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보로봉 Nov 13. 2015

비밀의 빵집

 또 이 빵집에 들러서 마론 브리오쉬를 사가는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일러스트@황인정


서울에 가면 들리는 빵집이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인 것 같다. 아는 사람도 많지 않고, 자랑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혼자만 알고 싶은 그런 곳 말이다. 서울에 자주 나가는 것도 아닌데다 식사는 장소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서울에 가면 들리는” 곳으로 식당은 좀 어렵다. 인테리어 뿐 아니라 물건이 진심으로 맘에 들고 가격도 적당해서 부담 없이 들릴 때 마다 실제로 하나씩 사가지고 올 수 있는 곳, 심지어 담아주는 봉투까지 예쁘다면 더 좋겠다.

그런 곳으로 빵집이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빵을 좋아하고 동네에도 빵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체인점 빵집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니까 열외로 하고. 광화문에 있는 이 빵집은 개수는 많지 않지만 이름도 예쁘고 보기에도 어여쁜 빵을 팔고 있다. 내가 외출을 하면 혼자 저녁을 먹는 남편에게 뭔가 사서 들고 가고 싶다. 일하느라 하루의 진을 다 빼고 나서 혼자 뭔가를 차려먹기란 정말 성가시고 힘 빠진다며 라면이나 먹고 있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이상

(알았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던 시절이 지나갔다. 이런) 돌아갈 땐 역시, 맛있는 걸 들고 가고 싶어진다.


마론 브리오쉬, 살라미 파이, 레몬파이-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와 여유있게 도착한 마음만큼 여유롭고 사려 깊은 이름의 파이들이 차곡차곡 늘어서 진열되어 있다. 종류가 얼마 되지 않는데도 다들 반짝거려서 무얼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차라리 사고 싶은 것이 많은 쪽이 즐겁다. 종류는 셀 수도 없는데, 지갑도 열 준비가 되어있는데 어느 것에도 손이 가지 않는 것처럼 절망적인 쇼핑이 또 어디에 있을까.


뭔가 몸에 좋지 않은 재료를 먹을 때, 사실 입에서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좋은 재료를 쓰면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다들 그럴 것이다. 무엇이 좋은 지는 꼬집어 말할 수 없어도, 좋은 재료는 입에 넣으면 좋다고 느낀다. 몸도 혀도,

그림에 대해 무지한데도 어떤 그림을 보면 가슴이 뭉글뭉글해질 때가 있다.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이 지루하지도 않고 편안하다. 나는 저 그림이 무얼 말하는지도 모르는데 왜 이런 기분이 들까 신기해하면 그나마 우리 둘 중 그래도 붓을 잡아봤던 남편은 말한다.


"잘 그린 그림은 보면,,,,, 좋아."

말로 표현이 서툰 사람이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좋은 건 보면 좋다는 말을.

그나마 우리 둘 중 활자로 표현해본 내가 이야기하자면, 좋은 음식이나 좋은 그림이나 좋은 목소리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준과 상관없이 어떤 의미에서 동일하게 좋은 느낌을 받는다. 형편없는 연기인 줄 몰랐다가 연기 잘하는 배우와 함께 있으면 모두가 알게 되는 것처럼 아주 간단한 경우도 있고, 어떤 점이 탁월한 지 집어낼 수는 없으나 (김영하 작가도 장그르니에의 <섬>의 서문을 읽으며 부족한 것을 지적하기는 쉽지만, 잘한 점을 칭찬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훌륭하다는 평가에 의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분위기만을 감지해야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분명히 모두가 느낄 수 있다.


이리저리 클릭을 하다 발견한 블로그에서, 광화문에 가면 이 빵집에 들르고 이태원에 가면 저 빵집에 들러요, 라면서 단골빵집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어쩐지 다 가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빵집 사진도 없고, 상호명도 이니셜로 (이 사람도 실은 혼자만 알고 싶은지) 적어 놓아서 어디에 있는 빵집인지 당췌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에이, 아쉽네, 하고 나오려다가 오히려 제목에 빵집 이름을 넣고 키워드와 태그를 붙이고 한 페이지에 빵집의 모든 빵 사진을 올리며 눈에 띄기를 기다리는 포스팅보다 신뢰가 생겼다. 이것 봐라, 하는 맘에 찾아서 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여러가지 단서를 찾아가며 빵집을 알아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역시, 맛있다. 이 집.


① 포스팅을 올려야 한다. → A 빵집에 관해 쓴다.

② A 빵집을 좋아한다. → 빵집에 대한 관해 쓴다.

보통은 ②의 순서로 진행되어야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도 요즘의 세상은 ①의 순서로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종종 받는다. (뭐, 포스팅 뿐만은 아니겠지만). 그러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①의 경우, 일정 공간을 채우기 위해 필요 이상 사진이 남발된다. 심지어 음식점의 모범음식점 간판을 찍어 올리며 “포스팅 거리가 될 것 같아 찍었어요” 라는 설명을 읽었을 때는 아니, 요즘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겁니까, 라고 묻고 싶어진다.


그러다 가끔 ②의 순서로 꾸려가는 블로그에 우연히 도달하게 되면 참으로 기쁘다 못해 마음이 상쾌해진다.

바로 즐겨찾기를 하고 이니셜로 쓴 상호를 검색해서 찾아내 메모지에 적어둔다. 그리고 지금처럼 그 빵집에 기분 좋게 앉아 작은 단지(JAR)에 담긴 홈메이드 생강차를 쪼오옥 마시는 시간에 이르게 된다. 앉은 자리 한쪽에는 집으로 가져갈 파이들이 봉투에 담겨 얌전히 앉아 있다.


다음에 광화문에 오면 또 이 빵집에 들러서 마론 브리오쉬를 사가는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나 역시 조금은 혼자만 알고 싶으니까 여기에 상호는 쓰지 않겠다. ‘ㅍ’ 로 시작하는 빵집입니다만.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던지, 요리이든지 간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