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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Dec 18. 2015

비일상적 기내식

 어디로도 가고 있는 것 같지 않지만 우리는 분명히 가고 있다는 걸 안다

일러스트@황인정

비행기에 탑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내식이 나온다.

앞 좌석에 붙어있는 간이 식탁의 사이즈에 딱 맞는 플레이트에는 식전 빵과 닭고기 요리, 약간의 야채와 과일

그리고 디저트용 무스까지 그야말로 한 끼 식사의 구색을 나름대로 완전히 갖춘 식사가 놓여 있었다.

(오히려 집에서는 그렇게 식전 빵이나, 식후 디저트를 챙겨 먹지 않겠지만).


일회용 물수건으로 손을 닦고, 포장용기의 뚜껑을 벗겨내고 있자니, 주위에 앉은 사람들 중 꽤나 여러 명이 먹기 전에 기내식의 사진을 찍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내 오른쪽 건너편에 앉은 여자는, 먹기 전 수저의 포장을 뜯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인 듯 자연스럽고 무심하게 한 장을 찍었고, 그 앞에 앉은 외국인은 플래시까지 터트려가며 열심히 기내식을 카메라에 남겼다. 맛은 말할 것도 없지만,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모양마저 특별할 것 없는 기내식의 사진을 다들 왜 찍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륙하면서부터, 공간적으로 내가 닿아 있던 땅에서 떠오르면서부터 여행이 시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고도에서 먹는 밥조차, 그것은 새롭고 설레는 여행의 한 부분이 되어서 어떤 사람에게는 사진으로 남겨두기에 충분한 것이 된다.


하늘 위에서 밥을 먹고 있다는 것, 그것은 일상적인 일은 아닐 것이다.

아침식사는 델리와 전통 아랍식 중에서 고를 수 있었다. 메뉴에는 돼지고기가 없다는 걸로 내가 아랍 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용한다는 점을 실감한다. 화장실도 가지 않고  정신없이 잠을 자던 사람들,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영화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지루함을 달래는 사람들, 가이드 북을 보면서 가고 싶은 곳을 메모하는 사람들 모두 기내식이 나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자세를 고쳐 앉아 뒤로 젖힌 의자를 바로 하고 다가오는 승무원만 바라보고 있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두가 질서 정연히 정리되는 기내 안을 한 번 바라보고, 아직 저 복도 끝에서 치킨 Or 생선을 물어보는 승무원이 내게 더 가까이 올 때 까지 작은 창 밖의 구름을  내다보며 기다린다. 별다른 움직임 없이 앉아 두 끼를 먹고 나면 두바이에 도착할 것이다. 8시간이 넘는 비행 중에 내가 뭔가 하는 것이 있다면 기내식을 먹는  것뿐이다. 먹고 싶어서라기 보다 시간이 가고 있음을 인지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표를 확인하는 것과 같은 여정 중의 하나 인 것이다.


“일상적인 일 속에서는 이르지 못했던 높이로부터 우리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확실히 이렇게 높은 곳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 그것은 일상적인 일은 아니다. 이렇게 노트북 하나를 펼칠 수 있는 작은 선반에 딱 맞게 모든 음식이 담겨 나오는 비일상적인 기내식 앞에서 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나 높이 올라와서 모두가 똑같이 작아진 집을 바라보다 결국은 보이지 않을 만큼 올라오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싼 집이나, 싼 집이나, 잘생긴 사람이나, 못생긴 사람이나 비교의 의미 자체가 없어진다. 여행의 목적지인 런던에 도착해서 지하철을 탔을 때도 이와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한국에서 누가 조금 더 예쁘고 더 어려 보이는지 구분되었던 것들이, 인종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패션도 스타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 섞여 있는 이곳에 오자, 그 비교 범위와 차이가 너무 커져 버려서 비교도 구분도, 그 의미가 실제로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실감할 수 있었다.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처럼 끼어들까 조마조마한 것도 아니고 100미터 달리기 시합처럼 트랙에서 달리는 내내 누가 잘 달리나  비교당하는 기분도 들지 않는다. 주위에는 구름뿐이라 내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앞 좌석에 붙어있는 작은 스크린에서 지금 어느 나라 상공을 지나가는지 알려주지만 국경을 지나간다고 해서 내가 느끼는 차이점은 하나도 없다. 어디로도 가고 있는 것 같지 않지만 우리는 분명히 가고 있다는 걸 안다.

저렇게나 커다란 하늘에서는 내 옆에 누가 얼마나 빨리 가는 지는 보이지도 중요하지도 않다.

커다란 인생을 지나 내 목적지에 가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최근에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여렸을 때와는 조금 다르게 마음에 와 닿았다. 토끼와 거북이는 잘 알다시피,

거북이와 토끼가 경주를 하는데 교만한 토끼가 중간에 잠을 자다 거북이에게 지고 만다는 내용이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 것은 토끼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잠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요한 요지인데, 나는 토끼가 잠을 자지 않고 경기에서 이겼어도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보다 무언가 -그것이 실력이든, 돈이든 무엇이든- 한참 뒤쳐진다고 생각하는 상대를 뒤에 놓고 가끔 흘끔 뒤돌아보고 안심하는 삶이란 의미가 없다. 그런 식이라면 열심히 달려봤자 토끼에게 질  수밖에 없는 거북이의 경주는 처음부터 의미 없는 것이 된다. 토끼를 보지 않고 가는 것은 어렵다. 나는 계속 지고 있으니까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의심이 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 토끼가 자든지 자지 않든지 그냥 내 길을 계속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얼마나 어려운지 이렇게 높이 올라와 보면 조금 알게 된다.

저 밑에 작아진 세상에서 조금 더 앞에 가는 것이 별 의미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이 높이에서 우리가 보이는 것은  구름뿐이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분명히 가고 있다.

자동차 도로처럼 줄을 세워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주하듯 가는 것이 아니다. 옆 사람보다 빨리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목적지에 당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내 옆에 달리는 차, 내 앞에 달리는 차, 좁아지고 밀리는 도로에서 내 앞에 끼어드는 차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하늘을 달리는 것은 다른 일이다. 모든 것의 비교 의미가 사라진다. 나는 내 길을 가면 된다. 길을 비교 불가능하게 넓어졌다. 대신 눈 앞에 보이지 않지만 계속 가는 것이  중요해진다. 끝도 시작도 없는 것 같은 길을 다 갈 수 있을까 싶었던 거북이가 경주를 마치자 토끼를 이기게 된 결과가 되었던 것처럼.

그렇게 달려가야 한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그것뿐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도 그 뿐이다.

기내식만큼이나 심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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