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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Dec 25. 2015

햄버거 이즈 마이 라이프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단어가 내게도 있다면 좋겠다.

일러스트 @황인정

모스버거에는 아이스 티가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물론 콜라를 무척 좋아하지만  콜라는 좀 더 불량한 음식과 어울린다. 얼름이 잘게 들어간 우롱차도 괜찮은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메론 소다를 주문했다. 나답지 않게 초록색의 음료라니, 그래도 오늘은 그냥 메론 소다를 시켜보자. 메론 소-다, 라고 말하면서 한번도 주문해 본 적없는 단어가 참 낯설다.  


어렸을 때 부터 편식이 심했다. 편식이 심한 이유 중 하나는 그 맛보다는 색깔이나 향 때문이다.

-지금도 오이비누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다. 냄새대문에 아삭하게 씹히는 식감을 포기하고 있는데 그 향을 굳이 비누에 첨가하다니!-

한동안은 아삭한 야채와 폭신한 빵을 어떻게 같이 먹느냐며 샌드위치를 싫어했다. 점점 커가면서 편식이 줄긴 했지만 메뉴를 선택할때 이것저것 들어간것을 싫어하는 것은 여전하다. 그래서 프레쉬니스 버거를 가면 프레쉬니스 버거를, 모스버거를 가면 모스버거를 먹는다.

김치니, 라이스니, 잡다한 것을 넣지않은, 기본 버거.

한정판으로 나오는 화려한 버거의 광고에 눈이 혹해 들어갔다가도 결국 주문하는 것은 모스버거다. 그리고 역시, 기본 버거가 제일 맛있다.


그와 나는 장을 보러 나왔다가 가끔 역 건너편 출구에 있는 모스버거에 들린다. 둘이 시키면 만원을 훌쩍 넘지만, 감자는 하나만 주문하지뭐, 라고 둘러대면서 쭐래쭐래 건너편 출구로 향하곤 한다. 벌써 버거를 삼켜(?)버리고 감자튀김으로 손이 가는 그를 원망하며 기다려야지! 라고 티격태격하면서도 굳이 하나를 더 주문하지는 않는다. 가격이 많이 나와 나중에 후회하지 않고 또 올수 있도록.


그만큼 나는 모스 버거를 좋아한다.

햄버거가 뭐 다른게 있겠어, 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런저런 풍경에서 조합된 이미지를 모두 합치고 나면, 그 인상은 다른 패스트푸드의 그것과 꽤나 다르다.  

한조각이지만 신선하고 단단하게 잘린 토마토, 데운 것이 아닌, 방금 익혀 마르지 않은 두툼한 고기패티, 작고 아담하지만 풍성하게 재료를 머금고 종이호일에 싸여 나무로 짠 바구니에 담겨오는 자태가 사랑스러우면서도 믿음직하다. 플라스틱 접시가 아닌 나무로 짠 바구니에 나오는 것도 마음에 든다.


여행자에게 얼른 먹고 가라. 라는 분위기를 보이지 않아 따듯하고 보드라운 빵만큼이나 마음이 따듯해진다. 여행자라는 종류의 인간은 매우 예민해서, 나에게만 그렇게 대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원래 정해져있는 시스템에서조차 기쁨을 느끼거나, 또는 상처를 받곤 한다. 가령 나의 경우는 너무 얇은 감자튀김을 보면 서러워진다.

정해진 예산안에서 이것을 먹으면 저것을 포기해야하는 어려운 선택끝에 온 나에게 그런것따위 신경안써, 라는 듯한 굵기의 감자튀김은 역시나 서럽다. 나에게만 그렇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도 서러워지고 만다.

그런데 모스버거의 많이 먹어요, 라는 듯한 솔직한 굵기의 감자튀김이 나를 안도하게 한다.  


이타타키마스(잘먹겠습니다)-

오늘은 혼자서 버거를 베어 물었다. 경쟁자가 없는 감자튀김이 느긋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다. 메론소다도 생각한 것보다 맛이 좋다. 사이다처럼 청량한 맛.

버거는, 주문한 대로 양파가 들어있지 않다.

일본에 와서 처음 모스버거를 주문할때, 잘 못먹는 양파가 얼마나 들어있을지 걱정되서

"양파를 빼주세요" 라고 말한다는 것이

"다마네기...(빼다,,가 일본어로 뭐였더라.....) ..아웃!" 이라고 말해버렸다.

아웃, 이라니 창피하기 그지없지만 점원은 양파를 뺀 버거를 가져다 주었다. 그 이후로는 양파를 잘 먹으면서도 "다마네기 누끼데 (양파는 빼고요)" 라고 말하고 싶어서 양파를 빼고 주문한다.

마치 "아웃"이라고는 말한적 없는 사람처럼 아주 우아하게.


햄버거 이즈 마이 라이프

한쪽벽면에 작게, 하지만 또박또박 써있는 문구. 햄버거가 그렇게까지 좋을리가 없지 않아? 과장하고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만큼 좋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만큼 햄버거를 의미있게 만들거야, 라는 자신감을 이야기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 이즈 마이 라이프

나는 저 빈칸에 무엇을 넣을 수 있을까?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든, 그만큼 자신있는 것이든, 어느쪽이라도 좋으니 그런단어가 내게도 있다면 좋겠다.



*햄버거이즈 마이 라이프는 2010.6월에 출간한 『오후3시의 도쿄』에 실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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