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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Sep 07. 2015

말러와 커피와 남자

스타일이 좋은 것만큼이나 안목이나 취향도 매력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일러스트 ⓒ황인정



친구를 만났다. 그야말로 예쁘고 똑똑하고 취향마저 고상한 아가씨다. 페이스북에 그녀가 올리는 독후감을 보면서 나를 포함한 그녀의 친구들은 왜 휴가까지 가서 그런 어려운 책을 읽는 거냐! 고 타박하기도 하지만, 그런 책들을 잘난척하려고 읽는다면 매우 고역일 것이므로 우리는 그녀의 우수성을 순수하게 인정하고 있다.그녀는 특히 말러를 좋아해서 미술관의 긴 줄을 말러를 들으며 버텼다고 한다.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듯 갑자기) 말러를 좋아하는 남자는 없을까? 쪽으로 흘렀고, 나는 ‘말러를 듣는 사람들의 모임’ 같은 데라도 가보라 했지만 막상 그곳엔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있는 오타쿠만 잔뜩 있을 거라고 다들 손사래를 쳤다.  

말러를 좋아하지만 오타쿠인 아저씨와 8월의 인기가요를 듣는 잘생긴 청년 중 도대체 어느 쪽이 낫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취향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면, 커피를 좋아하는 다른 한 친구는 결혼할 남자가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할까 걱정이다. 스타벅스에 하루에 한 번(두 번도) 꼴로 가는 그녀의 “바닐라 라떼, 무지방 우유에 시럽 반” 주문은 나도 카페의 직원들도 모두 외우고 있다.

너무 멋진 남자를 만났는데, 한 잔에 4500원이나 하는 커피값이 아까우니 마시지 말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 남자들끼리라면 그게 고민할 거리나 되냐며, 여자의 사정은 들어보지도 않고 순식간에 그녀를 된장녀 카테고리에 집어넣고 욕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커피는 꼭 여자만의 취향은 아니다. 스페인에 살고 있는 나의 남동생도 걱정되리만큼 커피를 마신다. 함께 다니다가 눈을 돌리면 커피를 마시고 있다. 비염으로 안압이 올라가는 것 같다고 커피를 사러 간다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 자고 일어나서 마시고 밥 먹고 마시고, 쉬면서 마시고 일하면서 마신다. 콧수염이 있는 주제에 아무렇지 않게 카푸치노를 주문한다. 그런 동생에게 나타난 멋진 여자가 몸에도 안 좋은 커피는 그만 끊고 양파즙만 먹는 게 어떠냐고 미간을 찌푸린다면, 동생은 어떻게 할까?

한때는 자장면 통일! 이 주문의 법칙일 때가 있었다. 얼른 먹고 일하러 가야 하는데, 주문한 음식이 빨리 나오려면 메뉴를 통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 세대는 일하는 시간만큼이나 쉬는 시간의 가치도 중요해져서 모두를 위해 메뉴를 통일하기 보다는 효율은 떨어져도 자신의 취향을 고수하는 시대가 되었다.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도 같은 걸로, 를 외치는 것보다는 딱 부러지는 취향을 가진 여자가 매력적으로 보인다. 여자들 사이에선 스타일이 좋은 것만큼이나 안목이나 취향도 매력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취향을 오롯이 즐기게 된 만큼, 결혼할 때 생각하는 여러 가지 조건 플러스, “취향이 같은” 남자를 찾아야 하는 어려움도 생겼다.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무어든 얻는 것이 있으면 곤란해지는 점도 생기는 군요.

말러를 좋아하는 그녀의 생일에
“자주 가는 카페에 말러를 좋아하는 분이 윤동주를 읽고 있기를” 하고 생일 축하 인사를 전했지만, 실제로 말러를 들으면서 윤동주를 읽고 있는 사람은 좀 섬뜩할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도, 역시 콩깍지라는 것이 씌어져 버리면 다들 취향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아, 라는 지경이 되어 버리니까 지금은 “바닐라 라떼, 무지방 우유에 시럽 반”을 주문하면 꾸짖는 사람 없이 친절히 만들어주는 시대를 안심하고 만끽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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