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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Dec 11. 2015

리틀 조지아의 아침식사

 chizi Bizhi라는 메뉴를 주문하면서 넘어간 국경선

일러스트@황인정



여행에서 돌아와 커다란 유럽지도를 샀다. 세계 지도를 사려고 했었는데, 유럽의 나라들이 너무 작게 나와 잘 보이지 않아서 유럽만 크게 나온 것을 사 보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과 북유럽 동유럽의 위치만 대충 알고 있었지.  이런저런 나라들이 있었구나. 잘 모르는 나라가 많았다.

폴란드 땅이 이렇게 컸구나. 라트비아나 벨로루시도 꽤 크다. 혼자 지도를 붙여 놓은 벽 앞에서 한 참을 들여다보았다.


조지아,라는 나라도 있다.

구소련에서 독립한 나라로 러시아와 터키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정식 명칭은 그루지야 공화국, 수도는 트빌리시다. 모르는 나라였는데, (그루지아라는 이름으로는 몇 번 들어본 것 같다. 모른다기 보다는 관심이 전혀 없던 나라였는데) 런던에서 리틀 조지아라는 가게를 다녀온 이후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그 가게가 꽤 맘에 들었나 보다. 영국에서 먹은 것을 떠올리라면 월레스 컬렉션 티 하우스의 애프터 눈 티와 리틀 조지아의 아침식사가 떠오른다. 이번에 여행한 런던에서 나는 나오코라는 친구의 집에 머물렀는데, 월요일에 내가 도착한 이후로 일주일 동안 나는 그녀가 출근한 후 일어나기도 하고 그녀가 깨기 전에 나가기도 해서, 우리는 밤이나 되야 만나서 함께 펍에 가서 음악을 듣기도 하고, 음식을 먹으러 갈 수도 있었다. 그것도 매우 즐거운 기억이지만, 멀리서 친구가 왔으니까 어딘가 좋은데 데려 가는 것과, 한 주를 마치고 그녀가 좋아하는 단골집으로 슬렁슬렁 아침을 먹으러 가는 것은 즐거움의 종류가 조금 다르다. 이때야 말로 뭔가 여행자의 스테이지를 조금 지나 그곳에 슬쩍 스며들어있는 로컬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 더 맘에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한국인이 없는 관광지가  없을뿐더러, 유명하고 맛있는 것을 먹자고 가보면 관광객과 그들에게 익숙해진 웨이터뿐이라 머쓱해질 때도 있는데, 이렇게 로컬의 단골가게에서 조용히 신문을 넘기며 밥을 먹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자면 역시 기분이 좋다. 그 나라 땅을 살짝 혀로 핥아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발로 꾹 눌러본 느낌. 얼굴 말고 옆구리 같은 곳을 만져 본 느낌이 들어서.


가게로 가는 길에 우리는 토요일마다 열리는 북적북적한 브로드웨이 마켓을 지나, 갓 내린 커피 냄새를 맡으며 빈티지 스웨터를 구경하기도 하고 그것을 입어보는 여자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훌렁훌렁, 탈의실 없어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 한쪽 커피숍에는 해를 쬐러 나온 사람들이 파리의 카페처럼 한 방향으로 나란히 앉아 아침부터 수다를 떨고 있다. 혼자서는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커다랗고 투박한 빵들이 쌓여있는 가게를 지나 마켓의 끝에 이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진 거리를 조금 더 걸어가다가 민트색 문을 가진 작은 가게를 지나치는데 나오코가 다 왔어.  여기야,라고 말했다. 혼자서는 백 번이고 그냥 지나쳤을 아주 작은 가게. 들어가면 생각보다 훨씬 작고 간소한 테이블이 4개 정도 있는 가게다.


“조지아에 간 적이 있었어. 구소련에서 독립한 나라야.”


소련이라는 단어, 그래서 대강 짐작되는 나라의 위치. 주황색과 노란색의 커다란 머그잔과 가게 안의 그림과 장식품들에서 나는 조지아를 짐작했다. 내가  앉은자리의 벽에는 조지아의 어느 항구를 (아마도 유명한) 그린 액자가 걸려있었다.


나는 Chizi  Bizhi라는 메뉴를 주문했다. 조지아식 아침식사 메뉴다. 나오코가 그거 혼자 먹기는 좀 많아 라고  충고했지만, 조지아 식당에 왔으니까 무난한 팬케이크보다는 조지아식 아침식사를 먹어보기로 했다. 조지아식으로 만든 홈메이드 소시지, 마늘, 허브, 토마토와 섞은 스크램블 에그, 베이컨, 익힌 콩과 토스트가 나왔다. 베이컨과 홈메이드 소시지도 맛있었지만, 익힌 콩요리에 빵을 찍어먹는 것이 정말 맛있었는데 보통의 베이크드 빈(baked bean)처럼 케첩 소스가 아니라, 갈색의 좀 더 부드럽고 온화하면서 걸쭉한 죽 같은 것으로 콩 특유의 고소한 맛이 나면서 입안이 든든해지는 맛이었다. 양이 적지 않았지만 남기지 않고 전부 먹었다. 나오코가 자신이 주문한 팬케이크를 조금 덜어주었을 때도 거절하지 않았다.


아마 일주일의 런던 여행의 마지막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어서 기억하고 싶은 것처럼 나는 빵에 소스를 찍어 뱃속에 잘 묻혀놓았다. 아마 그것은 아침식사였기 때문에, 그녀가 특별히 좋아하는 단골이었기 때문에, 좋은 냄새가 나는 북적북적한 마켓을 지나왔기 때문에, 십 년 만에 우리가 만나 이렇게 함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상관없다. 조지아는 나에게 아무 의미 없던 나라에서 “당장 가고 싶어!” 는 까지는 아니지만 뭉근하게 관심이 생기는 나라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그렇게 시선이 가고 크기와 이름을 인지하고, 분명하게 세계가 넓어진다.

한 곳을 기점으로 그 옆의 경계선들을 넘어간다.

몸이 있었던 런던과 chizi Bizhi라는 메뉴를 주문하면서 넘어간 국경선.

가고 싶은 나라가 이렇게나 많다.

지구는 정말 둥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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