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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Dec 04. 2015

브라우니 두 조각

마음이 담긴 것 주고받는 사람 몇 사람만 있어도 인생은 충분하다

일러스트 @황인정


1년간 타지에서 살다 돌아온 J를 만나러 가는 길은 설렜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많다. 결혼식이라던가, 빠질 수 없는 모임 때문에 일년에 한 두 번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친구들이라 반갑고 옛날 이야기를 하다 보면 들뜨기까지 하지만, 항상 인사하는 처음 장면이 문제다. 직장을 다니지 않아서 하고 있는 일을 한 문장으로 딱 설명하기 어렵다는 자격지심인지, 어떻게 지내, 무슨 일 하니, 라는 인사에 난데없이 말문이 막히기도 한다.

오전에는 남편을 도와서 일하고,, 오후에는 글을 쓰고,,라고 길게 설명하기에 결혼식장 앞은 너무 정신이 없고,

상대방도 자세히 듣고 싶어서 물은 것은 아니니까 적당한 대답을 생각하다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잘 아는 사람들. 거리상으로는 멀지만 마음은 가까운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나러 가는 길이 설렌다. 설명하기 위해 대답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니까.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J는 일어나서 나를 끌어안았다. 옷을 입고 있으나 살이 닿는 듯한 반가움이 전해진다. J는 호일에 싼 것을 내어 놓았다. 브라우니 두 조각이 들어있었다. 미국인인 숙모가 만들어서 한국에 가져왔는데 내가 브라우니 좋아한다고 한 걸 기억하고 두 조각을 호일에 싸온 것이다. 쫀득쫀득하고 초콜릿보다도 진한 브라우니를 조금 뜯어 먹으면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함께 내어 놓은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사왔다는 마그넷을 보면서, 지구 반대편의 미술관에서 나를 기억하고 뭔가를 고르고, 그 반대편의 지구에서부터 온 브라우니를 보고 날 기억해서 호일에 싸 온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 수는 없었다.

물론 브라우니가 맛있어서도 그랬겠지만, '정성'이라는 것이 느껴지니까 맛있고 고마운거다.  


김소연 시인은 <마음사전>이라는 책에서 정성과 성의를 이렇게 비교했다.

정성은 의도가 없고 성의에는 의도가 있다고.  

그래서 정성은 “담겨있다” 말해지고 성의는 “표시한다”고 말해진다고 했다.  

"선물이라는 물건 자체보다 애정을 선물하는 것이 정성이지만 성의가 담긴 선물은 판단하게 만든다.  

정성은 내키지 않으면 결코 구현할 수 없는 것이고 성의는 내키지 않아도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나도 문을 열고 들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준비한 대답 말고 작으나 정성을 담긴 것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성의를 표시할 때가 많다. 어쩔 수 없는 인간관계에 아쉬운 소리 듣기 싫어서, 환심을 사기 위해서,

어떤 때는 아주 비겁하게도 베풀어 준다는 듯한 정성도 성의도 아닌 자기만족일 뿐인 경우도 있다.

그러다가 이렇게 마음을 담은 것을 만나면 그냥 호일로 쌌어도 충분하니까 이런 거 주고 받는 사람만 몇 만 있으면 충분하고 좋겠다 싶었다.  


J가 물었다. 언니, 요즘 제일 행복한 게 뭐야.

당황스러우면서도 픽 웃음이 나왔다. 그래, 먼 세상을 돌아다니다 온 녀석이 할만할 질문이네.  

여기에 오래 있었던 나는 순간 머리를 굴렸다. 그럴듯한 대답. 글을 쓰는 내가 할만한 대답. 그리고 나온 대답.  

글 쓰는 게 좋지-, 책 보는 게 좋지-.    

서른이 넘어서 책 읽는 것이 큰 낙이 되긴 했으나, 취미는 독서, 만큼이나 진부한 대답이다.  

언니, 나는요- 라고 말하기 시작한 J는 요리하는 엄마를 뒤에서 안고, 어색해하는 남동생을 자꾸만 안고,

그렇게 지내는 요즘이 행복하다고 했다. 그 먼 곳에서 살 닿는 사람 없다가 자꾸만 살이 닿고 체취를 맡는 게 좋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커피 말고 얼그레이를 커다란 머그에 잔뜩 우려서 아까 받아온 브라우니 조각을 싼 호일을 펼쳤다. 그 동안 많이 먹어왔던 브라우니와 달랐다. 집에서 만들어서 그런지 빵이랑 섞어 얼마든지 먹을 만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정신이 아찔할 만큼 진하고 단 갈색의 브라우니를 입에 넣으면서 나는 “책 읽는 게 좋지”라고 게으르게 대답했던 몇 시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가서, “오그라들지는 몰라도” 라고 운을 떼고 솔직하게 요즘 나의 낙인, 함께 사는 사람의 체취에 대해 말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했다.  


책이 나오고 일년, 그나마 한 두 군데의 잡지와 라디오와의 일거리가 지나가고 나자, 겨우 한 두 달 만에 놀랄 만큼,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책이 나오면 그 다음엔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생활이 보장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무언가 바뀔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청탁 받지 않은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다 보면, 흘러가는 세월에 초조하기도 하고 무력하고 게을러지기도 한다. 그런 요즘 가장 좋은 건, 자기 전에 같이 사는 사람의 팔에 엉겨 붙어 얼굴을 묻고 냄새를 맡고, 안심하는 그 순간이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테지만, 익숙한 냄새만을 감각하며 몽롱하게 잠드는 그 순간이다.발바닥을 그 사람의 종아리에 붙이고, 깜깜한 밤이어도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음을 실제적으로 느끼는 고요한 순간에 ‘이게 낙이다’라고 실제로도 고백했음에도, 그것을 답으로 하는 J의 질문의 순간에는 막상 그걸 대답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바로 그 대답, 나의 대답을 그쪽에서 하며 미소를 지었을 때, 나는 우리만 아는 새로운 스테이지가 열리는 듯이 기뻤다. 빵의 모양을 하고 적당히 먹을만한 브라우니가 아니라 홈메이드의 찐득하고

솔직한 맛의 브라우니 같은 대답을,

나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하며 또 한입 크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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