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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g ho Lee Jan 23. 2017

리버풀 팬으로 사는 건 힘들다...

그래도 많은 걸 배웠다.

바로 어제, 나의 팀은 리그 최하위 팀에게 패배를 당하면서, 17 경기만에 홈에서 다시금 패배를 기록하였고 2017년에 들어와서 무승을 이어가고 있으면 결국 리그 2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아침부터 너무나도 순조롭게 공부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순간 치밀어 오르는 감정의 기복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잠시 공부를 내려놓고 음악 한 곡을 골라 천천히 감상을 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내 폰에 깔려있던 축구 정보 관련 앱을 모두 삭제해버리고 말았다.


언제부터 리버풀 팬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피파 94부터 시작해서 CM 2002를 거쳐 FM 2016, FIFA 17까지 축구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이어져왔지만 해외 축구를 정작 심도 있게 보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월드컵이었으니 아마 그때 쯔음부터 본격적으로 리버풀을 좋아하지 않았나 싶다. 훌리에부터 지금의 클롭 감독까지 참 오래도 본 것 같다.


얼마나 좋아했던지, 지금은 사라진 작은 축구 커뮤니티에서 리버풀 관련 뉴스를 꾸준히 번역하면서 영어 실력을 키웠던 적도 있었다.


그때의 리버풀은 한마디로 강하지만,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우승을 하지 못하는 전통적인 강호였다. 4위 안에 항상 들어가면서 챔피언스리그는, 그래도.. 당연히 출전했던 그런  팀이었다. 그런 팀이 어느 순간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8위까지 내려가, 8버풀, 7버풀, 리빅아라는 말을 듣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내려가는 동안, 내 가슴도 많이 철렁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이보다도 더 나를 철렁하게 하는 것은 어느 다른 팀들보다도 팀의 기복이 심하다는 것이었다. 정말 잘하는 날, 특히 강팀과 하는 날은 이전의 모습을 되찾은 것 마냥,  잘 나가다, 약팀과 하는 날은 그 약팀보다 못한 상황을 연출해내고는 하였다. 그래서 다른 팀들은 내 팀을 '의적 풀'이라고도 불렀었다. 


이 기복은 정말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팀의 결과에 기뻐하고 화내는 내 모습을 보며,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고 하면서 반기기도 하였지만, 정말 속된 말로, 꼭지(?)가 도는 것 같았다.


물론, 10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리버풀 덕분에 배운 것도 많다. 바로 감정이, 그중의 하나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인위적으로 감정을 참 무디게 만들어 그러한 경기 결과에 무대응 하던 습관이 사람을 대하거나 일을 대할 때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 감정처리가 결혼을 할 때 도움을 준 적도 있다고 하면 이만큼 큰 배움이 과연 어디 있겠는가? 아울러 리버풀과 야구의 LG를 좋아하는 팬은 신의가 있다는 말이 떠돌면서 신뢰도가 약간 상승하기도 하였다. 우습지만 슬픈 이야기이다.


난 생각보다 인색한 사람이다. 물론 한 방에 지를 때도 있지만, 그 경우가 드물다. 그리고 그 드문 경우중 하나가 바로 내가 리버풀 바람막이 두 벌을 20만 원 가까이 주고 한 번에 지른 것이다. 


오늘 앱을 지웠지만, 단 하루가 지난 지금, 나는 대신 리버풀의 Reddit 커뮤니티에 들어가 여전히 재잘재잘 떠들면서 하루를 보냈다. 


아 내가 좋아하는 이 팀... 죽기 전에는 우승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어느새 내 삶에서 Oasis의 'Dont look back in Anger'와 함께 마지막에 함께 하길 원하는 상징이 되어버린 이 팀, 부디 이제는 나를 그만 훈련시켰으면 좋겠다. 리버풀의 팬이 되는 것은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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