 그러했다. 겉절이를 백인분 단위로 양념을 하고 무쳐내시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 앞에서 음식에 대한 일가견이라니, 어불성설이다.

크게 손을 내저었다.


음식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에세이를 쓰는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요리를 잘 하고 나만의 레시피가 있기 때문에도 아니다.


일본의 목욕탕에 대해 책을 썼을 때도 누구보다 그것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쓴 것이 아니었다. 블로그들을 검색하면, 개인적으로 목욕탕을 순례 하며 건축양식은 물론 락커가 몇 줄인지, 어떤 종류의 용수를 사용하는지마저 파악하는 사람이 다반사였다. 오히려 나는 반대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롭기 때문에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것이다.


일본 목욕탕마다 놓여있던 플라스틱 목욕 바가지가 그랬고, 이제야 알게 된 두반장의 맛이 그렇다.

잘 모르지만 통찰하고 싶은 대상이 생긴 것 뿐이다. 누구보다 깊게 꿰뚫고 싶은 이야기가 생긴 것뿐이다.

"쓰기 위해 바보가 되라"고 한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말처럼,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는 단계가 아닌 "감각"하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오히려 할말이 많은 것이다. 헬렌 켈러의 손에 차가운 물이 쏟아져 내렸을 때야 비로소

W .A. T. W. E. R. 이라고 외우던 글자가 아니라 바로 그 차가운 “워터!”를 감각할 수 있었듯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깜깜한 어둠같이 새로운 세계에 이제야 발을 디디고 선 사람이 더 날카롭게 감각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요리를 잘 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요시다 겐이치의 문장을 사랑했던 다카하시는 그의 문장을 베끼고 따라 적었다. 그렇게 베껴쓰고 베껴쓰고 나서야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가르쳐주는 이 하나 없는 그는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치 연애 하는 이처럼 온 정신을 쏟아 좋아하고 흉내 내고 동경하고 따라하다 보니 암흑 같은 세계에 불이 켜졌다. 저 유명한 다카하시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나 역시 어떤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자면 항상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면 건너편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의 행동이 머리속에서 글로 써졌다. 방금 읽은 책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것처럼 묘사가 이어졌다.

그녀의 말투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달리는 전철 안, 건너편 좌석에 앉아 손톱을 깎던 남자를 묘사하면서,

그 문장이 쓸모 있는지 없는지는 상관없이 그 작가의 말투, 사람을 보는 방식,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방금 전 마친 읽은 문장으로 감각하며 흉내 내고 또 흉내 내었다. 그것이 즐거웠다.

폭포처럼 쏟아져 흐르는 그것들을 주워담으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투로 시작했으나 놀랍게도 그것은 나의 이야기였다.

참으로 놀라운 경험의 시작이었다.


제이미 올리버의 '15분레시피'라는 프로를 볼때마다, 우아, 맛있겠는데, 하고  

감탄정도 하며 지나가는 나와 달리, 남편은 그의 요리를 곧잘 흉내내어 보곤 한다.

로즈마리 잎들을 뿌리고 유선지를 덮고 잎들이 고기에 박히듯 두드려 펴주는 제이미의 요리방법 뿐 아니라,

재빠르고 능숙하게 요리하려는 그의 태도까지 말이다. 근본없는 요리를 한다며 놀리기도 했지만

언젠가 먹었던 것, 어디선가 본 재료를 몸으로 기억하고 따라해보고 만들어서 먹여주며  

본능적으로 자기 것을 만들고 있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항상 흥미로운 것이었다.

제이미가 사용하는 샬럿대신 양파를, 라임대신 레몬을, 그리고 코리앤더(고수) 대신 시금치를 떠올리면서,

만들 요리가 머리 속에 쏟아져 나오는 남편을 볼 때마다 나는 아, 정말 요리를 좋아하는 구나 라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지지고 볶고 보기 좋게 담는 그 순간까지, 온 신경을 집중하며 보이는 모든 것을 감각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가슴이 사랑하는 그것을 향해 뛰는 순간이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암흑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이고, 무언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정말로 좋아한다면

온몸으로 감각하고 있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 분명히 시작된다.


그것이 글쓰기던지, 음악이던지, 요리이든지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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