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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Sep 04. 2015

초콜릿을 좋아하는 난쟁이

이렇게 달고 아름다운 것을 먹는다

일러스트 ⓒ황인정


우리 집에서 홍대에 간다고 치자. 


당연히 가장 가까운 전철역인 부천역으로 가서 전철을 타고 가면 한 시간 안에, 운이 좋아서 직통 전철을 타면 40분 안에 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온 후 2년 동안 그렇게 홍대를 간 적이 거의 없다. 우선 부천역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여기서부터 이상한 쾌감을 느낀다) 굳이 2천 원을 내야 하는 삼화 고속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너 홍대에 간다. 요금이 더 비싼 것도 그렇지만, 낮에는 고속버스가 자주 오지 않기 때문에 정류장에 도착하면 28분 또는 33 분등의 대기시간을 보고 아휴, 역시 전철을 타야 했는데..라고 후회를 하면서도 다시 또 고속버스를 타러 간다. 결국 1시간을 훌쩍 넘겨 사실상 출발한 지 1시간 반 정도가 돼서 도착을 하고 나면 나는 뭐가 문제일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하지만, 자주 외출을 하지 않으니까 번잡하고 너무 많은 광경을 보게 되는 전철역을 피해 고속버스를 타고 유유히 나가는 편이 좋다. 부딪히고 그냥 가는 사람들과 정신없는 간판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보다 더 지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좀 더 야심 차게 출발하는 날은 780번을 타고 고강동 시골길을 달려서 김포공항으로 간 후에 공항전철을 탄다. 주위는 논밭뿐인 외길에 접어들면 눈에 읽히는 것이 없어 편안해진다. 서울의 외곽을 돌아가는 여정인데도 오히려 이 편이 집을 나서기 수월하다.  


그렇게 고속버스를 기다리면서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에 간다. 초콜릿을 사서 타야 하기 때문에 막상 기다리지 않고 바로 버스에 타게 되면 그것도 당황스럽다. 십 분정도 기다리는 것이 딱 좋다.  

보통 모리나가(노란색 포장의 밀크 캐러멜로 유명한)의 다스(DARS) 화이트 초콜릿이 있으면 고민 없이 그걸로 고르지만 가져다 놓는 편의점이 많지 않아 뭘로 할지 골라야 경우가 많다. 다스 초콜릿은 자유시간처럼 뜯고 나서 한 번에 다 먹어야 하는 부담감도 없고 하루 종일 가방에 상자를 넣고 다녀도 초콜릿 박스의 끝이 닫히니까, 12개가 하나씩 차곡차곡 있어줘서 안심이 된다. 화이트 초콜릿인데도 느끼하지 않고 부드러워서 고급 초콜릿을 먹는 것처럼 기분도 좋다.  


일정을 소화하며  중간중간 가방 속에 든 초콜릿을 생각한다. '전철을 기다리면서 하나 먹어야지', '하나 만 더 먹을까, ' 같은 걸 진지하게 계획하고 고민하는 것이 은근히 즐겁다... 나는 변태인 걸까? 

('도쿄 목욕탕 탐방기'를 읽고 누군가가 쓴 리뷰에도 이렇게 목욕탕 한 개에 꽂혀 목욕탕만 돌아다니는 걸 보니, 저자는 약간의 변태성이 있는 것 같다고 썼다)   


요 며칠 읽고 있는 하루키 씨의 에세이에서 그는 단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어떡하든 지금 당장 초콜릿이 먹고 싶다'라는 욕망이 솟구칠 때가 있다고 했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가 추측하기는 몸속에 초콜릿을 좋아하는 성질 급한 난쟁이가 있어서, 어두운 곳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다가 갑자기 깨어나, "초콜릿 어디 있어! 이놈아 빨리 초콜릿을  가져오라고"라고 난동을 부리는 거란다.

그러면 그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편의점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는 거라고.  

 

아주 그럴듯한 추측이다. 난쟁이가 바닥을 쿵쿵 구르고 벽을 쾅쾅 치는 감촉이  몸속에 있다니. 갑자기 초콜릿이 먹고 싶을 때 느낌이 딱 그렇다. 빵이나, 밥을 먹고 싶은 것이 아니다. 뱃속이 아닌 혀를 만족시킬만한 달고 감촉 좋은 것으로 충만감을 느끼고 싶다는 바람이 뇌의 어딘가에서 썰물처럼 밀려 내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찾는 것은 나 역시 편의점.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르는 시간도 중요하다. 편의점에 예쁘게 정렬된 알록달록한 포장과 필체를 구경한다. 레트로풍의 포장을 두른 마켓오 블루베리 초코바는 먼 외국의 아주머니가 집에서 홈메이드로 만들었을 것만 같다. 다른 품목은 실제 쓰여 있는 광고문구도 잘 믿지 않는데, 초콜릿 포장에는 참 잘도 넘어간다. 넘어가기로 작정한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달고 아름다운 것을 먹는다는 즐거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길을 나설 때 초콜릿을 챙기기 시작한 건 아마도 도쿄에서 살았던  때부터인 듯싶다. 처음 가서는 할 일이 없으니 산책을 나가 편의점과 마트 구경하는 것이 제일 즐거운 일이었고, 친구가 없으니 길을 나서면서도 통화할 사람이 없어 괜히 편의점에 들려 초콜릿 하나를 집어 들었던 것 같다.


함께 이야기할 상대는 없어도, 입안에 넣을 때만큼은 짜릿할 만큼 행복해서 외롭지 않았다. 

그러니까 난동을 부리던 난쟁이가 어느샌가 상냥해져서 위로해 주는 것 같은 감상.   

그래서 그런지 하루키 씨와 달리 나는 난쟁이가 잠이 들어도 '초콜릿 따위 꼴도 보기 싫어지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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